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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같은 피랍 협상도 뒤흔드는 언론은 - 영화 ‘교섭’ 리뷰
2023-02-02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같은 피랍 협상도 뒤흔드는 언론은


영화 교섭│2023

감독 : 임순례, 주연 : 황정민, 현빈, 강기영


▲ 영화 '교섭' 포스터


우리 교민의 피랍 사실을 전해 들은 외교부 교섭 전문관 정재호 실장(황정민 役)이 외교부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거의 자동으로 손이 간 대상은 텔레비전 리모컨이었다. 텔레비전 뉴스 보도를 통해 피랍 정보를 접하는 장면은 당연해 보이면서도 낯설었다. 외교부조차 언론 보도를 통해 정보를 얻는 모습 때문이었다. 하지만, 긴급한 상황에 정부 부처라도 정보가 결핍될 수 있고, 언론의 보도 내용을 모니터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잠시 후 정재호 실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바로 언론 보도 통제였다. 아마 협상에 불리한 보도를 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보도 내용을 통제하는지 이때만 해도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서 피랍자 송환 협상은 외교부 요원과 국정원 요원의 갈등 속에서 이뤄진다. 이 갈등은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다. 정재호 실장은 테러 집단과 공식 협상은 없다고 못박는다. 만약 정부 외교관이 직접 대화에 나설 경우 세계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수많은 테러 단체가 달려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 役)은 그런 원칙보다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 영화 '교섭' 스틸컷


일단 국정원 요원의 현실론이 밀리지만, 이미 관객은 상황이 바뀔 것을 예감할 수 있게 서사의 연출은 가해진다. 국정원 요원 박대식은 부족장 회의를 통해 일종의 휴민트(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얻은 인적 정보) 전술로 납치된 사람들을 풀려나게 한다. 박대식은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는 부족장 회의가 탈레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뒤늦게 이 같은 방법을 인지한 정재호 실장이 합세한다. 기분 좋을 공조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거 너무 쉬웠다. 영화의 전체 분량 중 3분의 1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쉽게 교섭이 마무리되는 거 아닌가 싶어 맥이 빠진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틀어진다. 외교부가 그동안 막아왔던 사실이 국내 TV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피랍된 사람들이 왜 아프가니스탄에 갔는지, 그 동기와 목적이 드러났다. 다름 아닌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이슬람 국가를 방문했다는 것. 한 교회 23명이 선교를 목적으로 정부가 여행 금지한 지역을 방문한 사실이 토론자의 입을 통해 그대로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이에 정재호 실장 등이 부랴부랴 발언을 막으려고 방송국에 전화하지만, 담당 피디는 거절한다. 그러면서 피디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 토론 패널이 말하는 것을 어떻게 막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하는 방송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떻게 알아요?”


▲ 영화 '교섭' 스틸컷


패널의 표현의 자유는 물론 언론사의 보도의 자유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다. 한편, 한국 언론의 영향력을 너무 무시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방송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떻게 보나?”라는 말을 들으면 그럴듯하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아프가니스탄 산골짜기에 있는 테러 집단이 한국의 한 TV 토론 프로그램의 내용을 알 수가 있겠는가 싶다.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아니 사실이 그런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방송 제작진이 한 가지 놓친 점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 방송을 직접 볼 수 없지만, 매개 언론 미디어가 있을 수 있었다. 아랍이나 이슬람 계열의 언론사가 한국에 있을 수 있고 이 언론의 보도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볼 수가 있다. 바로 그 매체가 영화에서는 ‘알자지라’였다. 서울지국이 있는 알자지라가 TV 토론 장면을 자막 처리해 현지 아프가니스탄에 송출했다. 물론 이런 미래 상황을 외교부에서는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하게 한다. 무엇을 언론 보도 통제하려고 했는지 이런 맥락에서 잘 알 수가 있다.


▲ 영화 '교섭' 스틸컷


외교부의 가정은 이랬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에 한국인 23명이 기독교 선교를 위해 방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들의 분노를 자극할 수 있고 교섭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영화에서는 탈레반과 부족장 회의가 실제로 풀어주기로 했던 계획을 철회했다. 부족장 회의의 수장은 이 같은 사실을 숨겼다며 격하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만약 선교 목적으로 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간 사실을 끝까지 숨길 수 있었을까. 납치 주범 탈레반이 영화에서처럼 선교 목적의 교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더구나 같은 교회 교인들이 집단으로 움직였는데 물론 봉사 목적을 내세웠지만, 탈레반이 이를 몰랐을 정도로 허술할 수는 없으며 곧 파악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시대적 배경이 2000년대 초반이라고 해도 인터넷 매체가 일반화된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터놓고 협상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따라서 특정 언론사의 방송에서 패널이 선교를 언급했기 때문에 교섭이 실패로 돌아가는 듯한 연출은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언론, 방송 때문이라는 전가로 보이기 때문이다.



▲ 영화 '교섭' 스틸컷


이 영화는 외교 협상의 원칙보다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장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샘물 교회 교인 피랍사건에서 당시 정부 태도가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와 다른 언론 현실이 있었다. 그때 언론의 태도는 선택적 집중이 아닌 집착에 가까웠다. 특히 소위 주류 언론들은 자신에 부합하지 않은 정권이기에 사태 해결이 도움이 되지 않는 정파적 보도 행태를 남발했고, 국민의 안전을 등한시했다. 단순히 아프가니스탄에서 보겠느냐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봤으면 싶은 태도 같았다. 이른바 정부 흔들기가 일어났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우선해 직접 협상하는 정부 태도를 공격했다. 다른 정부의 같은 협상 방식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한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서 선교를 언급하는 언론의 행태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나 둔감함을 넘어선, 다른 전략적 의도가 있을 수 있었다.


해외에서 피랍되는 국민은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은 언론 보도 통제 때문일 수 있거나 언론의 자발적인 협조 때문일 수도 있다. 적어도 보도한다고 해도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다뤄진다면 테러 단체의 의도대로 정부를 뒤흔드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러한 언론들은 무엇 때문에 뒤흔드는 것인지 후속작 ’교섭2‘에서 기대해 본다.



▲ 영화 '교섭'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