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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사적(私的) 마음은 진실 보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스포일러 주의)
2022-08-02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사적(私的) 마음은 진실 보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스포일러 주의)


영화 '신문기자'│2019

감독 : 후지이 미치히토, 주연 : 심은경, 마츠자카 토리

▲ 영화 <신문기자> 포스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지만, 보통 사람은 “나는 감정이 있다, 고로 존재한다.”에 더 적절하다. 만약 데카르트가 기자가 되었다면 어떻게 말을 했을까?


영화 ‘신문기자’(2019)의 주인공 같다면 “나는 감정이 있다. 고로 존재한다.”에 더 적절할 것이다. 이 영화는 진실을 취재하는 저널리스트의 고군분투기다. 주인공 요시오카 에리카(심은경 役)는 누가 뭐라든 진실을 파헤치는, 정의감 넘치는 젊고 패기 넘치는 토우도(東都) 신문의 기자다. 하지만 그리 멋있지도 영웅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아픔이 언제나 요시오카를 눈물로 물들게 한다.


▲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객관적인 사실을 취재하고 이를 막거나 은폐하는 세력의 압박을 물리치고 세상에 알리는 저널리스트는 이성적인 존재이어야 이상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시오카 에리카와 스기하라 타쿠미(마츠자카 토리 役)는 모두 감정에 이끌린다. 또 다른 주인공인 스기하라 타쿠미는 내각정보조사실 소속의 공무원으로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정보를 조작하는 일에 괴로워한다. 이른바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중심부서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정치계 강간 사건의 피해자인 고토 사유리를 꽃뱀으로 만들어 해당 자료를 신문과 방송에 살포한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쓴다. 스기하라 타쿠미는 이런 짓에 관해 아무리 괴로워도 이를 거부할 수 없고, 폭로는 생각도 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에게는 곧 태어날 아기가 있다. 하지만 그의 감정을 가만두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놀랍게도 존경하던 칸자키 토시나오(타카하시 카즈야 役)가 건물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칸자키 토시나오는 스기하라 타쿠미의 전 외교부 상사로 며칠 전 함께 술을 진하게 마셨다. 그 술자리에서 스기하라는 칸자키에게 ‘옛날에 같이 일할 때가 좋았다’라고 말하고 반면, 스기하라를 아꼈던 칸자키는 스기하라에게 마지막 무렵 ‘자기와 같은 사람은 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은 그의 자살을 통해서 의미심장하게 다시 환기된다. 그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을까?


▲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스기하라가 여러모로 퍼즐을 맞춰보니 칸자키가 내각부 내에서 추진 중인 대학 설립 안에 반대하는 의견을 갖게 되면서 압박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이 내각부 내 대학 설립은 무엇인가? 스기하라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현재 상사인 타다 토모야(타나카 테츠지) 실장에게 찾아가 묻지만, 그는 질문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이에 스기하라는 칸자키의 후임자인 츠즈키 료이치(타카하시 츠토무 役)에게 묻지만 츠즈키 역시 자신은 모르며 그것은 5년 전 전임자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렇게 칸자키를 몰아세운 것은 내각 정보실이라고 말할 뿐이다. 이런 상황이니 내각 정보실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가 더 들 수밖에 없었던 스기하라다.


스기하라의 이야기 전개가 이렇게 이뤄지는 한편 도쿄의 작은 신문사 토우도의 요시오카 에리카(심은경 役)에게 검은 안경을 쓴 하얀 양 그림이 전달된다. 여기엔 대학 신설에 대한 자료가 같이 포함되어 있었다. 요시오카는 보도를 주장하지만, 편집장은 이 자료만으로는 보도할 수 없다고 난색을 보인다. 결국, 더 보강 취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요시오카 에리카(심은경)도 절감한다. 마침 요시오카는 텔레비전 방송 뉴스를 통해 내각부 소속의 칸자키가 자살한 사건을 보고 뭔가 대학 신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칸자키 장례식장을 찾게 되는데 이곳에서 기자들의 취재 행태를 목도하게 된다. 너무 심하게 가족을 몰아세우는 행태를 보고 옛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


