2026년 6월 아트스퀘어 - 아작 작가 초대전
6월 1일(월) ~ 6월 30일(화)
장소 : 상암동 YTN뉴스퀘어 1층 아트스퀘어
아작 (Azak)
▲ 주요 경력
- 2021 개인전 <단잠>, 토포하우스, 아트시우 초대전시
- 2020 개인전 <어항에 잠겨 구경하던 달>, 인사아트센터 본관, 시우 갤러리 초대전시
- 2020 단체전 <아름다운 희망>, 그랜드 하얏트 서울 & 시우 기획전시
2026년 6월 아트스퀘어 - 아작 작가 초대전
6월 1일(월) ~ 6월 30일(화)
장소 : 상암동 YTN뉴스퀘어 1층 아트스퀘어
아작 (Azak)
▲ 주요 경력
- 2021 개인전 <단잠>, 토포하우스, 아트시우 초대전시
- 2020 개인전 <어항에 잠겨 구경하던 달>, 인사아트센터 본관, 시우 갤러리 초대전시
- 2020 단체전 <아름다운 희망>, 그랜드 하얏트 서울 & 시우 기획전시
▲ 개구리 연못, 50.0 x 72.7cm, 캔버스 위에 유채, 2025
어렸을 적 가지고 있던 특별한 능력들.
또, 누구나 당연히 익숙했던 기억들에 대해.
집 근처 뛰어놀던 숲에서 나무와 하늘과 새, 외딴 집, 간혹 보이던 말과 곰을 닮은 바위,
또 구름에게 말을 걸고 교감을 느끼는 것들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 작가노트 中에서-
아작(Azak) 작가는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존재를 오래,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스산한 날씨에 부화한 무당벌레 새끼를 거두어 성충이 될 때까지 돌본 뒤 자연으로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보여주듯, 그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며 그 따뜻한 시선을 캔버스에 그대로 담아낸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풍경을 기분 좋게 비튼다. 들판에 우뚝 선 새빨간 나무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빛깔로 물드는 하늘. 이 낯선 풍경이 묘하게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기교 대신 맑음을 택한 작가의 고집이 화면 곳곳에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통해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단순하고 맑은 붓질을 묵묵히 보여줄 뿐이며, 관객들은 그 속에서 저마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이 어려운 세상 속에서 홍근한 숨을 내쉬며, 꿈을 꾸듯 위로를 받아가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이번 6월에는 그가 펼쳐놓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마음에 복잡한 짐을 내려놓고 온전한 위로를 마주해 보는 건 어떨까.
2026년 6월 YTN아트스퀘어의 주인공, 아작 작가의 작품은 6월 30일까지 YTN뉴스퀘어 1층 아트스퀘어에서 만날 수 있다.
아작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 갤러리 홈페이지 (https://ecorockgallery.com/author/view.htm?idx=1673)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에코캐피탈의 '무이자할부 금융서비스(최대 60개월)'를 통해 작품을 소장할 수 있습니다.
▼ 다음은 아작 작가와의 일문일답
Q. 활동명이 다소 독특하다. '아작(AZAK)'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사실 거창한 의미를 두고 지은 이름은 아닙니다.(웃음) "자, 가자!" 하고 외칠 때 느껴지는 역동적인 말맛과 무언가를 씹을 때의 '아삭아삭한' 경쾌한 감각이 참 좋더라고요. 직관적으로 이끌린 그 말맛이 좋아서 시작된 이름인데, 제 그림이 가진 자유로운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기쁘게 쓰고 있습니다.
Q. 전시 주제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제 그림들은 어디 있을 법하지 않은 색들이나 사실적이지 않은 형상들로 채워져 있어요. 어릴 때 제게는 주변 나무나 하늘, 구름에게 말을 걸고 교감을 나누는 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능력 같았거든요. 그 마음으로 오렌지빛 구름, 오로라 소나무, 무지개 숲을 오래 가만히 들여다보며 찬찬히 말을 건네는 과정을 그림으로 담아낸 거예요. 처음엔 ‘관객분들이 이걸 진짜 풍경으로 봐주실까?’ 싶었는데, 막상 보신 분들이 그 엉뚱함 속에서 묘한 편안함을 느끼시더라고요. "엉뚱한데 참 편안하네"라는 그 지점이 저한테는 계속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아주 큰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 벚꽃이 흐르는 강, 80.3 × 116.0cm, 캔버스 위에 유채, 2026
