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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히어로와 저널리스트가 지나간 자리는 혼란뿐인가?
2022-01-10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히어로와 저널리스트가 지나간 자리는 혼란뿐인가?>

- 히어로물과 저널리즘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감독 : 존 왓츠, 출연 : 톰 홀랜드, 젠데이아 콜먼,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포스터


히어로물에는 기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 ‘슈퍼맨’과 영화 ‘스파이더맨’은 히어로물이라는 공통점과 함께 모두 만화를 원작으로 하지만, 주인공이 모두 저널리스트라는 점에서 같다. 물론 ‘슈퍼맨’의 클라크 켄트는 일반 취재기자이고, ‘스파이더맨’의 파커는 프리랜서 사진기자다. 정규직 취재기자나 프리랜서 기자 모두 하는 일은 자의든 타의든 영웅에 관한 보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또한 영화 ‘배트맨(1989)’에는 유능한 사진기자 비키 베일(킴 베이싱어)이 동료 취재기자와 백만장자 브루스 웨인(마이클 키튼) 그리고 배트맨의 연관성을 파헤친다. 전쟁터에서 활약한 경험을 내세우지만, 당대 섹시 심벌의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아쉽게도 할리우드의 습성인 여성 기자의 상품화와 밀접하다. 영화 ‘아이언맨 1, 2’에 등장하는 크리스틴 에버하트(레슬리 빕)도 토니 스타크에게 이성적으로 관심 있는 기자다. 저널리스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섹시한 이성으로 등장시킨다.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


남성 기자든 여성 기자든, “왜 이렇게 히어로물에는 기자가 단골로 등장하는 것일까?” 두 가지 공통점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어쨌든 히어로나 저널리스트나 진실과 선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히어로가 과연 영웅인지 저널리스트는 검증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선을 내세우지만, 악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진실탐사라는 저널리스트의 기본 의무이자, 역할에 해당한다. 물론 이러한 역할과 의무에 충실하다면 더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의 공통점은 본인이 본인을 취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늘 기자가 다른 대상을 취재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어기게 된다. 이럴 때 아무리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스트라고 해도 사실대로 보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택적으로 보도를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언젠가는 사실대로 보도해야 하는 상황을 예정하기 때문에 관객에게는 흥미를 자아내게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과연 사실 그대로 알리는 것이 진실을 위해 바람직한지 묻게 하는 설정이기도 하다.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


저널리스트와 관련한 많은 작품 가운데 이 글에서 초점을 두려는 것은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Spider-Man: No Way Home)’의 저널리스트가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 속 데일리 뷰글 편집장 J. 조나 제임슨(J. K. 시먼스)은 영웅의 허구를 벗겨내려는 저널리스트의 유형에 해당한다. 정작 자신이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를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고용하고,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모르기도 한다. 이는 등잔 밑이 어두운 저널리즘의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더구나 그는 스파이더맨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면서 그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방송을 가한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이제 신문을 넘어 자체 방송까지 구축하면서 집요하게 스파이더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한다. 그가 스파이더맨을 싫어하는 것은 사적인 감정이 개입돼 있다. 가족이 복면을 쓴 괴한에게 살해를 당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이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면 얼마나 진실이 왜곡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아무리 그런 트라우마가 있더라도 단지 복면을 썼다는 이유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 옳다고 볼 수가 없다.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 - 데일리 뷰글 편집장 J. 조나 제임슨(J. K. 시먼스)


여기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저널리즘 태도가 있다. J. 조나 제임슨이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에서 매번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그는 “스파이더맨이 지나간 자리에는 혼란만이 있다.”라며 비난한다. 이러한 태도는 팩트체크나 사실 보도가 가지고 있는 맹점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분명 스파이더맨이 지나간 자리에는 도로나 건물이 파괴되고 사람이 다치거나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악당들의 스파이더맨에 대한 공격과 파괴에 따른 것이다. J. 조나 제임슨은 그 악당들의 존재나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이나 현상을 들면서 스파이더맨을 범죄자로 몰거나 심지어 히어로의 생명을 앗아간 악인으로 여론을 몰아간다. 이는 진실 보도를 내세운 거짓 세력의 창궐을 조장할 수 있는 혼란을 넘어선 파괴행위이다. 거꾸로 저널리스트에게도 똑같이 묻을 수 있다. “저널리스트가 지나간 곳에는 혼란만 있더라.” 언론이 있는 그대로 알리면 당연히 파장이나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당연히 파장이나 논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보도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처음에 말했듯이 히어로나 저널리스트나 악에서 선을 지키려는 맥락에서는 같은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


통쾌하게도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에서는 세 스파이더맨이 편중된 언론사 데일리 뷰글을 활용한다. 스파이더맨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그들을 이용해 악당들이 자유의 여신상으로 몰려들게 한다. 그들을 모아서 애초의 계획대로 그들을 치료시키려 한다. 악당들은 사라지고 더 이상 도시의 파괴는 없다. 하지만 뷰글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서 이미 악당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지만, 더 이상의 논평은 없었다. ‘왜 사라졌을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를 탐사 저널리즘이 파고들어야 하지만 기대할 수 없었다. 이 때문인지 스파이더맨은 기억을 모두 지우고 다시 리셋한다. 저널리즘은 허위 영웅의 실체를 드러내 주고 진짜 영웅은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적인 관점이 작용할 때 영웅은 사라지고 악은 다시 스스로 자라날 뿐이다. 다시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지겹게 계속되어도 뭐라 할 수 없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