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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기사 페이지를 늘려! 아무것도 자르지 마!”
2021-12-10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 머레이 등)

▲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포스터


최근 개봉된 영화 중에 비교적 지적인 관객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은 <프렌치 디스패치(The French Dispatch)>만큼 작금의 언론에 대해 우회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영화가 있을까. <프렌치 디스패치>는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한 월간지의 종간(終刊)에 대한 추억과 찬사, 회한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회한이란 이렇게 고색창연하고 미디어의 고전적인 원칙을 고수하는 잡지가 이제는 사라지거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실제로 이런 간행물이 현재 주변에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 한국에서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가상의 잡지는 이 영화를 만든 웨스 앤더슨 감독이 미국을 대표하는 잡지인 ‘뉴요커(THE NEW YORKER)’를 염두에 두고 창안해 낸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뉴요커’는 여전히,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기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스틸컷


영화 속에서 ‘프렌치 디스패치’는 미국 캔사스의 한 부호 아들 아서(빌 머레이)가 자신의 취향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치기 위해서 프랑스 앙뉘라는 곳에 왔고, 현지에서 ‘피크닉’이라는 잡지를 인수해 이를 고급 정론지로 탈바꿈시킨 월간지로 설정된다. 수십 년간 편집장 일을 해온 아서는 에디터로서 비교적 철저한 편집 원칙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기자들의 취재의 자유와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지원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자의 글이 너무 길다는 편집부의 지적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페이지를 늘리고 기사 전문을 싣게 해! 인쇄기를 더 돌려! 나는 아무도 안 잘라!”


물론 이건 기사의 방향과 품질이 자신의 잡지가 지닌 고품격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때의 얘기다. 편집장의 그 같은 경향과 고집은 기자들이 다소 과도한 취재비를 썼다 한들, 그것이 회사 재정에 다소 악영향을 끼친다 한들, ‘기사만 마음에 든다면’ 가능한 한 비용을 지불하는 데에서도 찾아진다. 요즘 같아서는 어느 나라, 어느 언론사에서든, 쉽게 꿈꾸지 못할 일이다.

▲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스틸컷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의 기본값, 기본 설정은 편집장 아서가 죽은 것에서 시작한다. 편집장실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진 그의 유언은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발행을 영구히 중단한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그는 인쇄기를 녹일 것, 기자와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한 후 계약을 종료시킬 것 등을 지시했다. 이제 ‘프렌치 디스패치’는 마지막 호를 내야 하며 영화는 그 최종호에 실릴 기사 세 건을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오프닝은 일종의 인트로 섹션으로 지역 뉴스 페이지를 소개한다. 로컬 기자(오웬 윌슨)를 통해 프랑스 앙뉘의 역사를 살짝 더듬는다. 한 마디로 ‘여기는 어디?’ 섹션인 셈이다.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 곧 세 개의 에피소드도 잡지의 섹션처럼 구분돼 있다. 첫 에피소드는 일종의 ’아트’ 섹션이다. 무기수로 살아가는 죄수(베네치오 델 토로)가 초현실주의 화가로 거듭나는데 미술품 애호가이자 화상(畵商)인 동료 죄수(에드리안 브로디)가 그 가치를 알아본 뒤 석방 후 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게 되는 이야기다. 코믹한 느낌이지만 꽤나 예술적이다. 이른바 잭슨 폴록 류의 추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런 그림들이 지닌 본질적 의미 같은 것을 담아내고 있다. 무기징역 형의 죄수는 감옥 내 유일한 여성 교도관(레아 세이두)의 누드를 그리고 그걸 추상화로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만들어 낸다.

▲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스틸컷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정치 시사 국제’ 섹션이다. 이 에피소드는 프랑스 6.8 혁명 때의 이야기이고 오랜 경력의 여기자(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운동권 중 이른바 체스 파(派), 곧 체스 동호회로 불리는 한 학생 그룹의 리더(티모시살라메)의 활동을 취재하면서 당시의 좌파 운동이 얼마나 치기 어린 것이었는지,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또 얼마나 순수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얘기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음식 생활’ 섹션이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이야기는 한 경찰서장(마티유 아말릭)의 아들이 마피아에 의해 납치되는, 인질 사건으로 변화한다. 원래는 음식 요리 담당 기자(제프리 라이트)가 경찰 음식을 만들어 일약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경찰서 내 요리 담당 경위(스티브 박)를 취재하러 갔다가 벌어진 일이다. 경찰 음식은 밖에서 간편하게 빨리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패스트푸드지만 영양식으로 개발된다. 영화 속 마피아 대 경찰의 대결은 비교적 요절복통의 모습을 보이는데 영화 중간중간 삽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편집장 아서의 장례를 위해 모인 기자들이 그에 대한 기사를 쓰는 ‘추모(obituary)’ 섹션이다.

▲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스틸컷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가 지닌 전통적이면서도 영롱한 느낌의 미학에 대해서는 굳이 장황한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최근 나온 작품들 가운데 가장 고전적인, 그러면서도 이른바 가장 ‘영화적’인 작품이다. 한편으로는 언론과 미디어, 기자와 기사에 대해 가장 본래적이면서도 근본적인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한때 우리에게도 이런 간행물, 이런 언론, 이런 편집장이 있었던 시절이 존재했다. 안타깝게도 과거형이다. 그런 잡지, 일간지, 방송 보도물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독자나 시청자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인지, 이제는 고매한 기사 따위는 읽지 않는, 젊은 취향의 가볍고 빠른 트렌드가 그런 미디어의 생존을 박탈한 것인지, 그 선후를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의미도 없다. 지금의 시대는, <프렌치 디스패치>같은 영화가 그러한 시대, 그러한 언론, 그러한 대중의 복원을 주장하고 있는 정도일 뿐이다.

▲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