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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토리] 1870년대의 뉴스맨, 그의 가르침
2021-03-10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 (감독 : 폴 그린그래스, 주연 : 톰 행크스, 헬레나 젠겔)

넷플릭스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는 다른 얘기를 하는 영화지만 기자의 시선으로, 언론의 관점으로 보면 요즘 시대에 눈여겨볼 만한 이야기가 철철 넘친다. 톰 행크스가 왜 이 영화의 주연을 수락했는지, ‘개념파’ 배우로서 그의 정치적 의도가 비교적 쉽게 읽힌다. 이 영화는 트럼프 시대에 기획됐는데, 얼토당토않았던 대통령의 언론관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이다. 더불어 그럴 때일수록 언론과 기자가 어떻게 해야 했고, 무엇에 충실해야 했는가를 강조하는 작품이다. 이 점을 토대로 보면 영화의 텍스트는 꽤나 해석하기 쉽다.

주인공 캡틴 키드(Captain Kidd 톰 행크스)의 영화 속 닉 네임은 ‘뉴스맨’이다. 그는 텍사스 출신으로 남북전쟁(1861~1865) 당시 남군으로 싸웠다. 전쟁이 끝난 후 그가 택한 일은 텍사스에 세상의 뉴스를 알리는 일이었다.

때는 1870년, 연방정부 즉 미국이라는 국가는 빠르게 완성돼 가는 중이었지만, 텍사스만큼은 고립된 지역 감정이 강할 때였다. 그러다 보니 당시 텍사스는 현재의 ‘러스크 벨트’라 불리는 지역처럼 경제 상황이 점점 피폐해졌다. 텍사스는 전쟁 전 연방 탈퇴 후 다시 연방 가입이 허가되었지만 인종 차별과 린치, 살해 행위가 잇따를 만큼 무법천지였다. 여기서 인종이란 인디언과 멕시코인, 흑인들까지 포함된다. 텍사스는 KKK 단(※ 미국의 극우비밀결사)의 발원지이다. 뭐 ‘안 봐도 비디오’이다. 야만의 시대에 가장 야만적이었으며 그 같은 ‘근성’과 ‘악습’은 여전히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이 지역이 트럼프로 넘어가느냐 마느냐를 놓고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후 트럼프가 부정선거 논란을 지핀 중심 지역이기도 하다. 백인 중심에다 미국 우선주의, 텍사스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동네’다.

그러니 바깥세상의 뉴스가 잘 들어 가지 않는다.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캡틴 키드는 텍사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텍사스 면적은 알래스카만 하다. 남한의 6배쯤이다.) 사람들을 모아 텍사스 바깥의 뉴스를 전하는데 각 지역에서 나오는 신문을 클리핑(clipping) 해서 그것을 읽어 주는 방식이다. 사람들에게는 1다임(10센트) 씩을 받는다. 현대사회로 말하면 그는 일종의 앵커인 셈이다. 기자나 리포터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받는 돈은 일종의 시청료나 청취료인 셈이니 미국의 언론과 방송이 어떤 식으로 시작돼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어서 매우 흥미롭다. 게다가 당시에도 신문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1870년대는 한 마디로 미국 언론의 시작 지점이었던 것이다.

뉴스맨 캡틴 키드가 그 와중에 벌이는 일은 인디언에게 끌려가 인디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어린 소녀 조해나(헬레나 젠겔)를 텍사스 내 자기 집으로 데려다주는 것이다. 사실은 이게 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다. 두 사람은 말과 마차로 텍사스 황야를 5주동안 횡종단하면서 어마어마한 일을 겪는다. 가장 두려워했던 인디언들의 공격은 조해나 덕에 무사히 넘긴다. 그보다는 텍사스 무법자들, 미친 인간들(소아성애자, 강간마, 강도)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가 길을 잃었어. 집에 데려다줘야 해.

아이를 (버릴 요량으로) 잠깐 다른 집에 맡겼다가 다시 아이를 찾으러 갔을 때 그는 말한다.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돼. 나하고 같이 있어야 해. (You have to belong to me.)


아이가 철철 울고, 캡틴 키드도 눈물을 흘린다. 이 영화는 그렇게 사람들을 울린다.

어쨌든 두 사람은 그렇게 아빠와 딸이 된다. 캡틴 키드는 조해나의 삶을 구하려 한다. 키드는 아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를 안다. 두 사람은 각자 영어와 인디언 말밖에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캡틴은 점점 더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보다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마차에 나란히 앉아 끝없는 황야를 달리면서 언제부턴가 캡틴 키드는 조해나에게 이런 얘기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전 일은 잊어. 직진이야. 직진을 하는 거야. 뒤를 돌아볼 필요 없어. 알았지 얘야. 과거는 묻어 버려야 해.


아이 조해나가 캡틴 키드에게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은 ‘직진’이다.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는 1870년대 얘기가 아니다. 지금 얘기다. 서부의 얘기도 아니다. 미국 전체에 대한 얘기이며, 무엇보다 언론에 대한 얘기이자, 더 나아가 우리 언론에 대한 얘기이다.

캡틴 키드가 뉴스를 읽어 주며 당하는 일도 현대에 벌어지는 일과 다르지 않다. 어느 한 지역에 가니 꼴통 무법자가 그 마을을 지배하는데 뉴스를 읽되 자신을 칭송하고 찬양하는 신문을 던져 주며 그것만 읽으라고 한다. 트럼프와 폭스 뉴스 사주가 기자들과 앵커들에게 하는 짓이다. 그런데 키드는 지금의 기자나 앵커와는 달리 무법자를 위한 가짜 뉴스를 거부하고 세상의 진짜 뉴스를 읽어 주다 봉변을 당한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무법자는 바로 트럼프와 미국 극우주의자들을 의미한다. 근데 어디서 많이 봐 온 캐릭터다. 요즘 우리 주변에도 득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블러디 선데이’와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 ‘그린 존’ 등을 만들었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만든 영화다. 폴 감독과 배우 톰 행크스는 둘 다 진보적이다. 뉴스 맨이라면 직업으로서 어떤 걸 지켜야 하고, 또 어떤 선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함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 같은 시기에 이 영화가 갖는 유의미성은 참으로 크다. 다른 나라보다 한국의 기자와 방송 앵커들이 유심히 보고 성찰할 영화다. 톰 행크스에게서 한 수 배울 일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