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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모든 걸 지워나가는 과정” 추상화가 하태임
2018-07-19

화려한 색감 위에 흰 띠들이 수차례 지나간다. 켜켜이 쌓인 띠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띠를 바라보던 관람객들 시선이 이내 화려한 바탕으로 향한다.


‘밝고 경쾌한 색의 중첩’을 주제로 한 하태임 작가 초대전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아트스퀘어(ART SQUARE)에서 오는 8월 31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은 24시간 개장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하 작가는 10년이 넘도록 유연한 굴곡의 색 띠만을 그려 일명 ‘색 띠(컬러밴드) 작가’로 불린다.

지난 6월에는 북미 정상회담 장소였던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 벽면에 걸려 있던 하 작가의 '컬러밴드 시리즈’가 생중계 화면에 잡혀,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 작가는 “색을 하나씩 덧입히는 작업은 오히려 다 닦아내는 과정과 같다”며 “모든 걸 닦았을 때 비로소 작가의 내면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다음은 하태임 작가와 일문일답이다.


Q. 색 띠는 추상적이다. 무엇을 의미하나?


‘조화’와 ‘소통’이다. 작품 제목도 '통로(Un Passage)‘이다. 프랑스 유학시절 고민하던 주제인데 ‘소통’은 지식, 언어, 문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림에서 인위적인 문자와 부호들을 하나씩 지워 나갈 때 오히려 감성의 통로는 더 넓어진다. 이번 로비에 전시된 그림들 가운데 흰 선은 지워나가는 과정이 표현된 것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상을 묘사했다기보다 마음속에 잠들었던 선율을 작품에 구현했다. 색 띠의 중첩이 생동감과 균형미를 발산하길 바란다.


Q. ‘소통’을 뜻하는 작품이 걸린 곳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은데.


지난 2007년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 전시된 내 작품을 본 미국의 한 유태인 아트딜러가 그림들을 사갔다. 싱가포르 최고 호텔에 걸릴 것이라는 말에, 당시 미국 산타모니카에 거주했던 그를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 그 자리에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 도면을 보며 그림이 걸릴 위치를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역사적인 현장에 색 띠 작품이 함께 하니 기분이 묘하고 떨렸다.

Q. 가끔은 구체적인 형상도 표현하고 싶지 않은가?


미술 전공자들 대부분 초기에는 표현주의로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은 추상화가다. 화면 가득 여러색들이 어울려 컬러 판타지를 연출할 때가 가장 좋기 때문이다. 획마다, 결마다 작가의 숨결이 있고 심성이 묻어난다.


Q. 색이 완전히 마르고 난 후 다음 작업을 하면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할 것 같은데,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서양화 재료를 사용하지만 사실 한국화에 가깝다. 물감을 얹을수록 더 두드러지는 투명성이 한지에 채색하는 기법과 비슷하다. 하나의 색 띠가 완성돼야 다른 색 띠를 올릴 수 있다. 전통적 서양화에서 보이는 텁텁하고 두터운 색채가 아닌, 투명함을 강조한 붓질을 계속 반복한다. 즉 시간과 붓질이 여러 차례 맞물려 그림이 완성된다.

Q. 앞으로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펼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지난 5년 동안 대학 전임교수를 지냈다. 그런데 후학 양성도 좋지만 개인 작업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직서를 내고 올해부터 전업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작품 활동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고, 이제 이 에너지를 관람객들과 나누고자 한다.


[YTN PLUS] 취재 공영주 기자, 사진 제공 하태임 작가, 최재용 YTN커뮤니케이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