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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산책] 사진인 듯 그림인 듯, 극사실 세계와 만나다 - 화가 정영한
2021-05-17

- 중앙대 서양화학과 졸업, 홍익대학원 미술학과 박사 졸업

- 현 중앙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

- 2002년 성곡미술관 등 다수의 개인전, 단체전, 아트페어 참여

- 작품소장: 외교통상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 우리時代 神話 Myth of our time (oil on canvas, 2011 / 60.6cm * 90.9cm)

나의 작품 속 대상들은 도처에 산재한 원본 없는 이미지들 또는 고대 석상이나 이름 모를 바다 풍경과 왜곡된 형태의 꽃 또는 꽃잎들로 채집하듯 모아 온 사진 이미지들이 ‘모델’이 되었다...


혹자들에게 내가 선택한 ‘모델’들은 이름 없는 바다, 원본 없는 꽃, 상투적인 석상에 지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그들은 오늘이 있기까지 축적된 시간들의 반영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화가로서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가야 할지 진지한 숙고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노트 중에서>

▲ 우리時代 神話 Myth of our time(oil on canvas, 2011 / 162.1cm * 112.1cm)

*사진 같은 그림... 붓의 흔적을 지우다

처음 작품을 보면 언뜻 사진처럼 보이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림입니다.

사진의 평면성과 회화의 입체성을 교묘하게 맞물려 착시 효과를 극대화한 것입니다.

밀레니얼 이후 초현실적 포토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중견 화가인 정영한 작가는 전통 회화의 기본 방법인 붓을 사용해 그리지만 그린 흔적을 다시 지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진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 우리時代 神話 Myth of our time(oil on canvas, 2010 / 80.3cm * 116.7cm)

*신화란 무엇인가?

이번 전시 작품의 제목은 모두 '우리 시대의 신화'로 같습니다.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사과, 꽃, 신문 등 가상의 이미지들을 재구성했습니다. 꽃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추상적인 생각을 신화와 같은 이미지로 해석한 것이고 신문은 수없이 복제되는 인쇄 매체 속에 내재된 시간과 현대인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이미지... 그 속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야기

사과, 꽃, 신문... 분명히 낯익은 현실의 익숙한 이미지들인데 두세 개의 이미지 사이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가 아닌 낯선 세상을 보게 됩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회화가 연출하는 세계는 착시에 의한 허구의 세계이며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인터넷 공간과도 같은 가상 현실이라는 사실, 그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를 그리기 위해 작가는 바다에 가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머릿속에 담아둔 바다, 관념의 바다로 잡지나 인터넷 등에 떠도는 이미지를 채집해 자신의 이미지로 활용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 '왜?' 라는 호기심과 함께 열린 마음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 YTN 아트스퀘어 정영한 초대전 (5.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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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정영한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사과 3개를 포함해 작품을 본 첫 느낌이 사진 같다. 가까이 가보니 그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극사실주의적이라고 평가해주면 감사하죠. 그렇다고 어떤 대상을 사진처럼 리얼하게 그리려고 하지는 않고요. 사진과 그림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른, 현대 회화로서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어서 어느 정도는 형상성을 반영하면서 이미지로서 존재하고 회화의 본질은 보여지게 노력해봤습니다.


Q. 나름의 계산된 기법이 있을 거 같은데?


- 붓을 사용해요. 순수하게 정성껏 채색을 하는데 그려놓고 붓질을 지우고, 또 그리고 붓질을 지우고, 여러 번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개입되었던 흔적들도 없애고 또 그리고. 어떤 부분에선 관람자도 저의 작업을 너무 몰입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풍경을 관조하듯 저도 제 작업에서 조금 떨어져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조하듯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형태들이 작업 과정에서 반영되고 작품의 표면에서도 특성으로 반영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 우리時代 神話 Myth of our time(oil on canvas, 2011 / 162.1cm * 112.1cm )

Q. 왜 신문이 등장할까?


- 제 그림을 처음 접하면 푸른 바다에 흩날리는 꽃잎,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시각적 경험을 관람자가 느낍니다. 근데 자세히 보면 단순한 풍경 그림이 아닌가? 자연스럽게 지적 호기심이 생길 거에요. 왜 바다에 꽃잎이 있지, 사과가 떠 있지, 신문이 있지? 이런 고민을 하실 거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대상과 대상의 조합이라든지 그런 문제는 아니고 ‘우리 시대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이미지를 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순차나 위계 없이 무차별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를 제가 나름대로 서로 편집하는 거죠. 익숙하지만 그리고 평범하지만 그것들이 조합돼서 조금 더 낯선, 우리가 늘 보는 이미지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신문도 마찬가지인데요. 현실에서 사실성을 보도하는 미디어, 매체로서 역할을 하는 데 저의 작업에 들어오면서 사실성이나 진실성은 사라집니다. 그냥 이미지로서 존재하고 바다 배경의 화면과 결합됨으로써 큰 하나의 오브제로 보여지고 신문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과 텍스트는 이미 서로 다른, 허구의 이미지가 됩니다. 그게 회화가 갖고 있는 허구성 내지는 가상성과도 연결돼있는 거죠. 실제로 보여주는 것들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조금 더 변화되고 새로운 시각 세계에 대한 경험들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Q. ‘우리 시대의 신화’ - 작품명이 모두 같다. 하나의 주제?


- 종교적 신화나 배경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신화 자체에는 대상이 없는데 거기에 그럴싸한 이야기를 씌워서 마치 진실처럼 보이게끔 하는 방식인데 회화 자체가 신화의 방식을 갖고 있거든요. 저의 작업은 이미 실체는 사라지고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대상들, 예를 들어 사실성도 없고 재현성도 없는 신문이라든지, 또 사과하면 선악과로서의 상징성도 있고 우리 시대 아이콘인 애플을 떠올리기도 하고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서도 등장합니다. 시대에 따라서 대상의 이야기가 바뀌어온 것처럼 제 작업에서는 그것들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보는 사람의 상상력이 작동해 새로운 이야기가 쓰여지기 때문에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이미지,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제 작업에 도입하고 그걸 통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에서 '우리 시대의 신화'라고 정의하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Q.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 저의 작업을 보는 관점에서 극사실적인 경향으로 보실 수도 있을 거 같고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으로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우리 시대 다양한 이미지들을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상상하는 것은 굉장히 많이 열려있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늘 느끼고 늘 보고 있는 평범한 소재들도 제 작품 속에서 어떻게 보면 조금 낯설게 그려지는 방식을 통해서 새로운 감각으로 보여지고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 과거 예술가들이 본인만의 영감을 받기 위한 뮤즈들이 있었던 것처럼 몇 년 전 우연히 만난, 제가 키우는 고양이가 있는데 사진 작업, 입체작업 등 다양한 매체 작업이 가능하게 많은 영감을 줬어요. 고양이 사진으로 감사 카드, 스카프, 에스프레소 잔 등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친밀하게 만나고 다른 차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회화라는 작업을 기본으로 해서 드로잉, 회화 존재하기 전에 있을 법했던 사진, 제가 그렸던 이미지를 입체화시키는 작업 등 다양하게 변주되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고양이 이브생노랑이 제게 뮤즈가 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