Q. 작품의 아이디어가 유년 시절 경험에서 온다고 했는데, 유년의 기억이 작업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나.
서울이랑 가평 작업실을 오가면서 작업하고 있는데, 주말마다 가평 시골 풍경을 마주하니까 제 안의 동심이 자연스럽게 깨어나더라고요. 세상을 타성 없이 바라보던 어린아이의 시선 같은 거요. 가평에서 같이 작업하는 선생님께서 어느 날 제 그림을 보고 "어떻게 똑같은 풍경을 그리는데 네 그림은 딱 열 살 아이 같니" 하셨는데, 그게 저한테는 정말 최고의 칭찬이었어요. 우리가 익숙해진 것들을 살짝 틀어보는 게 전 참 재미있거든요. 들판에 느닷없이 새빨간 나무 덩어리가 서 있는 것 같은 엉뚱한 발상이 통통 튀어 오르는 순간, 그림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 백마를 좋아하는 아이, 130.3 × 162.2cm, 캔버스 위에 유채, 2026
▲ 반딧불 섬의 노을, 91.0 × 116.0cm, 캔버스 위에 유채, 2026
Q. 추억이 가득한 작품 중에서도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다 제 기억에서 나온 아이들이라 모두 소중하지만, 굳이 꼽자면 <백마를 좋아하는 아이>와 <반딧불 섬의 노을>이에요.
<백마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주 어릴 때 동네에 찾아오던 스프링 목마 리어카의 기억에서 시작됐어요. 5분에 50원이었는데, 그 아저씨 오시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동전들을 모았죠. 그 말을 타고 사우디아라비아나 미국 같은 먼 나라로 날아가는 상상을 온종일 펼쳤는데, 그 소중한 기억이 100호짜리 큰 그림으로 완성됐어요.
<반딧불 섬의 노을>은 동네 공터에서 정신없이 뛰어놀다가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집으로 가던 순간의 하늘이에요. 어두컴컴해질 무렵, 낮 동안 품었던 태양을 한 번에 빵 터뜨려 놓은 것처럼 온 하늘이 붉은 융단으로 쫙 깔리던 그 노을 풍경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거든요. 꺼낼 때마다 그때의 따뜻한 감정이 그대로 살아나는 작품들이에요.
▲ 날이 갠 오월의 한낮, 72.7 × 60.6cm, 캔버스 위에 유채, 2026
Q. 기억을 그림으로 옮길 때, 작업 과정에서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붓질이 화려해지거나 기교가 가득해지지 않도록 덜어내는 일입니다. 예전 작업을 보면, 표현에 욕심을 내고 기교가 들어갈수록 처음 느꼈던 순수한 정서가 흐릿해지더라고요. 유년 시절을 그리다 보니 그 특유의 맑음과 선함이 있는데, 과한 붓질이 들어가는 순간 그게 싹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계속 빼려고, 덜어내려고 노력해요.
그림에 이야기를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제 그림이니까 저를 너무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시고, 보시는 분들이 그냥 아주 단순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관객이 그림 앞에서 자기만의 감정을 꺼내놓을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두는 것이 그게 지금 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노란색 비단 길을 따라가면, 91.0 × 116cm, 캔버스 위에 유채, 2026
Q.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계기가 있나.
원래 그림은 참 좋아했어요. 중고등학교 때 사생대회에 나가면 늘 최우수상을 받곤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1남 6녀 중 막내다 보니, 현실적으로 부모님이 미술에 따로 투자를 해주시기는 어려웠죠. 언니가 먼저 미술학원에 다니면 저는 옆에서 잠깐 봐주는 정도였어요. 그렇게 꿈을 잊고 평범하게 살다가 14년 전에 암 수술을 받게 됐어요. 몸도 아프고 우울증도 깊어지는데 극복할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종이에 드로잉을 쓱쓱 해봤는데, 거짓말처럼 하루가 너무 빨리 가고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러다 그림을 매일 하나씩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걸 유심히 보신 1인 기획자분이 작업을 좀 크게 해보라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분 말대로 1년을 정말 열심히 그렸죠. 그렇게 모은 작업으로 2016년에 첫 전시를 열었는데 작품의 절반이 팔렸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기적 같은 일이었죠. 깜깜했던 그 시작의 길에서 후배 작가님들을 비롯한 주변 동료들이 정말 든든하게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덕분에 매년 멈추지 않고 개인전을 열며 전업 작가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Q. 그림의 시작점에 '전생풀이'와 '다락방의 환상'이라는 신비로운 이야기도 있다고.
