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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시대에 저항하는 자, 광기의 살인극을 빚는다
2020-09-08

◆ 조디악/Zodiac (범죄,드라마,스릴러/감독 :데이빗 핀처 , 출연 : 제이크 질렌할, 마크 러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10여 년 전에 발표됐지만 지금 보면 이 영화가 희대의 걸작 임을 뒤늦게 알게 해 주는 영화들이 있다. 데이빗 핀처의 2007년작 <조디악>이 그렇다. 1969년부터 이후 약 10년간 미국 동부를 떨게 만들었던 연쇄 살인극을 기록한 영화다. 물론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인데 원작은 국내에 번역되지도 못했다. 그만큼 사건이 너무 복잡하고 그 사회적 의미의 층위(層位)가 다단해서이다.

이 얘기는 사실 19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하는 미국 현대사 및 그 분위기를 감별해 내지 못하면 무지무지하게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다. 게다가 2시간38분 짜리다. 일종의 <그것이 알고 싶다>같은 영화인데 ‘그알’과는 달리 범인과 관련된 실마리가 아주 조금씩 조금씩 새어 나오는데다가 끝내 잡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그알’도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심증조차 주지 못한다. 민완형사였다가 나중에 사건을 조작했다는(사건 파일을 다시 오픈시키기 위해 연쇄 살인범 조디악의 편지를 대필했다는) 의심까지 받았던 형사 데이브 토스키(마크 러팔로)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안정적인 카투니스트란 직업 조차 때려 치우고 조디악의 행적에 목을 매는(집착의 병증을 보이는)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책을 끝내시오.”

이 말 한마디에는 여러가지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제일 핵심적인 것은 법적으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한계는 다 넘어섰다, 모든 것은 다 정황증거일 뿐이다, 그러니 이제 믿을 것은 책=저널밖에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건 일종의 검찰의 받아 쓰기같은 것인데 그걸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것이다. 법 수호자와 저널리스트가 어떻게 공동선(共同善)의 입장을 두고 결합해 내느냐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현 시점의 우리 검찰-언론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영화에서 검찰이든 경찰이든 언론이든 제1의 목표는 증거, 증거, 증거이다. 결코 ‘카더라’ 소설따위는 절대 쓰지 않는다. 그리고 데스크들의 편집회의가 엄연히 시퍼렇게 살아 있고 중요한 문제는 사주의 객관적인 판단이 존중되는데 여기서 방점은 사주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지 회사의 영업이익나 사유 재산을 지키려는 판단은 아니라는 데에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언론은, 그것이 워싱턴포스트이건 뉴욕타임즈이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건 언론의 정도(正道)가 든든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런 것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지만. 특히 한국에서.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세계 최하위라던가.

<조디악>은 세 인물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조디악은 도무지 정체가 오리무중인 연쇄 살인자로 신문사에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거나 앞으로 저지를 살인의 예고를 편지로 보내 온다. 해군에서 사용했음직한 암호문을 첨부하는데 이것이 압권이다. 그런데 이 암호문을 처음 푼 사람은 수사기관도, 군 당국자도, CIA도 아니다. 중학교 부부 선생인데 그만큼 대중들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던 사건이라는 얘기다. 아까 얘기했듯이 사건은 세 사람이 좇는다. 만년 알코올중독자이지만 촉이 만만치 않은 중견 기자 폴 에이버리 기자(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강력반 형사 데이브 토스키, 삽화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이다. 여기에 필적 감정가 셔우드 역의 필립 베이커 홀에서부터 동료 형사들 역인 윌리엄 암스트롱(아마도 시즌드라마 E.R로 익숙한 배우일 것이다.), 엘리아스 코티아스(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크래쉬>에 나왔던), 더모트 멀로니(박찬욱의 영화 <스토커>) 등등에다 브라이언 콕스 그리고 조디악일 것으로 거의 확증성 의심을 받는 범인 리 역의 존 캐롤 린치 등등 이른바 성격파 배우의 은하수가 펼쳐진다.

