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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토리] 그들이 말한 공정의 가치는 우리의 공정과 달랐다
2022-01-17

■ YTN 보도국 사회부 신준명 기자

2021년 YTN 대상(특종) 수상 - 사회1부 신준명, 영상취재1부 김광현


[취재후기] '김건희 허위 이력서 및 단독 인터뷰' 등 연속 보도


“기자예요? 잠깐 앉아봐요.”

제1야당인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 허위 이력’ 취재는 예상치 못한 취재원과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시작됐습니다. 취재원이 대뜸 내민 김건희 씨의 수원여대 겸임교원 채용 지원서와 한국게임산업협회 재직증명서. 취재원이 짚어 준 이력과 수상 실적이 정말 허위인지 확인하는 작업은 오롯이 제 몫이 됐습니다.


금요일 늦은 밤, 문서 두 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부터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할까?’ 14년 전 작성된 지원서의 진위를 전화만으로 확인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고민 속에 주말을 보내고 출근한 월요일 아침. 사건팀 기자답게 일단 ‘현장 박치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리포트 두 꼭지에 담을 사실관계 확인 취재는 막힘 없이 이뤄졌습니다. 유난히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김 씨의 입장이 반드시 필요한 기사. 가장 중요한 김건희 씨 입장 확인은 영 진척이 없었습니다. 같은 날 오전부터 김 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 씨에게 장문의 문자를 남기고 답변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대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대선캠프 측에도 연락해 취재 내용에 대한 김 씨의 입장을 받아 전달해달라고 요청해놨습니다. 하지만 캠프 측도 답변은 없었습니다.


오후 5시 반쯤 보도국 자리에 앉아 두 개의 리포트 작성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기사 말미에 “김 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를 남겼지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란 문장을 습관적으로 적어놓고 나니 기사에 뭔가 하나 빠져있구나라는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딱 한 번만 더 전화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 기대 없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여보세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김건희가 아닐 수도 있단 생각에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김건희 씨 맞으세요?”라고 물으면 그게 누구든 전화를 끊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떠봤습니다. “오늘 제가 문자 남긴 거 보셨나요?” 잠깐의 정적. 이내 들려온 작은 웃음소리. 그리고 뭘 그런 걸 묻냐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김 씨라는 건 확실해졌습니다.


‘건희 씨’라고 다정하게(?) 불러야 할지, ‘대표님’이라고 해야 할지 호칭조차 정리가 안 돼 더듬더듬 전화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회1부장이 제게 조용히 다가와 “김건희?”라고 쓴 이면지를 내밀었습니다.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던 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부장은 ‘길~~~게’라고 묵음의 메시지를 던지곤 곧 “녹취 사용 가능?”을 다시 이면지에 적어 보여줬습니다. 부장의 이 짧은 메시지가 제겐 용기가 됐습니다. 반드시 입장을 받아내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고, 이후론 자꾸만 말을 돌리는 김 씨를 어르고 달래가며 끈질기게 질문했습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기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부장은 큰 파장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리포트 제작까지 마친 건 이튿날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회사 앞엔 사건팀 캡이 있었습니다. “밥은 먹여 보내야지.”라며 절 회사 앞 선술집에 데려갔습니다. 캡도 “이 기사가 윤석열 후보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뭔가 하나 빠져있던’ 기사에 김 씨의 입장을 담아 뿌듯했을 뿐, 이 기사의 파급력이 얼마나 될지는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사회1부장과 캡이 말한 그 파장은 첫 보도가 나간 12월 14일 아침부터 시작됐습니다. 온갖 군데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윤석열 후보 캠프는 보도 이후 몇 시간 안 돼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캠프의 공식 입장은 엉성했고, 윤 후보의 대처는 어설펐습니다. 김 씨와의 통화 녹취를 토대로 후속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김 씨는 YTN 첫 보도 이후 12일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김 씨는 통화 내내 허위 이력과 거짓 수상 기록에 대해 “돋보이려고 한 욕심”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습니다. 공채 지원서에 인턴 경력이나 수상 실적을 적으며 혹시라도 기간이나 기관의 명칭을 잘못 적을까 서너 번씩 다시 확인했던 취업준비생 시절 저의 경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YTN의 ‘김건희 허위 이력’ 보도가 많은 사람의 분노를 자아냈던 건, 김건희 씨와 윤석열 후보의 ‘공정의 가치’가 저를 포함해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공정’과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