▲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사실 요시오카 에리카의 아버지도 기자였다. 내각실이 저지른 일을 파헤쳤는데, 내각실은 오보라고 몰아갔고 결국 전방위 압박에 시달린 아버지는 목숨을 스스로 끊기에 이른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오열을 터트렸던 요시오카 에리카는 아버지에 이어서 기자가 된 것이다. 만약 아버지의 죽음이 요시오카 에리카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면, 기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내각부 비위의 진실을 추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감정이 없다면 피해자인데 피의자가 된 고토 사유리를 악성 댓글을 감수하고 응원하지도 않았다. 또한, 고토 사유리 가슴골을 운운하는 기자들의 뒷말에 성희롱 발언이라고 질책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울러 심하게 몰아세우며 취재를 하는 기자들에게 과한 취재 행동이라며 제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당했기 때문이다.


한편, 도를 넘은 기자들의 취재 행태에 다른 모습을 보이는 요시오카 에리카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내각부 조사실 소속의 스기하라 타쿠미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장례식장에서 첫 대면을 한다. 취재 나왔던 내각부에 출근하는 스기하라 타쿠미를 발견한 요시오카 에리카는 그에게 명함을 쥐여준다. 존경하는 칸자키가 억울하게 죽었고, 자기 일이 고통스러운 스기하라 타쿠미는 고군분투하며 진실을 취재하는 요시오카에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섣불리 내부 정보를 제공하거나 폭로를 도와주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그런데, 칸자키가 요시오카에게 선글라스를 낀 양 그림과 함께 대학 신설에 관한 자료를 보낸 사람일 것이라는 말에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다. 자신이 존경했고 의롭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평생 애쓴 상사 칸자키 토시나오가 억울하게 죽었고, 그 진실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싶어 했다.


▲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스기하라 타쿠미는 대학 신설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요시오카 에리카와 합심하기로 하고 칸자키 유가족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그 부인은 남편 칸자키 토시나오의 책상 열쇠를 건넨다. 그 안에는 양 그림이 하나가 있었는데 팩스로 보낸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책 한 권이 있었다. 그 책은 ‘더그웨이 양 사건’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결국 생화학무기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낸다. 마침내 양동 작전을 펼친 두 사람은 츠즈키 료이치가 보관 중인 관련 내부 문서를 손에 넣고 만다. 스기하라 타쿠미는 보도 이후 오보라고 내각부가 몰아붙이면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라고 요시오카 에리카에 부탁을 한다. 그런데 이미 내각부 조사실 실장은 이 같은 과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압박을 두 사람에게 가하지만 결국 사실은 신문에 보도가 된다. 하지만 스기하라 타쿠미에게 후폭풍은 컸다. 거의 조직에서 쫓겨날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멍하니 거리에서 길 건너에 있는 요시오카 에리카를 쳐다보는 스기하라 타쿠미는 옥상에 오르지 않고 길에 있었다.


▲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이 영화는 아베 전 총리의 학교법원 모리토모(森友) 학교 용지 비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일본의 폐쇄적인 국정 운영과 권력의 전횡을 비유적으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투명하지 않은 사회에서 자행되는 권력의 부작용은 결국, 그들 스스로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음을 아베 전 총리의 피격이 보여주기도 한다. 일본이 영화 주인공들의 각고의 활약처럼 이런 보도 저널리즘이 살아있는 사회였다면, 아베 전 총리는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 한편으로 어디 일본만 그럴까 싶다. 한국은 얼마나 나을까? 사심을 갖고 보도 저널리즘에 협조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 데카르트가 말하는 이성적인 저널리즘이 작동하기는 힘든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일까? 어쩌면 우리 인류의 현 단계가 그런지 모른다. 그렇다면 감정의 사심을 활용해서라도 진실 보도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