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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산책] 멀리서 바라본 작은 세상 - 이경현 작가
2021-12-17

이 경 현 (Lee KyoungHyun)


-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현대미술전공

- 개인전, 단체전 다수 참여

- 수상/선정 : 2019 KOTRA 아트콜라보 선정작가 등, 2013 광화문 국제아트페스티벌 "GIAF" 평면부문 대상

▲ Balloon, 80X100cm(40호), acrylic on canvas, 2017


획일화된 가치와 끝없는 경쟁 속에서 얽히고 설킨 인간 군상들을 다양한 장면과 상황을 통하여 표현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광경 또는 이야기를 통하여 현대인의 삶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현대 사회 속에서 개개인 내면의 의미를 뒤로 하고 어딘가 모를 공허함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슬며시 질문을 건냅니다. - 작가 노트 중 -


Cheer, 130X162cm(100호), acrylic on canvas, 2015


먼발치에서 바라본 사람들, 장난감 인형처럼 작아 보인다.


이경현 작가는 그 모습이 문득 낯설어 보였다.

아주 작은 존재들이 질서 정연한 형태를 이루며, 움직임을 반복하는 모습이 마치 서커스 공연 같기도 했다.


‘Life is a circus’

멀리서 사람과 세상을 관찰하는 것은 이경현 작가에게 늘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작은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반복적인 일상을 바라보며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고, 때로는 살아 움직이는 힘에 감탄하기도 했다.


작가는 ‘Life is a circus’라는 주제로 일상을 들여다보며 삶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되물었다.


한 발 떨어져 바라본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의 입체적인 시각을 통해 감상의 재미는 물론 삶의 통찰을 기대해 봐도 좋다.


YTN 아트스퀘어 이경현 초대전 (12.1~12.31)


이경현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 갤러리 홈페이지 에코락갤러리 (ecorockgallery.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에코캐피탈의 '무이자할부 금융서비스(최대 60개월)'을 통해 소장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경현 작가와의 일문일답

- YTN과 인터뷰 나누는 이경현 작가 -


Q. ‘Life is a circus’라는 전시 주제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이 주제를 처음 생각해 낸 건 2010년이었습니다. 제가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바라본 한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는데요. 친구 집이 고층 아파트였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넓은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어요. 거기서 아주 작게 보이는 아이들이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농구를 하고 있더라고요. 가까이서 보면 내가 이기냐 네가 이기냐 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일 텐데, 멀리서 보니 단순히 게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커스를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러한 삶의 모습이 농구 경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의 전반의 모습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쟁, 성과에 조급해하며 사는 우리 모습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삶의 목적과 의미,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장면을 계기로 ‘Life is a circus’라는 주제를 설정했고, 2010년부터 같은 주제로 삶을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 Boat, 65X80cm(25호), acrylic on canvas, 2018


Q. ‘Life is a circus’라는 주제로 10년 넘게 그림을 그려오면서 오랫동안 일상을 관찰하셨을 텐데요.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생각이나 감상이 달라진 점도 있을까요?


팬데믹 이후로 일상의 모습이 많이 바뀌면서, 제 감상도 변하고 작품의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습니다.

처음 'Life is a circus'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릴 때, 멀리서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획일화된 삶처럼 보였습니다. 무엇을 향하는 지도 모른 채 경쟁에 몰두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듯이 그림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인생을 물론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삶의 목적,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성찰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팬데믹 후로는 바쁜 일상이 멈추고, 제 그림 소재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조차 힘들어졌잖아요.

요즘은 인물들을 그리면서 한 명 한 명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작품에 그리는 한 사람 한 사람한테 더 애정이 가고 인물 표현에 조금 더 디테일해지는 것 같습니다.


작품의 배경, 소재도 달라졌는데요. 이전에는 회사나 체육대회 등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경쟁하는 모습, 공간을 가득 메운 군중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면, 최근에는 사람들과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곳,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배경을 담았습니다. 캔버스에 풍경 반, 인물 반 정도 채워질 만큼 풍경을 전보다 더 많이 그리게 됐어요. 좀 더 따뜻하고 편안한 그림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요즘은 일상의 소중함, 개개인의 소중함을 느끼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아요.

