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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딥 임팩트 & 살아있다
2020-07-08

◆ 딥 임팩트/Deep Impact (SF, 드라마, 미국 / 감독 : 미미 레더 / 출연 : 로버트 듀발, 티아 레오니, 일라이저 우드 등)

◆ 살아있다 (드라마, 한국 / 감독 : 조일형 / 출연 : 유아인, 박신혜 등)

보도국의 풍경이 가장 그럴 듯하게 묘사된 영화는 미미 레더의 1998년작 <딥 임팩트>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MSNBC 여성 앵커 제니(티아 레오니)와 그녀의 팀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제니는 야심만만한 보도국 기자 출신이고 따라서 그녀의 목표는 당연히 특종이다. 그녀는 재무장관 앨런(제임스 크롬웰)의 사생활을 폭로할 요량으로 그의 뒤를 좇다가 엉겁결에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모건 프리만)의 지목을 받게 되고 그걸 계기로 메인 앵커 자리를 꿰차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다 꿈만 같은 일일 뿐이다. 제니는 처음에 재무장관의 섹스 스캔들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게 집까지 가서 만난 그의 표정이 전혀 예상밖이다. 그는 부끄러워 하거나 당혹스러워 하기는 커녕 참으로 초연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앞으로 (남은 시간) 가족과 함께 지낼 거요.”

그의 말을 듣고 제니는 더더욱 스캔들을 생각했지만(과거를 참회하는 의미에서 가족에 충실하겠다는 의미로 들리니까) 나중에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가공할 만한 것이다. 거대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 예정돼 있고, 당연히 지구는 멸망할 것인데 그걸 알게 된 재무장관이 모든 일을 버리고 가정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제니 역시 괴로워 한다. 재무장관처럼 제니 역시 모두가 죽게 될 운명에 처했다는 사실을 혼자만 미리 알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그 심정은 얼마나 오죽할 것인가. 여기저기, 동네방네 돌아 다니며 떠들며 다니게 될까. 제니는 대통령이 공식 성명을 발표하기 전까지 스스로도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오래 원망해 온 아버지(맥시밀리언 쉘)를 찾아가기도 하는데 그가 엄마를 버리고 새 여자=젊은 여자와 지내는 것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결국 대통령은 지구의 멸망을 발표하고 앵커로서의 제니의 활약은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다 재난 상황일 때 방송의 힘, 특히 앵커의 힘은 막강하다 못해 절대적이다. 사람들은 누군 가가 자신들에게 어떻게 해야 살아 남고, 또 어떻게 해야 올바른 죽음을 택할 수 있는 가를 얘기해 주기 바란다. 그건 정치가가 할 수 있고 사상가가 할 수 있고 신부와 목사, 승려가 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것을 전달해 주는 사람은 언론인이다. 그것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아이 컨택으로 얘기를 전하는 방송 앵커는 어마어마하게 큰 영향을 미친다. 재난 상황일 때 앵커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딥 임팩트>에서 제니의 모습, 뉴스를 전하는 모습은 영화 밖 사람=관객들에게도 비상한 관심을 모을 정도다. 미미 레더의 방송국 연출이 그만큼 사실적이고 뛰어났다는 얘기가 된다.

최근 개봉된 유아인, 박신혜 주연의 <살아 있다>는 여러가지가 불만이지만 방송과 앵커의 역할이 죄다 ‘보이스 오프(voice off)’로만 머물러 있다는 것도 불만이었다. 그건 굉장히 상징적인데 그만큼 요즘 국내의 방송 뉴스가 사람들 ‘안으로’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정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방송이 하는 일이 없으니까. 믿을 만한 앵커가 없으니까. 종편이랍시고 만들어진 방송에서 앵커가 오히려 편파적이니까. 다들 알아서 각자의 'SNS'로 각자도생 하라고만 얘기하고 있으니까.

<살아있다>는 레거시 미디어와의 ‘거리 두기’만이 살아 내는 데 있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영화일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점점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확산되고 백신 개발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당신만 먼저 알게 된다면? 우리에게도 제니와 같은 앵커가 옆에 있게 될까. 그나마 조금이라도 희망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딥 임팩트>의 혜성이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생긴 것도 비슷해 보인다. 아 무서워.

▶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2020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2019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 2019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