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M스토리] 경찰은 안돼. 기자를 찾아!
2021-05-10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감독 : 테일러 쉐리던, 출연 : 안젤리나 졸리, 니콜라스 홀트, 핀 리틀 등)


뭐니뭐니 해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안젤리나 졸리 때문에 찾게 되는 영화다. 각진 얼굴, 탄탄한 몸매는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그녀를 할리우드에서 가장 섹시한 배우로 대우받게 한다. 그건 그녀가 어떤 역할을 하든 상관이 없다. 이번엔 소방관이다. 그런데 그게 더 매혹적이다. 터프한 남성성까지를 곁들이게 하기 때문이다.


일부 영화광들이라면 졸리 때문만이 아니라 ‘테일러 쉐리단’이라는 감독 이름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할 것이다. 아일랜드 출신 짐 쉐리단 감독(‘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의 왼발’, ‘인 아메리카’ 등)의 아들이다. 그의 여동생 커스틴 쉐리단도 감독인데 ‘어거스트 러쉬’로 한국에서는 이름을 얻었다. 쉐리단 가문의 일원들이다. 테일러 쉐리단은 각본을 많이 썼는데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가 대표작이다. ‘윈드 리버’ 이후 감독 일을 한다. 그동안 많이 써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솔직히 그저 그렇다. ‘시카리오’의 작가였던 만큼 액션 시퀀스들은 상당히 시크(chic)하고 하드 보일드 하지만 전반전인 정서는 꽤나 신파적이고 (보기 좋을 만큼만) 구질구질하다.

여주인공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공수소방대원이다. 미국에는 이런 소방관들이 있는 모양인데, 워낙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 잦다 보니 특정 지역에 낙하해서 진화작업을 하는 전문요원들이다. 한나는 자신이 바람 방향을 잘못 읽(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아이들 세 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산다. 사실은 그녀에게 정보가 잘못 전달된 것이지만, 하여튼 그렇다. 그래서 좌천됐다. 산골 깊숙이 있는 OP(Operation Post), 감시탑에 배치받는다. 비현장요원인 된 셈이다. 그렇게 좌절과 한숨, 무료함의 나날을 보내던 첫 감시탑 임무의 날, 코너(핀 리틀)라는 아이가 누군가에 쫓겨 산으로 들어 온다. 알고 보니 아버지(제이크 웨버)가 킬러들(니콜라스 홀트, 에이단 길런)에게 살해당한 후 한나가 사는 마을의 경찰인, 외삼촌 에단(존 버쌀)에게 오던 길이다. 한나와 코너, 킬러 간에 피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게다가 이 킬러들, 대형 산불까지 일으킨다!


자 이쯤 되면 눈치챌 사람은 눈치챘을 것이다. 이 영화 제목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서 ‘나’는 졸리가 아니라 아이 역의 핀 리틀이다. 그러니까 사실상 주인공은 아이이지 졸리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 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모으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배역의 비중 면에서 졸리 역의 무게 중심을 대폭 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극중 사건의 원인과 추동은 아이에게 있는 만큼 이야기가 졸리에서 아이로 왔다갔다 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도 ‘킬러 살인극’에서 ‘산불 재난극’으로 왔다 갔다 한다. 기자가 쓰는 기사가 됐든 영화가 꾸미는 이야기가 됐든 갈피를 잡지 못하면 안된다. 이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의 패착은 거기에서 찾아진다. 영화는 배우와 감독의 면면, 이야기의 상황 설정 등등은 매력적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완성도 측면에서라면 평점을 낮게 줄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석은 ‘거두절미’ 화법이다. 아이인 ‘코너’의 아버지가 왜 살해됐는지, 킬러들은 왜 이 부자(父子)를 노리는지, 무엇보다 어디 소속인지, 그리고 도대체 왜 이렇게 잔혹하게 구는지, 영화는 도통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도 처음에 죽는 사람이 대형 비리의 뒤를 좇던 검사인 만큼 뭔가 정재계가 얽혀도 단단히 얽힌 일인 듯 싶다. 영화 속에서 죽는 아버지는 살해된 검사가 특별 임명한 회계사였다. 돈 세탁 범죄를 찾는 전문가다. 그러니 거대한 산처럼 둘러싸인 듯 보이는 정치사회 범죄의 이야기는 짐작만 하는 게 차라리 낫다. 워낙 요즘 세상에서라면 너무 흔한 일이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쿨’하게 넘어 간 점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게 이 글의 진짜배기 ‘속셈(?)’인데 죽어가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서 달아나라고 하면서 손에 쪽지를 전해 주고 당부한다.


그 쪽지를 꼭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전달할 것, 만약 그게 안 되면 절대 경찰한테 주지 말고 꼭 언론에 보낼 것, 그 두 가지 사안이었다.


경찰이나 검찰보다 그래도 언론을 신뢰한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매우 신선하게 느껴진다. 주변에서 요즘 느낄 수 없는 일이라 더욱 그렇다. 실제로 영화는 후반부에서 경찰차가 ‘삐요삐요’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SNG(Satellite News Gathering, 위성기반 뉴스 장비) 차량만이 몰려든다. 이 SNG도 없어진 지 오래됐지만. 할리우드나 미국은 여전히 쓰는 모양이다.


재난 사건이나 대형 참사에서 언론마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지 막막해진다.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은 아닌지 되새기게 만든다. OECD국가 중 언론 신뢰도 꼴찌라던데 그건 이 영화의 산불만큼이나, 또 추격전만큼이나 위급한 일이 아닐까 모르겠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바로 그 점을 반추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권할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Tip : <툼 레이더>의 전사 안젤리나 졸리는 이번엔 그렇게 잘 싸우지 못한다. 대신 엄청나게 얻어 맞는다. 그 예쁜 얼굴이 엉망이 된다. 근데 그런 설정이 옳다. 소방관이 너무 잘 싸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