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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토리] 오늘 부로 BBC의 모든 방송을 중단합니다
2020-06-08

이어즈 앤 이어즈, Years and Years (BBC·HBO 공동제작 6부작 영국 드라마 / 감독: 사이먼 셀런 존스, 리사 멀 카이 / 각본: 러셀 T 데이비스 / 출연: 엠마 톰슨, 로리 키니어, 제시아 하인스 등)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인생 X 되는 일은 무엇일까. (시작부터 곱지 않은 말을 써서 미안하지만 이건 리들리 스콧 감독, 맷 데이먼의 2015년 영화 ‘마션’의 첫 대사를 차용한 것이다. 그 영화의 첫 대사는 ‘I’m pretty much fucked.’이다. 직역하면 ‘나 정말 X됐다’이다. 욕이지만 이만큼 명확하게 심리 상태를 전달하는 말도 없다.) 그건 아마도 정말이지 재수 없게도 코로나19에 걸리는 일일 수 있겠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최악의 일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다.

왓챠가 방영 중인, 영국 BBC와 미국 HBO가 합작한 6부작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 Years and Years’는 바로 트럼프 재선 이후의 영국과 유럽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는 모습은 에피소드 2에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데 영국에서는 보란 듯이 신생 정당인 사성당(명백히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에서 베껴 온 것이다.)의 당수 비비안 룩(엠마 톰슨)이 ‘갑툭튀’로 출현해 온갖 막말과 신자유주의적 정책, 극우적인 혐오 발언으로 대중들을 휘어잡는다. 이 드라마는 지금의 세계 상황, 미국과 중국, 유럽의 정치 상황을 토대로 주인공 가족이 겪게 되는 근(近)미래의 이야기다.

정확한 시대 배경은 2019년에서 2034년까지의 일이다. 집안마다AI 자동응답기‘세뇨르’가 설치돼 있고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됐지만 그다지 쓰지는 않고 있으며, 환경이 파괴돼 비가 80일간 내리기까지 한다. 청소년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트랜스 휴먼’이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는데 한마디로 인간의 몸에 첨단컴퓨터 기술을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가족 중 한 명인 손녀 베서니가 그런 인물인데 손바닥에 모바일을이식하고 안구에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하는가 하면 나중에는 뇌까지 수술을 받는다. 그녀는 컴퓨터와 한몸이 된다.

얘기가 너무 복잡다단한데, 어쨌든 에피소드 2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이냐, 중국과 영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 인공 섬 ‘수비환초’(극 중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에 핵미사일을 쏜 것이다! 세계는 곧장 대혼란에 빠진다. 유럽 각국은 자국 보호주의에 나서고 이는 연쇄적으로 극우 정당의 출현에 힘이 실리는 정치 상황이 초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대 역시 지금처럼, 모든 문제는 난민 문제에서 시작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 넘어가고 정권을 잡은 친러시아파는 친서방파를 탄압한다. 그 도구는 그리스 정교다. 교리를 내세워 동성애자란 이유로 반대파들을 불법 체포해 구금, 고문한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극중 인물인 빅토르(맥심 밸드리)는 그렇게 해서 런던 외곽의 난민 수용소까지 흘러오게 되고 공공 주택관리 공무원인 둘째 아들 대니(러셀 토베이)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둘은 곧 뜨거운 사랑에 빠지지만 문제는 대니에게 이미 동성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배우자가 대니와 결별 후 보복으로 빅토르를 불법 이민자로 당국에 고발하면서 이 드라마의 모든 문제가 일파만파, 씨줄날줄로 엮이게 된다. 그러니 얘기의 시작은 역시 난민이다!

빅토르는 추방된 후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다 간신히 스페인에 정착하는 듯했고 이에 대니는 연인 빅토르가 있는 곳으로 이주를 결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스페인은 곧 극좌 정당이 정권을 잡는데 예상치 못하게도 극우 정당과 연정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일련의 카탈루니아 사태를 연상케 한다.) 대니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빅토르를 영국으로 데리러 오려 하고 이 밀입국 과정에서 두 연인은 대참사를 겪게 된다.


이 밀입국 과정을 대니의 누나인 이디스(제시카 하인즈)가 돕는다. 그녀는 비교적 극단적 환경 운동가로 기본적으로는 그린피스와 함께 환경생태 문제, 동물보호, 반전탈핵, 인종차별 항의 등등의 시위를 벌이며 투쟁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디스는 트럼프의 인공섬 핵미사일 공격 때 주변에 있다가 그 과정을 촬영해 일약 유명세를 얻게 되지만 대신 방사능에 피폭돼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가 된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과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세상의 모습에 좌절해 일순간 비비안 룩의 정치적 부상(浮上)에 방심한다. 이디스는 자신의 여동생 로니가 비비안 룩을 지지하는 것에 별반 제동을 걸지 않는데 로니는 정치적 판단이 형제자매 중에 가장 낮은, 개인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지금의 신세대를 닮아 있다. 나중에 사성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비비안 룩이 총리가 되자 그때에서야 정신을 차린 이디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내가 잘못 했어.


