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Y 스토리] YTN 화면 해설방송을 아시나요?
2021-03-16

이 선 영 / 편성운영팀 화면 해설방송 담당

화면 해설방송이란?

‘화면 해설방송’이란 낯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2019년 10월 처음 이곳에 왔다. 겹겹의 보안을 뚫고 들어오는 방송국은 낯설고 설레었다. 내가 일하는 곳엔 TV 모니터와 컴퓨터, 마이크, 음향 콘솔이 있는 작고 네모난 방으로, 다소 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 출근해서 퇴근까지 사람 볼 일이 드물다. 가끔은 혹시 밖에 무슨 일이 생기면 탈출할 수 있을까?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라 내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다 나가버리면 어쩌지? 하며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요즘 어떤 일 해?”라는 주변의 질문에 "YTN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방송을 한다"라고 말하면 "그게 뭔데?”라고 재차 질문이 돌아온다. 결핍이 없는 사람에게는 궁금하지 않을, 존재감이 약한 영역이다. 소리가 들리면 듣고, 글이 나오면 자막을 읽으면 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을 사는 사람에겐 필요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일의 경중과 상관없이 덤으로 주어진 시간처럼 “좋은 취지의 일이구나”로 대화는 늘 마무리 된다.

나도 화면 해설방송을 하기 전엔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다. 관심을 두고 보니 이미 영화, 드라마 등 여러 영역에서 ‘베리어 프리(Barrier free,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가 적용되고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보이는 '선택적 영역'이다. 뉴스다 보니 영화만큼 스토리를 더해줘야 할 필요는 없지만 중간중간 인터뷰어의 이름과 외국어 통역을 전달하고 자막이나, 영상으로만 채워진 부분을 음성으로 전환하는 일을 한다.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어떤 불편함이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 최대한 튀지 않게 방송하자는 게 나의 목표다.

보이는 상태에서 화면해설이 더해지면 난잡하고 거슬리지만, 소리에만 의존하게 될 때는 뉴스를 이어주는 가교(架橋)다. 그동안 화면 해설방송은 YTN 앵커들이 돌아가며 해왔지만, 2019년 하반기부터는 내가 고정적으로 맡게 되었다.

감동 YTN

이곳에 오기 전엔 한국도로공사에서 교통캐스터로 10년간 일했다. 각 방송사로 고속도로 교통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주말이나 명절엔 YTN, YTN DMB에도 연결해 친근감이 느껴졌다. ‘아들 하나 낳아서 잘 기르자’가 목표였던 나는 계획에서 벗어나, 2년에 한 번씩 딸을 낳고 결국 딸 셋 엄마로 휴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음식점을 운영하는 남편을 도와 주말엔 홀을 누비며 바쁘게 살게 되었다. 방송과 점점 멀어져 가는 일상이었지만, 방송에 대한 열망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가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위안으로 삼았지만 일에 대한 갈증은 더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한 선배로부터 ‘화면 해설방송’이라는 일이 있는데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주저없이 기쁘게 동의했다.

출, 퇴근이라는 고정적인 외출이 허락되었다. 일하는 시간 버금가는 출퇴근 시간은 1년 반이 되어가는 지금도 나에겐 충전의 시간이고,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라 귀하다. 육아의 시간만을 보내다 만난 값진 자유에,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채워주는 지금이 정말 감사하다. 아이를 낳은 것이 이곳에선 장애가 되지 않았다. 목소리가 필요한 곳에 목소리를 채워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고 이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곳도 많은데 오히려 이곳에선 일이 육아에 지장이 있지는 않은지 배려해 주는 팀원들을 보며 '감동 YTN'을 외쳤다.

누구에게? 누구에게든. 화면해설방송

‘시각장애인을 위한’이라는 타이틀이 붙지만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라도’ 화면해설을 설정하면 궁금함이라는 방지턱을 넘을 수 있다. 소리의 빈자리가 크지 않은 뉴스기 때문에 내 역할은 미약하지만, 주유소나 세차장, 식당 그리고 가정 등 뉴스를 켜두는 곳 어디서든 ‘시선의 자유’ 를 누리길 바란다. 점점 눈이 안 좋아지는 나는 후루룩 지나가는 글자들에 피곤해지기도 한데 어르신들께도 소리로의 전환이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어떤 사람이 화면 해설방송을 볼지 감이 오지 않아, 혼자 진지한 건 아닌가 초조함이 들 때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듣고 있다’라고 셀프 세뇌를 하며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맞서고 있다. 두려움이 확실함으로 바뀌면 안심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다 보니 이 방송을 설정하는 과정이 다소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성인식이 잘 돼 있다 해도 설정과 해제가 조금은 불편하다. 리모컨에 단축 버튼이 있어 원할 때 켜고 끄기가 자유로워지면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누구든 필요하면 선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청각장애와 상관없이 조용해야 하는 관공서나 은행 등에서 자막방송이 유용한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YTN 식구들에게 인사해 본다.


소리 없이 왔다 가지만 저도 있어요.^^

‘보이는 길밖에도 세상은 있다’는 말을 끝으로 이상, 이선영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