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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언론 재벌가 자녀의 미래는?
2023-03-08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언론 재벌가 자녀의 미래는?


다큐멘터리 영화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Ghislaine Maxwell Filthy Rich)│2022

감독 : 리사 브라이언트, 마이켄 베어드


▲ 영화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 포스터


뉴욕을 넘어 세계적으로 사교계에서 명사인 길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은 자신의 모든 인맥을 다 사용했어도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저지른 범죄가 워낙 고약했기 때문이다. 길레인은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뚜쟁이 노릇을 했다. 그냥 뚜쟁이가 아니었다. 뚜쟁이는 본래 미혼 남녀를 연결해주는 중매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마담뚜는 프랑스어 마담과 한국어 뚜쟁이를 결합해 속어로 포주를 뜻한다. 길레인이 20년형을 선고받은 이유는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마담뚜 역할을 적극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길레인은 여성 수백 명을 제프리에게 연결해주고 강간과 성추행을 방조했다. 피해 여성들은 20대도 있었지만 10대에 더 치우쳐있었다. 즉 구체적인 혐의는 미성년자 성매매와 인신매매였다. 사실 길레인이 마담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세상은 믿지 않았다. 그런 행위를 할 위치나 인성의 수준이었는지 생각할 수조차 없다고 봤다. 다큐멘터리에서도 강조하지만, 길레인의 행위를 이해하려면 그의 아버지이자 언론 미디어 재벌 총수 로버트 맥스웰을 살펴봐야 한다. 괴물 탄생의 기원이었기 때문이다.


▲ 영화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 스틸컷


로버트 맥스웰은 1923년 체코 태생인데 17살 때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간다. 2차 세계대전 때 입대를 했던 그는 특진으로 장교가 된 뒤 베를린에 주둔한 영국군 신문 검열반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 신문 검열반의 근무가 나중에 언론 미디어 재벌이 되는 출발점이었다. 이때부터 언론사와 출판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출발은 출판사 운영이었는데 1951년 교과서 전문 출판사인 페르가몬을 인수해 몇 년 만에 대형 출판사로 키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정치에 입문하고 노동당 하원의원으로 6년 정도 활동한다. 그는 다시 신문이 더 큰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신문사 인수전에 전력투구한다. 1969년 타블로이드 옐로우 저널리즘의 대표주자 ‘뉴스 오브 더 월드’ 인수전에 나서는데 비록 루퍼트 머독에게 패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인수합병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일단 1970년 유럽의 조세 회피처로 알려진 리히텐슈타인 공화국에서 페이퍼 컴퍼니 맥스웰 재단을 만든다. 뒤이어 이를 바탕으로 ‘데일리 미러’, ‘데일리 레코드’, ‘선데이 메일’ 같은 신문사를 인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맥밀런 출판사 영국 자회사, 음반 제작사 님버스, MTV 유럽 등을 확보한다. 하지만 사세를 확장하는 데 쓰이는 자금과 무리한 경영 방식이 항상 문제로 지적되었다. 다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소련과 공산권에 관한 정보가 정통했기 때문에 특종을 많이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소련과 공산권에 인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1980년대 말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 영화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 스틸컷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영화 ‘007 시리즈’에 묘사되어 있다. ‘007 시리즈’ 18번째 영화로 1997년 제작된 ‘Tomorrow Never Dies(미래는 절대 죽지 않는다)’에 빌런으로 등장하는 카버 미디어 그룹 회장의 엘리엇 카버가 바로 로버트 맥스웰을 모델로 했다. 엘리엇 카버(Elliot Carver)라는 캐릭터는 본래 뉴스 코퍼레이션과 20세기 폭스사의 소유주 루퍼트 머독을 모델로 했다고 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보면 로버트 맥스웰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있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실을 만들어 뉴스를 상품화하는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카버 회장은 악랄하게도 영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고 이를 독점 보도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를 사전에 막으려는 007을 살해하려고 권총 저격수 카우프만 박사(Dr. Kaufman)를 보낸다. 제임스 본드가 객실에 도착했을 때 TV의 카버 미디어의 뉴스에서 "카버 사장의 부인인 패리스 씨가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 옆에는 신원 미상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라고 보도되고 있었다. 신원 미상의 시신이 카우프만 박사가 죽인 제임스 본드여야 했지만, 오히려 카우프만 박사는 제임스 본드에게 당해 신원 미상의 시신이 된다. 카버 미디어의 뉴스는 진짜로 가짜뉴스가 된다. 이렇게 가짜뉴스로 언론 플레이를 하며 뉴스 장사를 하는 인물인데, ‘007 시리즈’는 로버트 맥스웰이 자신의 부인도 잔인하게 죽이는 것으로 묘사한다. 비록 그 부인이 로버트의 전쟁 음모를 제임스 본드에게 밝혔지만 말이다. 한편 로버트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창 장군(General Chang)에게 베이징에 핵무기를 날려 기존 세력을 무너뜨려 새로운 통치를 할 수 있게 해주면 100년간 중국의 독점 보도권을 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방식은 소련과 공산권에 거래하던 로버트 맥스웰을 직접 떠올리게 만든다.


