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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토리] 쿠리에르, 펜은 과연 권력보다 강한가
2020-04-14

진실의 늪 (폴란드 5부작 TV 드라마(2018) / 출연: 안제이 세베린, 다비트 오그로드니크, 조피아 비흐와치)

폴란드어로 쿠리에르(Kurier)는 우리말로 긴급 연락원, 전령이란 뜻이다. 속보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겠다. 넷플릭스 폴란드 오리지널 드라마 '진실의 늪'은 아이러니하게도 ‘쿠리에르’라는 신문사의 선후배 기자 두 명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이러니하다고 얘기한 것은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이 1980년대 초이기 때문이다. 당시 폴란드는 독재자 야루젤스키 서기장의 압제에 신음하고 있었으며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신흥 정치세력 자유연대 노조가 이에 맞서던 때였다. 계엄령이 발포됐고 언론 집회의 자유는 당연히 압살되던 때였다. 그러니 불문가지(不問可知)로 드라마 속 신문사 ‘쿠리에르’는 보도 속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아주 천천히, 의도적으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신문 보도의 검열을 피할 수 없는 만큼 거기에 순응하는 척, 차라리 태업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니 드라마도 느리게 느리게 다소 답답하게 이어지는데 이건 시대 배경을 드러내려고 하는 연출의 의도가 크다.

'진실의 늪'을 찾아보게 된 것은 순전히 극장 개봉작이 거의 없어서였다. 특히나 저널리즘을 다루는 영화는 요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그건 한국이나 세계 어디서나 저널이 극적인 모티프를 가질 만한 긍정성이 바닥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제 기자나 뉴스의 사명의식 따위를 믿는 대중들은 없다. 모든 언론들이 정파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언론이 정파적인 건 맞다. 다만 정파적이되 공정해야 하는데 정파적이고 편파적이다. 최근 채널A 사건은 그런 면에서 충무로에서 언젠가 검언 유착의 드라마로, 영화로 쏟아 낼 가능성이 높다.

'진실의 늪'은 진실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얘기할 수 없었던 시대에,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진실 보도에 자신의 명(命)을 걸게 되는 두 기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선배 베테랑 기자는 닳고 닳았지만,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려고 애쓴다. 후배 열혈 기자는 사회와 체제를 바꾸고 싶어 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쉽게 판단 내리기가 쉽지 않다. 둘이 힘을 합할 때, 두 가지의 측면이 결합할 때 시너지가 크다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폴란드 근교 도시의 유력한 정치가 중 한 명인 청년 연맹 회장이 살해당한다. 숲속에서다. 거기서는 그의 시신 말고도 20대 여성의 시체도 발견된다. 흔히 매춘부로 불리는 거리의 여자다. 1980년대 폴란드 공산당의 부패한 관리들은, 그 어느 사회가 정치적 낙오점에 다다랐을 때면 늘 그랬듯이, 권력으로 성(性)을 독점하고 여성들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만들었다. 청년 연맹 회장의 섹스 스캔들은 야루젤스키 서기장 체제에서는 절대 불가한 일이다. 담당 검사는 베테랑 기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여자가 같이 발견됐다는 얘기는 내지 마쇼.”

서독으로 탈출해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는 전처, 옛 여자를 찾아갈 생각만으로 가득 차 망명 자금을 모으고 있는 이 늙은 기자는 체제와 조직에 순응한다. 하지만 속속 드러나는 여러 정황들은 젊은 기자의 패기를 자극하고 나이 먹은 기자는 수세에 몰린다. 여기서 수세의 공간은 진실이 있는 곳이다. 둘은 형사 대신에, 검사들을 대신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을 대신해서 진짜의 사실을 추적하고 수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막상 고민의 시작은 진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이 모든 진실에 대면해 용기를 얻게 되기까지에는 굉장히 개인적인 이유가 작동한다. 거대담론, 즉 자유 수호이니 정의 구현 따위 때문이라는 얘기는 다 거짓말이다. 베테랑 기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옛 개혁파 동료의 딸이 다른 청년과 동반 투신자살을 했고 사실은 그 죽음에 의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드라마는 이때부터 쌍곡선을 탄다.


인터넷, 스마트폰, 노트북이 전혀 구비되지 않았던, 오로지 취재수첩과 펜만을 들고 다니던 기자들의 얘기다. 기자가 언제 편한 적이 있었던가. 사회와 정치, 권력과 자본의 압력에 시달리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기묘하게도 가장 악랄했던 시기의 폴란드 신문사 얘기를 보면서도 그래도 지금의 우리보다 저 때가 훨씬 더 시대의식이 높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나만의 생각인가.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펜은 권력보다 강한가. 그럴 자격이나 있는가. 심히 걱정되는 나날들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