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M 스토리] 우아한 기자가 사라진 시대
2020-12-01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 (2019년작 / 클로드 라롱드 감독, 패트릭 스튜어트•케이티 홈즈 주연)

패트릭 스튜어트(맞다. 시리즈의 그 프로페서X 배우다.)와 케이티 홈즈(맞다. 한때 톰 크루즈와 살았던 그 여배우다. 아직 젊다. 42살밖에 되지 않았다.)가 주연을 맡아서 눈길을 끄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는 ‘늙은 영화’다. 이 영화를 두고 음악 영화라느니, 두 남녀의 마지막 로맨스 영화라느니 하는 건, 다 부질없는 얘기다. 그냥 ‘늙은 영화’다.

물론 이 영화를 장르로 얘기하면 음악 영화가 된다. 주인공이 피아니스트니까. 극 전편으로 줄기차게 클래식이 나오니까. 바흐와 슈베르트, 베토벤, 슈만 등. 그러니 클래식 애호가들이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적으로는 좀 별로다. 그냥 늙은 영화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늙은이가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늙은 영화. 어법이 다소 고답적인데다 이야기 진행이 잘 안되고 더디며, 진부한 결말로 가고 있는 게 눈에 너무 보여서 보는 내내 심드렁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물론 음악만으로는 귀를 번쩍번쩍 열게 만든다. 두 남녀, 곧 노(老)피아니스트 헨리 콜과 중년의 뉴요커 소속 클래식 기자 헬렌 모리슨이 처음 만나는 건 둘이 같이 피아노를 치게 되는 때이다. 헨리 콜은 일종의 공황장애에 시달리는데 사람들 앞에서 곧 있을 콘서트를 위해 피아노 조율을 직접 하려다 머리 속이 백지가 된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헬렌이 옆 자리에 앉아 선수(先手)로 악보를 리드하고 헨리는 곧 정상을 되찾는다. 이때 연주되는 곡이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 중 ‘하바네라’인데 이 영화에는 이렇게 귀에 익은 명곡이 즐비하게 나온다. 그러니 영화 따위, 혹은 스토리 따위, 그리 구애 받지 않고 즐기기에도 충분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를 음악 영화라고 하기 보다 그저 늙은 영화라고 하는 건 결국 상실과 수용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계속 주변을 잃어 간다. 시간은 사람에게서 뭘 갖다 주기 보다는 자꾸 뺏어가는 게 본분이고 현명한 사람은 그 시간을 결국 자기 편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헨리 콜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행보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심리적으로 ‘헤매기 이전’에 아내를 잃었다. 아내는 일종의 파라노이드 증상을 겪어서 남편을 따라 연주회를 다니기 보다는 남자가 자기 옆에 머물러 주기를 바랐다. 세계적 연주자로서 그건 가장 큰 문제였으나 헨리 콜은 가능한 아내의 요구를 들어줬던 모양이고 그런 아내가 죽은 후 오히려 정서적인 공황 상태를 겪는다. 그러다 나타난 것이 헬렌 모리스이고 둘은 사랑까지는 가지 않지만 헨리는 헬렌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 두 배우 나이가 80과 42세여서 둘 사이에 로맨스를 가공해 내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긴 하다.) 실제로 헬렌은 연주회를 떠나는 헨리에게 입을 맞추며 사랑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때 헨리의 표정은 매우 복잡해 보인다. 이 사랑이 그 사랑일까? 라는 의문부호 같은 것이 떠오른다. 아니, 꼭 그 사랑이 아니어도 된다는 상념같은 것이 느껴진다. 아무튼 헬렌도 곧 그의 곁을 떠난다. 왜 ‘그런 방식으로’ 떠나는지는 영화가 의도적인지, 매우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다. 헨리는 또 한번 엄청난 상실감을 겪게 되는데 그런 그를 구원하는 것은 음악이다. 헬렌이 젊었을 때 열애를 했었다는 한 젊은 연주자가 매해 연말에는 늘 독일의 한 리조트에서 연주회를 갖고 거기를 찾아 가면서 헨리는 점차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 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든 셈이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헬렌 모리스의 직업이다. 그녀는 ‘뉴요커’의 기자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클래식 전문기자이자 평론가인 셈이다. 전문기자가 취재를 하는 모습들이 영화 속에서 살짝살짝 비춰진다. 사건기자가 아닌 바에야 시간과 기사 송고 속도에는 아무래도 덜 부담을 느끼는 거겠지만 그래도 참, 우아한 취재를 하고 다닌다. 마에스트로를 만나고, 그에 대한 책을 읽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연주회를 동행하고 등등 지금의 우리 언론, 신문과 방송에서는 언감생심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중들이 저런 기사나 프로그램을 바라지도 않을 터일 것이다. 문화부 전문기자, 그것이 클래식이 됐든, 미술이 됐든, 문학이 됐든, 그런 기자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언론사 그리고 사회가 부럽다.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일 것이다. 그런 나라가 뭔가 더 풍부할 것이다. 우리는 그러기에는 지금의 삶이 거의 전쟁이다. 검찰과 국회 관련 기사만으로도 지면과 방송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건 사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빵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장미가 있어야 한다. 물론 장미만 있어도 안 된다. 빵이 있어야 한다. 오죽했으면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이 자신의 영화 제목을 ‘빵과 장미’라고 했겠는가. 우리 기자들 사회에 장미가 너무 없는 건 아닌지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는 이상한 방식으로 웅변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코다’다. '코다(coda)'는 이탈리아어로 '꼬리' 또는 '종결부'란 뜻인데 악장의 끝에서도 마무리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클라이맥스의 강조 효과를 주기 위해 추가한 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예컨대 베토벤의 '열정' 3악장의 맨 끝에, 몰아치듯 연주하는 부분 같은 것이다. 결국 이 원제는 주인공 피아니스트의 인생 마지막 부분의 클라이맥스를 묘사하겠다는 의지를 지닌 셈이다. 참고하면서 보실 것.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