Shining night, 60x72cm(20호), acrylic on canvas, 2021


Q. 인물들의 이목구비를 그리지 않아 표정 없는 얼굴이 인상적입니다. 이목구비를 그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목구비를 그리면 인물을 추측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작품 속의 인물을 특정 짓고 싶지가 않아서 이목구비를 그리지 않습니다.

제 작품 속의 인물은 관람객 누구나가 될 수 있어요. 내가 될 수도 있고 네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이목구비 없는 얼굴이 ‘거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과 비슷한 상황에서 즐거웠던 나의 표정을 상상할 수도 있고, 인물에 대한 상상을 자유롭게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Cosmos,73x73cm(30호),acrylic on canvas, 2021


Q.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감상하는 팁을 준다면?


멀리서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사람들이 누군지를 알 수 없고 작은 점으로 보이잖아요. 그런 모습이 사람들이 이루는 일종의 패턴으로 보였어요.


반면 사람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볼수록 개개인의 특성을 볼 수 있게 되는데요. 제 그림에서도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개개인의 제스처가 모두 다르고, 개인의 의상 디테일까지도 다르게 묘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관객분들도 작품의 포커싱을 달리하며 일상을 조금 색다르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일상, 사람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Ball pool, 112X162cm(100호), acrylic on canvas+sticker, 2015


Q. <Ball pool> 작품에서 볼 풀장의 공을 스티커로 표현하는 등 색다른 재료와 입체적인 표현이 돋보입니다.


많은 분들이 미술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고 벽이 높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관람객들이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스티커나, 큐빅, 레고 같은 재료들을 작품에 활용했는데요. 일상적인 소재이지만 미술 재료로 활용된 것을 볼 때 관람객들이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한 작품에서는 나노 블록을 캔버스에 직접 붙였는데요. 아이들 키즈 카페에 가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요. 작품 속 인물들이 나노블럭을 진짜 가지고 노는 것처럼 캔버스에 붙여서 표현을 했어요. <Ball pool> 작품에서는 볼 풀장의 공을 스티커로 표현해 하나씩 붙였어요. 하나하나 붙이면서 작업할 때 제가 꼭 노는 것 같은 느낌인 거예요. 저 또한 되게 재미있게 작업을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재료를 발견해서 작품의 포인트를 살리고 재미를 주려고 합니다. 현재 제작 중인 작품에는 작은 큐빅으로 밤 하늘의 별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여러 가지 재료를 탐색해서 생생한 표현, 색다른 질감 표현을 해보려고 합니다.


▲ 사인암(舍人巖), 72x60cm, acrylic on canvas, 2021


Q. 전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사인암(舍人巖)’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김홍도 화백의 작품을 오마주 했습니다. 이 작품을 그리면서 김홍도 화백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었고, 당시 풍경을 담아낸 감각에 다시 한번 감탄을 느꼈습니다.


저는 동양화의 먹 대신 아크릴 물감으로 표현했고, 작품 안에 인물들을 채워 넣음으로써 제 스타일을 가미했습니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며 색을 풍부하게 표현하고, 두께감, 입체감을 표현해 동양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냈습니다. 동서양의 조합으로 재미있게 표현된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적인 소재와 서양의 재료를 결합해 보거나, 옛날 거장들의 작품을 활용해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을 조합한다면 새로운 장르가 나올 것 같아요. 이러한 작업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Sunset, 73x73cm(30호), acrylic on canvas, 2021


Q. 앞으로 작업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Life is a circus’라는 주제로 꾸준히 그림을 그리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담고 싶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나아지면 해외의 이색적인 풍경들도 많이 담아서 작업해 보고 싶어요.


그림을 보시는 분들과 추억과 일상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고요. 사람과 일상을 관찰하는 작가로서, 작품을 현대의 풍속화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인터뷰│커뮤니케이션팀 김양혜 ㄹㄹ 사진│커뮤니케이션팀 이한빈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