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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토리] 선거 방송이 ‘방송의 꽃’인 진짜 이유
2022-04-04

■ YTN 보도국 김지선 선거단장


[선거 방송 후기]

선거 방송이 ‘방송의 꽃’인 진짜 이유



익숙함, 그 치명적 약점


인사철이 되면 유독 잘 팔리는 이름, 유경험자다. 특히 배치 첫날부터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 보도국에서 장착하기만 해도 한결 든든해지는 무기로는 경험만 한 게 없다. ‘해본 일’이란 세 글자는 인사권자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괜한 자신감을 주니 말이다. 그래서 가려지는 유경험자의 치명적 약점이 있으니, 익숙함이다.

16세기 예술에서 등장한 ‘매너리즘’은 창작이나 발상이 독창성을 잃고 평범한 경향으로 흘러 생기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표현은 진부해지고 형식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결과 신선미는 떨어진다. 정식 발령만 세 번째, 익숙함을 넘어 매너리즘에 빠지기 충분했다. 물론 방송은 예술과 다르다. 보도 역시 독창성이 생명은 아니다. 하지만 2∼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가 새로운 시도를 통해 방송의 가능성을 넓혀가는 기회라는 점에서 선거단에 매너리즘은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선거라는 대형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방송사가 보여야 할 어느 정도의 신선도는 시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 예의를 다하기 위해서는 경험이라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했다.



“선거단에 왜 의자가 필요하나요?”


그나마 다행히도 대통령 선거 기획은 처음이었다. 정당이 후보자를 내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만 본다면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역대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미 있는 선거구나 판세를 뽑아내는 선거 방송 기획자의 입장에서 세 선거는 완전히 다른 판이다. 총선은 각기 다른 250여 개의 제법 굵직한 판이, 지방선거는 17개의 대형판과 250여 개의 작은 판이 동시에 펼쳐진다. 대선은 대한민국이라는 초대형 판 위에서 벌어지는 단 하나의 게임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만의 특징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비호감’ 대선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턴가 인기 투표로 변질된 대통령 선거를 멈추고 싶었다. 설령 ‘호감’ 대선이었다 하더라도 ‘호불호’가 대통령 선택의 가장 큰 기준이 되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오락적인 요소로 뒤덮여 가는 타사의 선거 방송을 보며 선거의 진중한 의미를 되살리고 싶은 개인적인 바람도 있었다. 그렇게 뽑은 콘셉트는 ‘대통령의 자리’였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그 자리에 앉아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왜 하나의 자리를 뽑는 데 이토록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지, 대통령직을 더 잘 수행할 사람을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보도 채널로서 의미 있는 방송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자리의 의미를 보여줄 상징물로 ‘의자’를 골랐다. 이왕이면 그 무게를 보여줄 수 있는 묵직한 의자가 좋을 것 같았다. “선거단에 도대체 ‘사장님 의자’가 왜 필요하냐?”라는 후문도 들려왔지만, 지하 1층 메일센터에 도착한 의자를 보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 2022 YTN 대선 방송 '민심연구소' 화면 캡쳐 -


무대가 된 YTN홀…새로운 도전


대선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는 ‘스케일’이었다. 전 국민이 한 명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에 맞는 웅장함 구현은 의자 하나만으로는 어려웠다. 스케일을 보여줄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선거 때마다 전임자들이 고민했던 1층 YTN홀이 제격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두드려보았다. 의외로 쉽게 열렸다. YTN홀 활용에 대한 보도국 임원진의 생각을 비롯해 예산과 정책 방향 등 모든 여건이 순조로웠다.

관건은 무대를 만들고 난 이후 그곳을 채울 콘텐츠와 매끄러운 운용이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될 그래픽 분량과 콘텐츠, 기술 연동, 조명과 카메라 샷 등 모든 것이 새로운 시도였다. 별도의 부조가 없어 대형 LED에 그래픽을 띄우는 것부터 음향, 조명을 부조 PD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점은 그동안 홀에서의 생방송이 번번이 무산됐던 이유였다. 중계차 방식으로 온종일 방송을 연결할 때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몇 달 앞서 보도제작국에서 진행한 양당 경선 토론회는 좋은 매뉴얼이 되었다. 1시간이 넘는 토론 방송이 가능하다면 조금 더 복잡한 선거 방송도 불가능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결정적으로, 선거단원 모두가 새로운 도전을 원했다.

결정이 이뤄지자 회의적이었던 생각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세트의 효율성을 위해 선거 전후 나흘 동안 생방송을 하기로 했다. 생방송 3일 전 공사에 착수했다. 리허설 기간은 단 하루뿐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여건 속에 카메라팀, 중계 PD 등 YTN 최고의 숙련팀이 꾸려졌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 대선 방송 리허설 장면 -


선거 방송이 ‘방송의 꽃’인 이유


선거 방송을 방송의 꽃이라고 한다. 2012년 총선을 시작으로 선거단에 발을 담근 이후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중요한 이벤트가 열리는 단 하루,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주목받고 사라져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햇볕, 거름, 토양, 때론 강한 빗줄기, 누군가의 땀방울, 개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꽃은 늘 그렇듯 이 모든 것을 딛고서야 비로소 활짝 피어난다. 선거 방송이 방송의 꽃이 될 수 있는 진짜 이유이다.


매일 방송을 하다 보면 방송이 협업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산다. 선거 방송은 우리가 몸담은 방송이라는 일이 한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획과 영상 편집, 촬영, 기술, 그래픽, 음향과 조명, 앵커와 구현 등 방송 구성원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고군분투할 때만이 활짝 피어날 수 있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이번에도 몸을 아끼지 않았던 YTN 곳곳의 숨은 주인공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 2022 YTN 대선 방송 '민심연구소' 화면 캡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