영화의 핵심적 톤앤매너는 집착과 광기이다. 조디악의 살인 자체가 그렇다. 그는 자신의 생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혹은 죽이겠다고 한다. 그에게는 연쇄살인마가 보여주는 패턴이 없다. 어빙 피첼이 만든 1932년 영화 <위험한 게임>의 중독자인 것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것도 간난의 취재와 수사 끝에 가까스로. 고전영화 <위험한 게임>의 주요 인물은 자로프 백작인데 다수의 인물과 섬에 표류하게 되고 처음에는 동물을 수렵하며 생존해 가지만 가장 위험한 동물은 사람이라며 나중에는 생존자 한명 한명을 처치하고 마는 인물이다. 조디악은 자로프가 말한 것처럼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는 신념에 동의하고 그의 행동지침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조디악의 광기만큼 토스키 형사나 기자 폴 에이버리과 삽화가 그레이스미스 역시 점점 더 광기에 휩싸인다. 특히 에이버리가 그렇다. 그는 점점 술에 대한 의존도가 강해지고 오로지 조디악만 좇는 일만 하다가 신문사를 그만 두고 2류, 3류로 밀려나 생을 마감한다. 그레이스미스의 집착 역시 도를 넘어서기 시작하는데 어렵사리 재혼한 아내(클로에 셰비니)와 아이들조차 그를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이는 결국 헤겔의 얘기를 보여주는 셈이다. 괴물을 마주하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돼가서는 안된다. 그러나 토스키나 에이버리나, 그레이스미스나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자신들을 느낀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더 이상 범인 조디악을 좇기 보다는 책을 쓰는 것이다. 사건을 아는 만큼까지 만이라도 그 실상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집착과 광기의 분위기는 60년대 후반과 70년대 내내가 그랬다. 미국사회는 로버트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을 죽였다.(68년) 민권운동과 플라워 무브먼트, 히피즘이 만연했고 백인 중산층, 기득권자들은 그걸 공산주의나 동성애자들, 마약중독자나 사탄 의식과 동일시 했다.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가 아닌가? 시대는 공간과 국가를 넘어 반복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조디악>에서도 라디오 출연자 중 한명은 ‘이 짓’은 히피가 저지른 것이라고 한다. 또 한 사람은 흑인들의 ‘짓’이라고 말한다. 미국사회는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됨으로써 대통령직이 얻어 걸린 닉슨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 패전으로(1972~1873) 이어진다. 사회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무조건적으로 자본만이 우선시 되는 분위기로 돌입한다. 그게 레이건으로 이어지는 시대로의 전환이다. 모두 극도의 혼란을 거친 후의 일이다. 현 시대에, 레이건이 과대평가되고 있는 이유(강한 미국을 만들었다 따위의)는 그 이전의 광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에 나타났던 착시효과였을 뿐이다.

<조디악>은 그 미친 시대의 이야기다. 시대의 코드는 영화의 뒤로 숨고 미친 살인극이 영화를 헤집고 뛰어 다닌다. 뛰어난 스토리 텔러만이 해 낼수 있는 드라마적 구성이다. <조디악>은 지금 와서 다시 보면 기이하게도 한국의 사회를 닮아 있어 깜짝 놀라게 한다. 변화하려 하지만 변화하기에는 장애가 너무 많은(혹은 변화에 대한 저항이 많은) 사회일수록 나타 나는 극도의 불안증 같은 것이 매우 닮아 있다.

2007년 국내 개봉 당시에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금 다시 개봉되면 사뭇 분위기가 다를 것이다. 영화는 시대와 함께 진화한다. 사람들의 시대감성도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한다. <조디악>이 딱 그런 영화이다. 기자들에게라면 더욱 권할 영화다. 의사들에게는 덤으로 권한다.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