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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의 기원은 언론? - 영화 ‘미스터 존스’ 리뷰
2022-09-02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의 기원은 언론?


영화 '미스터 존스'│Mr. Jones, 2019

감독 : 아그네츠카 홀란드, 주연 : 제임스 노튼, 바네사 커비, 피터 사스가드


▲ 영화 <미스터 존스> 포스터


실화 영화 ‘미스터 존스’(Mr. Jones, 2019)는 1930년대 유럽에서 활동한 저널리스트를 다루고 있지만, 2022년 2월 시작돼 9월 현재까지도 진행형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기원을 헤아릴 수 있는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1930년대는 지금의 세계 질서를 형성한 맹아가 잠재하고 있었지만, 이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서구에서는 몇몇 기자만이 인지할 수 있었다. 그 현장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그 한 명은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오로지 한 명만 남는다.

그 한 명이 주인공인 젊은 외신 기자 가레스 존스(Gareth Jones, 1905-1935)였다. 그에게 모스크바의 현실, 정확하게는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인식하게 만든 사람은 모스크바에 있는 동료 기자 파울 클레브였지만, 강도 살인을 당하고 만다. 가레스 존스(제임스 노튼 분)는 그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고 그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컷


애초에 가레스 존스는 히틀러 인터뷰 기사를 통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영화의 도입부는 그가 히틀러의 미래 결정에 대한 강연부터 시작한다. 존스는 히틀러가 동유럽 확장 전쟁을 일으키고 유럽을 참화에 몰아넣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영국의 여론 주도자들은 그의 말을 비웃는다. 독일의 정당을 운영하는 것과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조롱과 의심 사이로 존스는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소련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 집중하게 된다.


특히 서구는 경제 공황 여파로 힘들어하고 있는데 소련은 돈을 물 쓰듯 쓰고 있는 상황에 의구심을 품었다. 더구나 당시 스탈린이 집권 통치하고 있던 소련은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보도의 중심에는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이자, 퓰리처상을 받은 월터 듀런티(Walter Duranty, 1884-1957)가 있었다. 인터뷰 전문 기자의 특기를 살려 가레스 존스는 스탈린의 대면 인터뷰를 시도한다. 당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었던 월터 듀란티(피터 사스가드 분)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컷


그런데 듀란티는 알려진 모습과 달랐다. 열정적인 취재 기자의 모습과 달리 마약 굴에서 난잡한 환락에 빠져 있었다. 이런 와중에 엄청난 사실을 취재하게 되었다는 파울 클레브의 전화를 받게 되고 그를 만날 찰나가 된다. 듀란티는 소련의 남부 즉, 우크라이나가 막대한 스탈린의 보물 창고이며, 그것은 사회주의 경제 정책과 5개년 계획으로 이룬 성과라고 찬양했다. 하지만 가레스 존스는 미심쩍어했다. 기자들은 격리됐고 마음대로 취재를 할 수가 없게 소련 당국의 감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기자들에게 진실이 뭐냐고 묻자 그들은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하는 가운데 한 명이 말한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소설 『붉은 죽음의 가면』을 읽어 봤나요?’ 이 작품에는 성 밖은 적사병(역병)으로 사람들이 다 죽어 나가는데, 성안의 왕족들은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있는 대조적인 상황이 담겨 있다.


이때 가레스 존스는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 기자인 에이다 브룩스(버네사 커피 분)를 통해 파울 클레브가 우크라이나의 비밀을 취재하다가 저격당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마침내 존스는 우크라이나 잠입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는 내세울 게 없는 프리랜서 기자였다. 히틀러를 인터뷰한 경력으로 스탈린을 인터뷰하려 했는데 이제 관심은 우크라이나였다. 단지 가지고 있는 것은 영국의 자유당 전 당수 로이드 조지(케네스 크랜햄 분)의 추천서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추천서에는 ‘나의 예전(previous) 외교 고문관’이라고 되어있었다. 전직 신분으로는 영향력이 없었다. ‘나의 귀중한(precious) 외교 고문관’이라고 고쳐 기자가 아니라 외교관 신분이라고 소련 당국자에게 어필해 우크라이나 안내를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하르키우(Kharkiv)에 가는 중간에 열차를 빠져나와 우크라이나 마을에 잠입하기에 이른다.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컷


20여 개 마을에 닿아 가레스 존스가 본 현실은 유토피아와 거리가 멀었다. 사람들은 굶주림과 죽음에 직면해 있었고, 얼마 안 되는 곡식을 두고 피 튀기는 폭력과 살인까지 자행되고 있었다. 심지어 살아남은 이들은 죽은 가족의 몸을 뜯어 연명하고 있었다. 의심이 드는 이들은 서로 고발하게 만들어 감시체제의 극단적 공포를 보여주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 남아 있는 식량은 모두 모스크바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스탈린은 왕좌에 앉아. 너무 열심히 연주해서 줄이 끊어지네. 굶주림과 추위가 우리 집에 찾아왔네. 먹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구나.’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즉 소련의 잘못된 정책은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양산하고 흑토지대 우크라이나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참혹한 진실을 다른 기자들도 알고 있었지만, 침묵하고 있었고 그 정점에 월터 듀런티가 있었다. 죽을 고비를 맞은 그에게 소련 당국은 현실을 은폐하고 미화할 것을 종용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국 기술자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영국으로 추방당하게 될 때 듀란티는 존스에게 말한다. 스탈린에게 저항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며 훌륭한 기자가 될 뻔했는데 아깝다고. 언젠가는 훌륭한 기자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고 말한다.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컷


영국으로 돌아온 가레스 존스는 오랜 고민 끝에 진실을 알리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설령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자유당 전 당수 로이드 조지조차 사실이라고 해도 공표할 수 없다고 한다. 존스는 지방신문으로 쫓겨나 문화면을 담당하는 처지가 된다. 그때 존스는 허스트 신문 운영자가 모스크바에서 암살당한 파울 클레브 기자를 고용하려 했던 사실을 인지하고 이점을 들어 그를 설득했다.


마침내 대대적으로 소련의 참상을 보도할 수 있는 지면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이에 대응해 소련은 월터 듀란티를 내세워 그 같은 보도를 전부 부정한다. 프리랜서 기자 가레스 존스와 뉴욕타임스 지국장이자 퓰리처상 수상자 월터 듀란티의 대결이었다. 결국, 영국은 물론 미국까지 듀란티를 신뢰했고, 미국의 금융자본가와 사업가들도 경제 호황의 소련과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컷


1939년 9월 1일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1941년 6월 22일 히틀러는 다시 소련을 침공했다. 이런 히틀러 침공 뒤 민낯이 드러났다. 소련은 탱크와 대포를 수없이 만들고 있다는 스탈린의 말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미 소련은 미국과 파트너 국가로 여겨졌기 때문에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에 따라 무제한으로 무기가 지원되었다. 이런 게임체인저로 소련은 독일군을 물리치기 시작하고 마침내 2차 세계대전 전승국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전승국의 지위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고 한국은 분단되기에 이른다. 비약하자면, 월터 듀란티의 말이 아니라 가레스 존스의 말을 들었다면, 한국은 분단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아예 푸틴이 소련의 영광이라는 미몽에 사로잡힐 수 없었을지 모른다. 언론의 공정보다는 세계의 역사는 물론 우리의 역사도 바꿔 놓을만했다. 지금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은 이제 우크라이나에 주어졌다. 과연 언론은 지금 진실을 공정하게 보도하고 있을까? 그에 따라 역사는 또 좌우될지 모른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새삼 필요 없을 것이다.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