그녀는 동생 대니가 비극적인 상황을 맞게 되면서 그 책임을 통감하고 ‘그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다시 활동가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비비안 룩의 정체와 사성당의 본질을 대중들에게 알리려고 애쓴다.

대니와 이디스는 라인어스家의 일원이다. 형제 남매는 모두 넷이다. 금융 투자자인큰 형 스티븐(로리 키니어)이 있고 누이인 활동가 이디스, 그리고 동성애자 대니, 선천적 장애인이지만 활달한 성격의 막내 여동생 로리가 있다. 이들은 아버지가 집을 나가 새 여자를 만나 살게 된 후 엄마가 일찍 세상을 뜨면서 할머니 뮤리엘(앤 리드)과 살아간다. 스티븐에게는 흑인 아내와 베서니를 포함해 두 명의 딸이 있고 하반신 장애인인 로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성생활로(개인적으로는 이 설정이 조금 의문이긴 하다) 중국계 남자 사이에 아들 링컨을 포함해 역시 애 둘이 있으니 이들 가족은 총 4대(代)가 사는 셈이다. 대가족이다.


스티븐은 비교적 재산가였지만 브렉시트 사태로 100만 파운드(우리 돈 15억 원)를 하루아침에 잃는다. 그는 극단의 노동권에 해당한다는 택배 노동자로 전락하는데 나중에는 하루에 11개까지 일을 하는 프리터(free-arbeit-er : 특정한 직업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 일본에서 1980년대에 나온 말)로 살아간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의 친아버지처럼) 바람을 피워 집에서 쫓겨 난다. 스티븐은 극 결말 부분에서 빅토르가 갇힌 난민 수용소 문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빅토르를 수용소에 가두는데 앞장서게 되는데 그건 그의 친동생 대니가 처하게 되는 일과 깊은 관계가 있다.

자, 다시 빅토르의 난민 수용소 얘기로 돌아가면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인 비비안 룩은 난민들을 영국의 특정 지역에 수용하려 하고 그 관리권을 악랄한 대기업에 넘긴다. 이 기업은 수용소에 일부러 (메르스와 같은, 지금의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을 퍼뜨려 난민 수를 감소시키려 한다. 그래야 한정된 공간에 계속 물자(난민)를 공급하고 정부 보조를 받아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비비안 룩은 히틀러와 아우슈비츠의 방식으로 반 체제 인사, 저항자들을 제거하려 한다. 이 문제는 결국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과정에서 주요한 테제로 등장하게 되는데 라이언스家의 모든 일원과 얽히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대니의 애인 빅토르, 난민 수용소를 운영하는 야만적인 기업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결국 일을 하게 되는 스티븐, 그리고 빅토르를 빼 오려는 활동가 이디스 등이 모두 한곳에 모이게 되기 때문이다.

얘기가 너무 복잡한가.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이 6부작 드라마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나마 최선을 다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만큼 세상의 모든 일들, 국제 환경과 그 질서와 지독하게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그런 일들을 6부라는 시간의 한계 속에 축약해 놓은 BBC와 HBO의 출중한 제작 능력, 정교한 시나리오에 감탄과 찬사를 보낼 뿐이다.


에피소드 6편 초입에 막돼먹은 정치인 비비안 룩은 독한 질문을 퍼붓는 BBC 여기자에게 이래서 이 나라의 저널리즘이 문제라고 퍼붓는다. (이 대목 역시 트럼프가 CNN 여기자와 설전을 벌인 실제 모습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BBC에 제공하는 모든 공적 자금을 중단한다. 6부의 BBC 앵커 장면은 충격적이다.


이로서 BBC는 오늘 부로 문을 닫습니다. 모든 방송을 중단합니다.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이건 정말 영화나 드라마가 웃기자고 보여주는 얘기일 뿐이라고, 과연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칼럼은 영화 속 기자들, 언론들의 모습을 찾자는 의미에서 기획된 것이다. 기자들의 얘기를 담아낸 영화들을 보는 것도 좋지만 때론, 특히 지금과 같은 때일수록 더욱더, ‘기자들이라면 꼭 봐야 하는 영화와 드라마’ 얘기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어즈 앤 이어즈’를 보지 않으면 기자 자격이 좀 떨어진다. ‘이어즈 앤 이어즈’를 보고 깨닫는 바가 없으면 기자 자격은 더 떨어진다. 기자들이여. 한국의 저널리즘이여. 자성할지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