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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한 점으로 그려낸 엉뚱함’ 화가 김썽정
2018-12-18

“7살 아이의 엉뚱한 시선을 점으로 표현해 내고 싶어요” 


김썽정. 톡톡 튀는 어감의 이름만큼 그가 그려낸 화폭 속 세계도 밝고 경쾌하다. 개구쟁이 아이의 낙서처럼 천진한 형태의 조합과 경쾌한 색의 조화가 미소를 불러일으킨다.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 무수히 점들로 이뤄진 세계다. 자로 잰듯 일렬로 똑바르게 찍힌 점들이나 불규칙하게 배열된 듯한 색점들 모두 공통점이 있다. 치밀한 계산과 집요한 노동의 산물이라는 점. 

작품에는 작가가 투영된다. 서글하고 긍정적인 성격이 그림에도 녹아있다. 김 작가는 ‘유치원생 7살 눈높이에서 엉뚱하면서 유치한 것을 재해석하고 싶다’고 설명한다. 어른이 되어도 누구나 순수하고 때타지 않은 동심을 갈망하는 심리가 있는데, 자신의 그림이 그런 이들에게 과거의 좋은 추억들을 일깨워주고 팍팍한 현실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모든 형태를 점으로 표현하는 만큼, 그 노동 강도는 상상 초월이다. 대량으로 인쇄된 점이 아니라 섬세한 손끝의 감각으로 빚어낸 점들이 펼치는 군무는 보는 눈을 즐겁게 하지만, 엄청난 노동의 집약체다. 한 시간 내내 점을 찍어야 겨우 5백 원짜리 동전만큼의 화폭을 채울 수 있다. 요즘 보기 드문, 노동집약적 작품 세계에 해외에서도 인기가 뜨겁다. 


김 작가는 200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 뿐 아니라 홍콩, 일본, 싱가포르, 미국 등 세계 각국 아트페어와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김썽정 작가의 작품은 서울 상암동 YTN뉴스퀘어 1층 아트스퀘어에서 이번 달 31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왼쪽) 백조의 꿈 (오른쪽) 사랑을 찾아서 


Q. 독특한 점묘화를 그리게 된 이유는? 


- 울산대학교 미대 1회 졸업생이다. 대학원까지 고향에서 공부를 계속했고, 당시에는 볼펜화에 집중했다. 며칠 밤을 새워 밑 작업을 깔끔하고 나름대로 완벽을 기했지만, 한계를 느꼈다. 펜으로 할 수 있는 표현에도 제약이 많았고, 보존성도 약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해보자, 고민하다 시작한 게 점이었다. 하나의 점은 의미가 없지만, 그 점들이 모여 하나의 모양이 되고, 색이 어우러져 면이 되고 물체가 되는 게 재미있었다. 성격적으로 천천히 하는 걸 좋아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편이다. 평가는 삼자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과정에 충실하다보니 점묘화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Q. 물방울처럼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듯한 볼록한 점들이 인상적인데? 


- 일반적으로 점묘화는 평면성이 강하다. 점묘법을 창시한 쇠라의 그림도 화려하지만 입체적인 느낌은 약한 편이다. 그림의 주재료가 아크릴인데, 소재의 특성상 색은 강하지만 무게나 깊이감이 약하다. 유화의 마띠에르와 같은 입체감을 표현하고 싶어 점에 양감을 주는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닌데, 우연히 점이 덩어리로 찍히면서 큐빅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크게 와 닿았다. 운동도 좋아하고 남자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지만, 남학생이 적은 예고, 미대를 다니면서 섬세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돋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우연히 찍힌 반짝이는 점에 매료됐고, 이후 피나는 연습과 노력 끝에 지금의 점 형태를 완성해냈다. 


