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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토리] 딥 임팩트에서 그린랜드 사이, 22년간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2020-10-12

영화 '그린랜드' (2020년 9월 개봉 / 릭 로먼 워 감독, 제라드 버틀러·모레나 바카린 주연)

영화 '딥 임팩트'와 '그린랜드' 포스터

최근 개봉돼 극장에서 상영 중인 [그린랜드]는 22년 전인 1998년에 개봉된 미미 레더 감독의 [딥 임팩트]와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아니 사실은 마치 리메이크처럼 여러 가지가 똑같은 내용의 영화다. 일단 혜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설정이 똑같다. [딥 임팩트]에서도 미확인 혜성이 지구에 접근 중이고 인류 절멸의 위기가 예상되는 만큼 미국 정부는 생존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선택적 소수의 사람들(미국인들만)을 지하 요새에 수용할 계획을 세운다. 동시에 ‘메시아’라는 우주선을 혜성으로 보내 이를 핵무기로 파괴할 계획을 세운다. [그린랜드]도 마찬가지다. ‘클라크’라고 명명(命名)된 혜성이 무작위의 크기와 숫자로 지구에 충돌할 예정이고 실제로 충돌 중이다. 정부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문자를 보내 특정 지역에 이들을 수용해서 재앙 후에도 인류의 생존을 지속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렇게 지구 재앙조차 계급적, 계층적으로 다루려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오히려 혼란은 더욱더 가중된다. 인간과 인간의 살육전은 도처에서 눈뜨고 바라 볼 수가 없을 지경이 된다.

주인공인 존(제라르 버틀러)과 앨리슨<모레나 바카린)부부, 이들의 어린 아들인 네이선(로저 데일 플로이드)은 정부로부터 피신을 위해 어느 공군 기지로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이들 가족은 이웃들 중에서 연락을 받은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건 존이 건축공학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역시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직업은 좋아야 한다.) 공군 기지 앞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존-앨리슨 부부는 자신들만이라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도 있다는 기대와 희망은 잠깐, 만성 소아 당뇨환자인 아들 네이선이 출입이 거부되자 패닉에 빠진다. (당뇨병 등 기저질환자는 코로나19 시대든 혜성의 시대든 가장 안 좋은 인자들이라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존과 앨리슨-네이선은 군중들 틈에서 헤어지게 된다. 아빠와 엄마-아들이 서로를 찾는 과정에서 간신히 도움을 얻게 된 앨리슨은 한 중년 부부로부터 공군기지 출입 패스인 손목 밴드를 강탈당하고 아들인 네이선마저 뺏기게 된다. 존 역시 어렵사리 얻어 탄 트럭의 사람들로부터 그 팔찌 때문에 거의 살해될 뻔한다. 모두들 죽기 직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나중에 죽겠다며 동물적 이기심의 이빨을 드러낸다. 혜성 충돌은 곧바로 지구 안 인간들의 투쟁으로 변모한다. 적과 괴물은 우리 안에 있는 셈이며 영화는 그 과정을 꽤나 오랫동안 보여 준다.

22년 전 [딥 임팩트]와 [그린랜드]의 가장 큰 차이는 지구가 결국 생존하는 것과 거의 전멸 수준으로 가는 것에 있다. [그린랜드]에서는 진실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 근데 그건 꼭 정부의 생존 리스트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극 지점 그린랜드에 있는 벙커로 간다. 이 벙커는 핵 전쟁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딥 임팩트]에서 [그린랜드]로 오기까지 22년 사이에 사실상 지구는 멸망했음을 보여 준다.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과 인식이 옛날에 비해 더 비관적이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기자와 언론의 역할에서 찾아진다. [딥 임팩트]에서는 여성 앵커 제니와 그녀의 방송이 큰 역할을 한다. 제니는 정부로부터 지구 멸망의 상황과 그에 따른 극도의 비밀 프로젝트를 미리 전해 듣지만 끝까지 엠바고를 지킨다. 대신 그녀가 받는 특혜라고 하는 것은 고작 백악관 공식 브리핑 때 대통령에게서 질문자로 지명받는다는 것 정도다. 이 전 지구적 위기의 정보가 대중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진 다음에도 제니는 자신의 방송 크루(crew)들과 최선을 다해 ‘진짜’ 뉴스만을 전달하려 애쓴다. 현재 상황을 그대로 전하려 노력한다. 사실을 부풀리거나 괜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멘트를 자제한다. 제니와 그녀의 언론에게 가짜 뉴스란 없다. 결국 제니는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기자로서, 지켜야 할 최후의 순간을 지켜 낸다. 그것은 품위와 절제이다.

반면에 최신 영화 [그린랜드]에서는 언론과 기자의 역할이 아예 ‘없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소용이 없다. 재앙의 규모가 워낙 방대하고 어마어마해서 현재의 통신 기술로는 위기의 상황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뉴스는 어느 정도 이어지지만 결국 모든 것이 끊긴다. 통신과 방송은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과거의 아날로그 시대처럼 입에서 입으로 정보를 전달해 나른다.

더 중요한 것은 ‘클라크’라는 혜성이 충돌하기 직전까지도 언론과 방송이 희희낙락 한다는 것이다. 방송앵커와 그(녀)의 게스트는 정부가 흘린 가짜 뉴스를 받아쓰거나 앵무새처럼 되뇌되 여기에 살까지 붙인다. 혜성이 지구를 향해 오긴 오는데 태평양 저 바다 한가운데에 떨어지기 때문에 피해가 거의 없다는 둥, 크기가 작기 때문에 쓰나미 등을 염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둥의 얘기를 해댄다. 그러면서 마치 불꽃놀이를 즐기는 것과 같을 거라고 낄낄댄다. 사람들은 방송 뉴스를 무심결로 듣는다. 실제로 불꽃놀이를 즐기려고까지 한다. 그러나 가장 작은 혜성조차 충돌 순간에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경악한다.

[그린랜드]는 결국 뉴스의 진실에 대해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뉴스는 늘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기자는 늘 어떤 경각심 하에서 살아야 하며, 언론이 늘 얼마만큼 사실에 입각한 취재와 보도에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뉴스는 항상, 늘, 그리고 언제나, 전 지구적 재난상황(그것이 물리적이든 정치적이든 군사적이든 그 무엇 때문이든)을 염두에 둔 매뉴얼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 매뉴얼이 지켜지는 기자 품성의 또 다른 매뉴얼이 작동돼야 한다. 기자가 기자답고 언론이 언론다워야 이 불확실한 시대에 사람들이 그나마 조금은 안심과 위안을 구해가며 살아갈 수 있다. TV를 켜고 뉴스를 볼 때마다 사람들이 저 거짓말쟁이, 저 ‘뻥쟁이들!’이라는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이미 갈 데까지 간 것이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혜성 충돌이 낫다. 그 재앙이나 이 재앙이나 극도로 위험하기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이런 영화를 보고 사는지나 모를 일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