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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도라희가 언론사에서 살아남는 법,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2024-05-10

■ 윤성은 영화평론가



도라희가 언론사에서 살아남는 법,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


감독: 정기훈, 주연: 정재영, 박보영



▲ 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포스터


동명일보 연예부 수습기자로 취업한 ‘도라희’(박보영)는 기대와는 너무 다른 현실에 좌절한다.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멋진 사회 생활이 시작되리라 믿었건만 등잔 밑이 어두운 걸까. 언론사는 인권과 가장 먼 곳인 것 같다. 도라희는 출근 첫 날부터 부장인 ‘재관’(정재영)으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와 함께 쉬는 날도, 쉬는 시간도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열정만 있으면 못할게 없다’는 열정페이의 구호도 라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 것 같고, 자기 생각도 마음대로 드러낼 수 없는 이 직장을 당장 그만 두고 싶지만 엄마는 취업했으니 이제부터 오피스텔 월세를 혼자 해결하란다. 그냥 미친 척 버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 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스틸샷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감독 정기훈. 2015)는 언론사 내부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우리 청춘들의 초상이다. 간간이 삽입되는 동명일보 신입사원들의 신세한탄 장면은 직장 새내기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학자금 대출 받아가며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온 언론사인데, 이상과는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적은 월급에 잦은 야근, 인격 모독과 성추행까지,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잘 몰랐던 어려움과 고민들이 이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갈등하게 한다. 가벼운 성추행 같은 건 별거 아니라는 듯 웃어넘기고, 못 마시는 술도 한 입에 털어 넣어야 사회 생활 좀 할 줄 안다고 칭찬을 듣는 현실이 도라희는 악몽 같기만 해다. 이런 각도에서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는 먼저, 사회 초년생들의 직장 적응기로 분류될 수 있다.



▲ 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스틸샷


그러나 영화의 1막이 지나가면 기자로서의 성장담도 등장한다. 경쟁사에서 톱스타인 우지환이 피습을 당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도라희는 취재를 위해 병원으로 달려간다. 학교 선배의 도움을 받아 곡절 끝에 우지환의 병실까지 들어가게 된 도라희는 그가 다친게 아니라 소속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JS의 ‘장유진’(진경) 대표가 회사를 나가려는 우지환을 협박중이었던 것이다. 이 때, 라희는 우지환에게 스캔들을 터뜨릴 수 있는 사진을 직접 제공 받지만 상대 여배우가 타격을 입지나 않을까 잠시 갈등한다. 그러나 자신의 기사가 특종이 되고, 회사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하자 라희는 신바람이 난다. 마침, 회사에는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계속해서 자극적인 기사를 종용하던 재관은 팀원들과 갈등을 빚는다. 연예부라는 특수성 때문에 온라인 기사만 나가는 부서로 전락할 수 있는 위기에서, 우지환에 대해 아무 것도 쓰지 못한 라희에게 재관이 한마디 한다. “너 그 기사 때문에 누군가가 망가지는게 무서웠던 거 아냐. (중략) 명색이 기자라는 새끼가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기사를 덮어? 요새 그런 기자를 뭐라 그래? (기레기요)” 재관의 말은 기자가 날카로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외압 때문이 아니라 온정주의 때문일 수도 있고, 그것 역시 언론인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잘 꼬집는다. 주로 권력의 횡포나 부조리에 대해 꼬집는 사회고발성 영화들과 이 영화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 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스틸샷


2015년작인데다 코믹한 요소들이 많아 지금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도 많다. 선배들이 신입사원들을 보자마자 귀엽다고 볼을 꼬집는다든가 반쯤 욕을 섞어 가며 하대하는 것 등이 그렇다. 언론사 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지금은 사라진 풍경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콘텐츠들에서 ‘꼰대’라는 말이 무서워 선배들이 후배에게 꼭 해야 할 말도 못하는 상황은 답답함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재관이 라희를 비롯한 팀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때로 자기 분에 못 이겨 기물을 파손하기도 하는 장면이 한편으로 구시대적 유물이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 착한 영화에는 언론사 안에 완전히 나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말 많은 재관조차도 결말부에는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부장이라는 자리에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진 인물임이 밝혀진다. 그런 선배들의 면모를 보면서 조금씩 기자라는 직업과 사회생활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라희의 성장이 따뜻하게 그려지는 작품이다.



▲ 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스틸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