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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열혈 기자는 사라져야 했을까? - 영화 ‘대외비’ 리뷰 (※스포일러 주의)
2023-05-02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열혈 기자는 사라져야 했을까?


영화 대외비│2023

감독 : 이원태, 주연 :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


▲ 영화 '대외비' 포스터


욕망이 큰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언론 보도다. 만년 국회의원 후보 천해웅(조진웅 役)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하지만 상황이 그의 본능을 일깨우니 달라진다. 애초의 선한 의지는 상관없어졌고, 결과를 통해 모든 것을 말해주게 된다. 이제 국회의원만이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에 마다하지 않고 저지르는 그의 범죄 행위가 저널리스트의 희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영화 ‘대외비’는 반가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점들이 있었다. 정치를 직접적인 소재로 하면서도 서울을 벗어나 부산이라는 지역 정치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역 정치를 통해서 전체 정치 권력 역학의 본질을 담아내고 있었다. 1992년 총선과 대선이 열렸던 그 시기를 반영하니 사실적 울림까지 있었다. 노회한 권순태(이성민 役)의 아지트 이름이 초원식당이라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현실주의에 무릎을 꿇었으니 관객도 말을 잃게 되었다. 관객이 말을 잃으면 입소문은 나지 않는 법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 영화 '대외비' 스틸컷


애시당초 적은 그들에게는 없었다. 각자 욕망 앞에 적으로 대척점에 서게 되었을 뿐이다. 드디어 천해웅은 이번에야말로 해운대구 공천 1번으로 국회의원 당선을 생각했다. 하지만, 후보조차 되지 못한다. 권순태는 중앙당의 지령에 따라 더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다른 후보 박용식을 선택했다. 이에 분노를 표출한 천해웅은 자신의 필살기를 뽑아 든다. 그것은 바로 금권 선거다. 상대방이 취한 전략을 그대로 흡수해 버린다. 본인은 개싸움에는 그것에 맞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관객들은 그가 반영웅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는 부산 시청의 동문인 주택국장 문장호(김민재 役)와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해운대 도시 개발 계획지도를 유출해 그것을 미끼로 지역 유지와 조폭을 동원, 선거전에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다. 지지도는 2위까지 치솟고 1위를 넘을 기세가 된다.


하지만, 선거전의 막후 실력자인 권순태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그 방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을 매수해 선거용지를 사전에 빼돌리고 이를 통해 투표 결과를 조작한다. 즉 투표용지 조작을 통한 부정선거였다. 악행에는 이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심지어 그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을 수장시킨다. 이런 상황이니 최종 개표 결과 천해웅은 참패하고 만다. 뒤이어 천해웅에게 트리플 악재가 몰아닥친다. 우선 선거 이후 갑자기 해운대 개발 계획이 전격 변경된다. 문장호가 권순태에게 협박을 받고 변경한 것이다. 이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해운대 개발을 믿고 돈을 댄 지역 사업주 정한모(원현준 役)가 이익금을 주지 않으면 검찰에 고발한다고 협박한다. 그는 천해웅의 움직임이 마음에 안 든다며 실제로 검찰에 모든 사실을 폭로하고 제보한다. 또한, 같이 조직력을 제공한 조폭 조직도 위협에 가세한다. 정치 활동은 물론 생명조차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 영화 '대외비' 스틸컷


이에 다시 천해웅은 회심의 반격 카드를 만든다. 동문 친구 문장호의 자백을 받은 뒤 해운대 개발 계획을 바꾼 세력에 대한 정보 즉 대외비 자료를 입수한다. 이 자료를 입수했으니 찾아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언론사. 부산 지역 신문에 찾아간 천해웅은 사회부 기자에게 문건을 보여준다. 그 기자가 바로 송단아(박세진 役)이였다. 캐릭터의 성격상 진실 보도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20대 열혈 기자였다. 더구나 이 신문사는 아직 권순태의 작업 대상이 되지 않아 데스크도 우호적이었다. 과연 이 보도가 제대로 이뤄질지 알 수가 없었다. 영화의 서사는 항상 장애물을 통해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보통 저널리스트가 등장할 때면 판박이 표현처럼 작동한다. 하지만, 보도는 의외로 쉽게 이뤄진다. 왜일까? 애초의 개발 계획이 갑자기 변경되었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권순태의 태도도 대폭 바뀐다. 역시 만만치 않은 빌런의 악행은 더욱 도를 더한다. 권순태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신문사도 움찔할 수밖에 없다. 송단아에게 후속 보도에서 손을 떼도록 한다. 항의를 해보지만 데스크는 “니하고 내하고 월급 주는 사람이 고만 하랜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어이없어하는 송단아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 영화 '대외비' 스틸컷


