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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스토리] “견고한 오스카의 장벽이 무너진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2020-03-03

“견고한 오스카의 장벽이 무너진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 문화부 김혜은 기자

취재 신청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는 긴 여정이다.

'오스카 캠페인'이라 불리는 몇 개월 동안의 영화 홍보기간을 거친다. 12월 예비후보가, 1월 본상 후보가 발표된다. 시상식 일주일 전 8천~9천 명 회원의 투표를 거쳐 비로소 수상작이 결정된다.

취재 신청에도 꽤 오랜 기간 소요된다. 두 달 전 신청서를 받은 뒤, 이후 수차례 각종 신청서와 신분을 증명하는 사진 등을 제출하라는 메일을 받게 된다. 시상식이 임박하면 A4 23페이지 분량의 '미디어 가이드'를 받는다. 각자 받은 취재허가증마다 출입할 수 있는 구역이 다르다. 복장 규정까지 있는데, 미디어가이드 맨 끝 ‘To do list’ 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드레스나 턱시도는 대여했는가?

레드카펫은 시간이 있다


시상식 당일 낮까지 레드카펫은 언론인과 영화계 관계자들 차지다.

미리 뉴스를 전하기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는다. 기자들도 대부분 화려한 드레스에 반듯한 턱시도 차림이다. 아카데미 측의 엄격한 복장규정 탓도 있겠지만, 영화제를 함께 즐기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레드카펫은 오후 1시가 되면 온전히 주최 측 차지다. 레드카펫 옆 바닥에 빼곡하게 번호가 붙어있는데, 사전에 촬영을 허가받은 기자들에게 부여된 번호다. 주로 미국 언론사나 아카데미 회원에 등록된 언론사들로, 나머지 기자들은 옆에서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시상식을 TV로 본 사연

레드카펫에서 자리를 뜬 기자들은 프레스룸이나 인터뷰룸, 영상송출룸 등으로 이동한다. 시상식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 각자의 룸에서 TV 영상을 통해 시상식 중계를 지켜보기 때문에, 사실상 시청자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프레스룸에 있다 보니 외신 기자들을 통해 '기생충'이 해외에서 얼마나 화제가 높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아카데미상에서 '기생충' 말고는 관심을 끄는 영화가 없다"고 말하는 기자도 있고, '기생충'이 수상할 때마다 환호하는 외신기자들도 있었다.

"The oscars goes to…"


시상식 뒤 봉준호 감독의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 돌비극장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호텔에서 열리기 때문에 미리 이동해야 했다. 우리는 극장을 나와서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극장 주변을 대부분 경찰이 통제했기 때문이다. 상공에서는 헬기가 맴돌며 테러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술집 곳곳에서 오스카 시상식을 시청하고 있었다. 이윽고 붉은 드레스 차림의 제인폰다가 "The oscars goes to"까지 말했을 때, 행인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Parasite"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탄식도 나왔다. 92년 만에 외국 영화에 최고의 트로피를 준 오스카의 변화는 어쩌면 미국인들에게는 더 놀라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생충 '사태'


한국 취재진은 기자회견장에서 봉준호 감독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오스카 측은 이날의 주인공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두 시간여 만에 도착한 봉 감독은 이번 '사태'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많은 영화 기자들과 평론가들도 쉽게 예측하지 못했던 기생충 '사태'는 우리 영화계에 많은 가능성을 선사했고, 한편으론 많은 숙제를 안겨줬다. 이야기의 힘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기생충’ 같은 영화를 배출하려면 어떤 ‘계획’이 필요할까? 오스카의 허물어진 장벽 위에서 많은 이들이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