맞아요. 처음에 붓을 잡았을 땐 '내가 지금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 내 전생은 어땠길래 그럴까' 하는 생각에 전생을 풀어보는 무녀도 작업을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 제 기억의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니, 다섯 살 무렵 살던 봉천동 달동네 다락방이 나오더라고요. 저의 할아버지는 당시 꽤 유명한 기업인이셨어요.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우리가족은 서울의 봉천동이라는 달동네로 쫓기듯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그 봉천동 달동네 다락방에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방안 사다리 문틈 사이에 낑겨 앉아 들여다보던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구멍이 점점 커지더니 빛과 바람, 동물과 사람들이 움직이는 신비로운 풍경이 눈앞에 쫙 펼쳐지는 거예요. 어린 날의 상상이었는지 정말 전생을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분명히 제 눈으로 보았던 환상적인 풍경들을 하나씩 꺼내놓은 게 지금의 풍경화로 이어지게 됐어요.
Q. 스스로를 위한 '치유'로 시작한 미술인데, 전업으로 미술을 하는 지금도 여전히 위로가 되는지.
그럼요, 저한테는 여전히 가장 큰 위로이자 치유예요. 그런데 이 치유가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 있었어요. 한 페스티벌에서 제 그림을 사 가신 컬렉터 부부가 전시장에 오셨는데, 아내분이 제 그림 앞에서 10분 넘게 소리 없이 우시더라고요. 그림이 이렇게 위로가 되는 줄 몰랐다면서요. 내 진솔한 감정이 그림에 입혀지는 순간, 보시는 분들에게도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실 제 안의 상처는 이제 다 치유된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정말 온전한 기쁨을 담아 즐겁게, 방방 뛰는 마음으로 그리고 있어요. 그 밝은 에너지가 보는 분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Q. 창작을 하다 보면 슬럼프가 오거나 막히는 순간도 있을 텐데.
단순한 편이라 풀릴 때까지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애초에, 그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막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에 구상을 하고 스케치를 하더라도, 붓을 들고 그리다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 있거든요. 제목도 나중에 완전히 바뀌는 경우가 많고요. 그러니까 막혔다기보다는 그림이 새로운 길을 찾아 흘러가는 느낌인 거죠.
인지도를 위해 하나의 스타일을 계속 똑같이 변형해서 그리라는 말도 있지만, 제 안의 다채로운 생각들을 하나의 틀에 가두는 건 제게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다행히 제 전시를 자주 오시는 분들은 매번 다양하고 새로운 작업을 볼 수 있어 참 좋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그럼에도 아작류, 아작풍이 보여 좋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한테는 그게 정말 기분 좋은 칭찬이랍니다.
▲ 살구빛 노을 섬, 91.0 × 116cm, 캔버스 위에 유채, 2026
Q. 이번 전시로 작품을 감상할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사실 제가 얼마 전에 큰 쇼크를 겪어서, 부드럽고 편안하게 숨을 쉬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재작년 전시 때 제가 했던 "이 어려운 세상 속에서 '혼곤한 숨(포근하고 온전한 숨)'을 내쉬며, 꿈을 꾸듯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금 저에게는 훨씬 더 간절하게 다가오네요.
거창한 해석 같은 게 없어도 괜찮으니, 그저 잠깐 멈춰서 편안하게 쉬어 가셨으면 해요. 매일의 일상이 치열할 임직원분들과 방문객분들이 제 그림 앞에서 단 몇 초만이라도 고른 숨을 내쉴 수 있다면, 그게 제가 그림으로 드릴 수 있는 가장 보람찬 선물이 될 것 같아요.
Q.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방향이나 목표가 있다면.
벽에 걸린 작품을 눈으로만 보고 돌아가는 획일적인 전시 말고, 아이든 어른이든 공간 안에서 직접 참여하고 놀 수 있는 공간 같은 전시를 만들고 싶어요. 참여해보면서 "아, 예술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나도 해봐도 되겠구나" 하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거든요. 요즘엔 리사이클이 가능한 재료들을 가지고 직접 만질 수 있는 설치 작업도 구상하고 만들어보고 있어요. 예술이라는 게 멀고 어려운 게 아니라, 누구든 편안하게 들어와서 숨 쉴 수 있는 놀이터라는 걸 보여드리는 게 앞으로의 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