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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보도, 그 이후가 더 중요한 이유
2022-05-06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보도, 그 이후가 더 중요한 이유

- 택시 운전사가 그렇게 될 줄 몰랐어도


영화 '더 길티: 브루클린 실종사건(Still Here)' / 2020

감독 : 블라드 페이얼, 주연 : 조니 휘트워스

▲ 영화 <더 길티: 브루클린 실종사건> 포스터


대체로 나쁜 의도를 갖고 취재 보도를 하는 경우 없다. 있어도 아주 예외적이다. 그런데도 선한 의도와 관계없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런 결과가 나왔을 때는 보도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런 점을 짚어볼 수 있는 영화가 ‘더 길티 : 브루클린 실종사건(Still Here)’다.


갑자기 사라진 딸 모니크를 찾아 거리를 헤매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마이클(모리스 맥레이)은 절망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고대하며 하루하루 버틴다. 맨발로 뛰는 마이클의 노력에도 모니크의 실종 사건은 주목을 받지 못한다. 수많은 실종 아동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10살 난 모니크는 흑인이기 때문에 더욱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경찰의 수사도 진척이 없다. 아예 형사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미 생명을 잃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더구나, 아동 실종사건이 그들의 승진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상급자들의 관심 대상도 아니다.


▲ 영화 <더 길티: 브루클린 실종사건> 스틸컷


그런데 주목을 하는 곳이 있긴 있었다. 바로 언론이었다. 뉴욕의 클로니클 편집장 제프리 호프만(래리 파인)은 모니크 실종사건을 취재하도록 한다. 취재 명령을 받은 기자는 오랜만에 복귀한 크리스천(조니 휘트워스). 편집장 제프리 호프만은 크리스천이 평소 저널리즘의 본질에 충실해지려 노력하는 기자이므로 모니크 실종사건을 맡긴 것이다. 역시 크리스천은 의욕적으로 사건 취재에 나선다. 크리스천은 경찰서가 아니라 현장 취재를 나간다. 그것도 동네 거리의 부랑배라고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청년들에게 취재를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부랑배 청년들은 전혀 듣지 못한 소스를 크리스천에게 전한다.


▲ 영화 <더 길티: 브루클린 실종사건> 스틸컷


동네 청년 타이렐(투론 코피 알레인)은 크리스천에게 하나의 패턴을 말한다. 항상 동네에 나타나던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였다. 매일 같은 시간에 나타나던 택시 운전사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때 모니크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말에 흥미를 느낀 크리스천은 신문사로 돌아와 편집장에서 기사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택시 운전사가 모니크의 실종의 범인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를 등장시킨 보도 기사를 내야 한다고 제안한다. 편집장이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 묻자 크리스천은 대답한다. “우리가 보도하면 경찰이 어쨌든 움직이겠죠. 어쨌든 경찰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 중요하죠. 우리는 그냥 던져 주기만 하면 되는 거죠.” 이 말에 결국 편집장은 동의했고 기사는 크리스천의 말대로 작성되고 보도됐다. 경찰에게 자극을 줘서 수사에 나서게 하면 뭔가 진전이 있지 않을까 싶은 순수한 마음이 앞선 결과다.


▲ 영화 <더 길티: 브루클린 실종사건> 스틸컷


정말 경찰이 움직일까? 실제로 크리스천의 예상대로 경찰은 움직였다. 형사들은 사라진 택시 운전기사를 곧 찾아냈다. 그 택시 운전기사를 찾아내자, 다른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언론사들이 대거 관심을 끌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뉴욕 경찰 상부는 모니크 실종사건이 빨리 해결되기를 바랐다. 빠른 종결을 원하게 되는 기류 속에서 일선 형사들은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용의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택시 운전사가 마치 범인이 되어야 할 상황이 된다. 더구나 그는 흑인이었다. 이런 압박 분위기가 더욱 크게 느껴진 것일까? 택시 운전사는 심문 중 구토 증세를 보이며 매우 괴로워한다. 결국, 그 고통을 못 이기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다. 그는 범인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게 된다. 경찰은 물론이고 크리스천도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선량한 시민이 목숨을 버리게 된 참담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단지 같은 즈음에 사라졌다는 점을 범죄로 패턴화하는 보도 행태가 일으킨 참극이었다. 이런 보도 행태는 현실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시중에 떠도는 상관관계(Correlation)의 언술들을 인과 관계(Causation)의 패턴으로 만들면서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되기 시작한다. 언론의 보도 태도는 자기 할 일은 다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한다.


▲ 영화 <더 길티: 브루클린 실종사건> 스틸컷


클로니클의 크리스천은 어떠했을까? 편집장은 일단 모니크 실종사건에서 크리스천을 손 떼게 한다. 크리스천도 이에 동의하고 기사 작성에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있지는 않는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참회와 함께 진실 추적을 위해 계속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이웃집 흑인 청소년을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한다. 이 추적도 결국 동네 거리의 청년들에게서 나왔다. 이번에는 단순히 그대로 받아적는 것이 아니라 그 청소년이 왜 범인일 수 있는지 나름대로 이유를 파헤친다. 마침내 흑인 청소년의 집에서 범행의 증거를 찾아낸다. 다행하게도 모니크는 그 안에 생존한 상태로 발견된다. 결국, 해피엔딩의 영화가 된다.


이렇게 보면 요즘 자극적인 영화나 드라마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극적 반전이나 치밀한 스릴러 전개 방식이 없어 심심할 수 있다. 하지만 저널리즘 관점에서 볼 때는 결코, 심심하지 않은 영화다. 크리스천은 단지 경찰에 자극을 가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전제했다. 그 자극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강압으로 치달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영향 관계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혹은 그 정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리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극을 주기 위해 청년의 말을 그대로 확대 재생한 것은 뼈아픈 일이다. 크리스천의 다른 점은 그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전히 고군분투했다는 점이다. 자신은 취재 보도를 못 해도 다른 기자를 통해서 계속 진실을 알리게 했고, 마침내 경찰과 공조를 통해서 사건을 해결했다. 단순히 범인을 잡은 것에 그치지 않고 생명을 구한 것이다.


▲ 영화 <더 길티: 브루클린 실종사건> 스틸컷


만약 크리스천이 자신의 보도 태도에 관해 의식하지 않았다면, 후속 취재는 없었을 것이고 사건은 묻혔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욱더 잔인한 연쇄 납치 살인범이 탄생하게 된다. 진실을 위해 어렵게 관심을 가졌는데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그 진의까지 깎아내리기는 쉽지 않다. 진실을 위한 보도가 의도와는 상관없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을 때 그것을 바로잡거나 보정하기 위해 분투하는 저널리스트의 모습은 해피엔딩과 관계없이 매우 소중하며 당연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