“우리가 아무리 쓰레기 소리 듣고 살아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짝저짝 사방 다 물려가 아무 말도 못하는 기 무슨 기잡니까?” 감독의 언론관이 드러나는 이 대사를 내뱉은 송단아. 사표를 쓰겠다고 했지만, 이렇게 후속 보도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다고 해서 가만있을 그녀가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 수장된 것으로 알았던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살아서 돌아온다.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확실한 물증을 확보한 천해웅은 송단아와 함께 기자회견을 준비한다. 직원에게 기자회견에서 발표할 내용까지 세밀하게 연습시킨다. 하지만, 권순태는 악마의 본성을 그대로 실행한다. 다시 살아온 직원을 김필도(김무열 役)을 매수해 재차 바다로 끌고 가 수장시키고, 기자 회견장에 아예 들지도 못하게 한다. 더구나 기자 회견장에는 주택국장 문장호가 등장해 대외비 자료가 조폭에게 탈취당했고, 정한모 사장이 죽임을 당했다고 허위로 거짓 폭로를 한다. 기자회견이 파국을 맞는 상황에서 다급하게 연락을 취하는 송단아는 이름 모를 낯선 사내들이 나타나 호텔 객실로 끌고 간다. 이로 인해 기자회견이 열릴 호텔은 저널리즘 정신이 무너지는 비극의 현장이 되었다.


▲ 영화 '대외비' 스틸컷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e Devil’s Deal’ 즉, 악마와의 거래쯤이다. 권력을 위해서 악마와 손을 잡는 주인공을 통해서 어쩌면 정치 현실을 드러내려고 했는지 모른다. 결국에 직원도, 기자도, 조폭도 제거되고 오로지 남는 인간은 권순태와 천해웅이기 때문이다. 물론 천해웅이 권순태와 같은 존재, 즉 악마로 변해가는 정치 현실 상황을 감독은 전제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관객들이 설마 모를까. 오히려 문화콘텐츠를 통해 희망을 보려고 자기 돈을 내고 극장을 찾으려 하는 관객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극장이라는 또 다른 공간에 올 이유가 없다. 현실 정치판은 아수라장이고 결국 악마와 손을 잡은 이들이 권력을 잡아 온 역사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금씩 달라진 점은 있고 중요한 포인트마다 어쨌든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그 언론 보도는 단순히 기계나 조직이 한 것이 아니라 특정 저널리스트 개인들의 노력이었다. 그것은 송단아 같은 소신 있는 기자들의 역할이었다. 지역이라고 해도 그런 저널리스트 정신이 사라질 수는 없다. 애초에 지역의 정치 세계에서 기자의 등장이 반가웠지만, 얼마나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어줄까 노파심 속에 아예 좌절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설마 그 현실을 혼자 본인만 알고 있기에 널리 알려주려 했던 것이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지만 빗나가지 않았다. 그로테스크한 아니 비극적 현실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 어쩌면 관객은 그 이상을 원하고 있다. 아니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지금 어딘가에는 지역에서 여전히 저널리스트 정신을 실현하고 작은 성공도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때문에 그 믿음이 영화에 반영되는 일이 가히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현실을 말하며 현실 앞에 무력해지는 것, 그 이상을 관객들은 문화콘텐츠에서 요구하고 있기에 영화가 OTT의 성장 배경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 영화 '대외비'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