Q. 보기에는 예쁜 점이지만, 이런 점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 양감 있는 점을 동일하게 찍는 작업은 대단히 섬세한 작업이다. 나무젓가락으로 점을 하나씩 찍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물감의 농도를 균일하게 맞추는 거다. 내가 원하는 예쁜 큐빅과 같은 동그란 점은 도구와 스포이드를 이용해 농도를 정확히 맞춰야지만 찍을 수 있다. 물감이 무르면 점이 퍼지고, 뻑뻑하면 모양이 예쁘지 않다. 점 크기에 따라서도 농도가 달라진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는데, 지금은 경험들이 축적돼 점들을 균일하게 배치할 수 있게 됐다. 2007년도 초기 작업을 보면 점들이 중구난방으로 찍혀있다. 어떤 분들은 그때가 더 회화성이 있어 좋다고 하시지만, 지금이 훨씬 정교해 졌고 스스로도 표현의 한계가 어디인지 계속 실험해 보고 있다. 


색도 중요하다. 원색은 반사가 심하고 색이 겹쳐지는 부분에서 한계도 있어, 내가 일일이 색을 만들어 쓴다. 아날로그적인 게 색감과 형태를 선호한다. 점을 배열하는 패턴도 컴퓨터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감으로 한다. 사실적인 형태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하고 소화한 형태로 손으로 직접 표현하는 걸 선호한다. 

Q. 한 작품 완성하는 걸리는 시간도 길 것 같다. 


- 작업실에 와서 내가 작업하는 걸 보면, 동료 작가나 후배들도 다 놀란다. 성격이 안 좋아질 수도 있고, 성격 급한 분들은 하루도 채 못할 정도다 (웃음) 캔버스를 세운 상태로 점을 찍는 게 아니고, 눕혀서 점이 마를 때를 기다리며 작업을 하는데, 점만 계속 보다보면 한 시간만 작업해도 눈이 무척 피로하다. 시선을 돌려 캔버스 바깥을 보면 시점이 맞지 않을 정도다. 보통 10호 기준으로 완성하는 데 2주 걸리고, 30호, 50호, 100호는 2~3배 이상 시간이 든다. 100호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1,2년에 한 두 작품 밖에 못한다. 노동집약적인 작업이고 시간과의 싸움인데 힘들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즐기는 편이다. 

▲ (왼쪽) 행복한 여인 (오른쪽) 능력자 


Q. 유명 그림 패러디부터 전통 민화나 만화 까지 그림의 소재가 다양한데? 


- 소재는 다양한 곳에서 얻는다. 엉뚱한 면이 있다 보니 카페에서 드로잉하다가 아이디어 생각나면 옮기기도 하고, 해외 아트페어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나라마다 좋아하는 모티브나 색이 다른데, 그런 이질적인 것들을 조합해보면 굉장히 신선하다. 코끼리 물고기 같은 동물부터 주전자나 과일 같은 사물까지 익살스러운 도상을 적절히 조합하고 배열하는 걸 즐긴다. 


'행복한 여인'은 피카소의 작품 ‘우는 여자’를 패러디해봤다. 피카소는 자신의 연인을 모델로, 전쟁의 아픔을 표현했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봤다. 이 작품 속 여인이 피카소의 바람기 때문에 평소 힘들어했던 것으로 아는데, 나중에 나이가 들어 당시를 회상하며 그래도 행복했었지, 하고 돌아본다면 어떨까 가정해봤다. 그래서 나이든 여인이 과거를 회상하며 웃는 모습으로 바꿔 표현해봤다. 


'능력자'의 경우 로봇 태권 브이를 모티브로 했다. 얼짱 여자친구를 사이에 두고, 소심한 아이와 능력자가 삼각 관계를 이룬다는 식으로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 그려봤다. 


Q. 해외에서도 작품이 주목받는데, 어느 점이 인상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은지? 


- 많은 노동이 들어간 작업을 신기한다. 점을 일일이 찍어서 표현하는 기법에 호기심이 많고,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직접 만져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다. 동양적인 이미지가 좋다는 분들도 있고, 해외 아트페어나 전시에 참여하면 여러 그림 속에서도 확 눈에 들어온다는 평을 받는 편이다. 


Q. 앞으로 계획은? 


- 놀이처럼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 애들이 놀때 계획적으로 놀지 않고 마음가는 대로 즐겁게 놀듯이, 나도 즐기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개념적으로 어려운 그림이 아니기에, 보는 분들도 내 그림을 보고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무겁고 힘들 때 내 그림을 보고 웃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