▲ 영화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 스틸컷


영화는 007 액션 영화답게 이런 엘리엇 카버가 영국과 중국의 전쟁을 획책하려다가 제임스 본드에게 음모의 중심에 있던 영국 군함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그린다. 하지만 영국 정보부는 그가 휴양 중 개인 보트 침몰 사고에서 익사한 것으로 밝힌다. 로버트 맥스웰의 실제 죽음과 비슷한 면이 있다. 1991년 11월 5일 로버트눈 자신의 호화 요트 난간에서 실족해 익사한 것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사망하고 나서 미디어 재벌 그룹 2세의 행태였다. 그 행태의 주인공이 길레인 맥스웰이었다.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에서는 이점에 초점을 맞춘다.


길레인이 괴물이 된 배경에는 아버지 로버트 맥스웰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가부장적이었다. 여성을 도구나 수단으로 생각했다. 수없이 많은 여성과 불륜을 저질렀고 오늘날 관점에서 성범죄도 많았다. 어머니는 이를 묵인했고 아이들도 용인했다. 왜냐하면, 돈과 권력이 아버지에게서 나왔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로버트는 길레인을 사교계 모임에 같이 데리고 다녔다. 영국은 물론 유럽의 세계적인 유명인사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런 사교계를 통해 세상의 권력과 부가 구축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명인사들도 언론과 관계를 맺는 것이 득이 된다고 생각했다. 유명인사는 결국 언론 미디어 노출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 영화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 스틸컷


앞에서 007 영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정당하지 못한 관계와 수완, 거래 등으로 미디어 재벌을 만들고 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단지 옥스퍼드 대학의 등록금을 지원해준 정도가 아니라 사교계 명사가 될 수 있었다. 더구나 그 활동에 들어가는 돈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 아르바이트는 물론 조직 생활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없어지자, 길레인은 아버지를 대신할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직원들의 사회보장기금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받을 유산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제프리 엡스타인은 오갈 데 없어진 길레인의 활동 범위를 오히려 넓혀주었다. 영국을 떠나 뉴욕에서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길레인은 졸부에 불과했던 제프리가 사교계에 발을 들이게 해주었고, 수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접근할 기회를 얻게 했다. 겉으로 사교계 유명인사에 지적이고 활동적인 길레인에게 호감을 느낀 수많은 여성이 제프리의 범죄 표적이 되었다. 비록 제프리는 구치소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길레인은 오히려 떳떳했다.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자위했거나 변명을 한 셈이다. 하지만 길레인이 아니었다면 제프리에게 수많은 여성이 희생당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길레인은 그 대가로 많은 돈을 제프리에게 받아냈기 때문에 성매매 포주와 같았다. 그것도 매우 액수가 컸는데 이는 단순 성매매가 아니라 강간과 같은 중대 범죄에서 사실상 공동 정범과 다를 바 없었다.


▲ 영화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 스틸컷


정말 의아한 점은 수십 년간 길레인의 악행이 이뤄졌고, 수많은 희생자가 제보해도 언론이 무시한 사실이다. 그러한 무시는 길레인의 악행을 더 대담하게 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길레인이 돈으로 매수를 해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인맥 자본이 가진 구멍이었다. 아버지 로버트 맥스웰이 만들어 준 인맥을 바탕으로 이른바 재계, 정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인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더구나 제프리의 돈으로 미국에서도 그 인맥을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길레인의 범죄 행각은 간과되었다. 사교 인맥은 정보 유통의 창구이자 허브였다. 이를 언론 산업 종사자들도 모를 리 없었다. 다만, 명성과 인기가 떨어지면 정보 유통의 중심에서 멀어질 수 있고, 효용 가치가 떨어질 수 있음을 길레인 본인이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에 관한 각종 범죄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는 사교계 활동을 위해서 제프리의 돈을 받고 희생자를 공급해야 했다. 그것도 어릴수록 더 상품성이 있다는 점을 길레인은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로버트 맥스웰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길레인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아버지를 그대로 흉내냈다. 아버지가 다만 시대적 상황에서 권위적인 이미지로 활동했던 것과 달리 특유의 사교 이미지를 구축했을 뿐이다. 이런 이미지가 언론에 그대로 확대 재생산되어 입지를 구축하면서 희생자의 피해를 키웠다. 더구나 길레인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더욱 진실이 알려지기 힘들었다. 대개 성범죄는 권력의 남성이 저지른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 영화 '길레인 맥스웰: 괴물이 된 사교계 명사' 스틸컷


만약 길레인이 돈이 많았다면 이런 범죄를 공동 모의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언론 제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저널리즘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이권을 얻으려는 수단으로 언론 미디어를 소유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언론재벌도 과연 저널리즘 정신이 얼마나 충만한지 알 수가 없다. 그 2, 3세대들의 족벌 경영이 문제가 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돈과 권력이 있기에 길레인과 같은 괴물이 아직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아니 괴물이 되어있는데 언론 스스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 큰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의 돈과 권력이 그대로 유지 되게 해야 하는가? 문제는 계속 발생하는 희생자들이다. 언론의 보도 비즈니스에 수단이 되는 사람들은 오늘도 여전하다. 길레인의 행각과 다를 바 없다. 각각의 권력자들에게 원하는 보도를 맞춤식으로 제공하고 광고비를 챙기는 방식이나 정치 권력에 맞는 보도를 조작하거나 없는 뉴스를 만들어내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언론 권력의 묵과는 매우 오랫동안 희생자들을 낳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반면교사 삼아야 하고 그들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 길레인의 미래가 한국에서도 없으리라는 보장 없이 언론 재벌이 성장해온 역사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