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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산책] 내면의 삶을 그리는 서양화가 김현기
2021-07-15

김 현 기 hyunki kim

- 1971년 출생, 갤러리현 운영

- 개인전 및 단체전, 아트페어 다수 참여

- 인천미술협회 이사(2010~2016), 인천미협수요사생회운영위원장(2010~2018)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116.8×91.0(50호), oil on canvas, 2021

"유년시절 어머니는 내 큰 스승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그림 속 사유는언제나 자유로웠고

나는 그 속에서 내면 깊숙이 유영하는 어머니를 배웠습니다.


어머니가 배어있는 캔버스는 나의 위안입니다. 생각을 마음껏 펼쳐주기도 하며 꿈을 대신 꾸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사 희비(喜悲) 온몸으로 부대끼며 생의 지층을 매일 매일 그림으로 기록하는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 작가 노트 中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 경기도 시흥의 한 농장에서 김현기 작가를 만났습니다.

농사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김 작가 농장 한켠에 꾸며둔 작업실에서 자연과 내면의 숨소리를 그려냅니다.

매일 다른 빛을 띠는 자연 속에서, 꽃과 작물을 돌보며 그날그날 일렁이는 감정들을 캔버스에 마치 일기처럼 풀어놓습니다.

그 속에서 자연의 빛에 물들어가는 자신의 모습도, 불쑥 나타나는 ‘어린 나’의 슬픔도 마주합니다.

작가는 ‘인생이 예술이 되게 하라’는 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내면의 갈등과 감정들을 예술로 담아내고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고 전합니다.


김현기 작가의 '그림일기'

여름의 짙은 녹음, 초록 논밭이 화폭을 가득 채웁니다.

작업실을 둘러보면 봄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머물다간 흔적, 당시의 숨결과 향기도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작품에서 강렬한 색채와 동화적인 이미지 구현이 인상적입니다.

작가의 기억과 상상력이 더해져 사물과 풍경이 아기자기하게 표현됩니다.

작가의 상상에는 시점과 구도도 다양합니다.

그림을 위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옆에서 본 것도 같기도 한 구도가 섞여 있어 이리저리 살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작가가 진솔하게 풀어놓은 ‘그림일기’는 보는 이들의 깊숙한 정서를 불러일으킵니다.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감흥과 정서를 보태며 ‘그림일기’를 두텁게 채워갑니다.

YTN 아트스퀘어 김현기 초대전 (7.1~7.31)


김현기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 갤러리 홈페이지 (https://ecorockgallery.com/author/view.htm?idx=5056)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에코캐피탈의 '무이자할부 금융서비스(최대 60개월)'을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김현기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언제부터 전원생활을 하셨나요?

7년 전 시흥으로 이사 왔습니다. 텃밭을 가꾸는 게 너무 즐거운데요. 이곳에서 저는 거의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어요.

대형마트에 가본 지가 어마어마하게 오래됐습니다. 주로 산딸기, 복분자, 토마토, 고추, 호박, 오이, 대파, 상추를 재배합니다.

농사는 저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일입니다. 농사 지으면서 에너지를 받고 그림의 소재도 얻습니다.

저의 반려견 ‘삐돌이’와 아이들이 지내기에도 너무 좋은 곳이죠.

숲의 왈츠, 162.2×130.3(100호), oil on canvas, 2021


Q. 작품의 소재는 어떻게 발견하시나요?

저는 매일 아침 반려견들과 산책을 하는데요. 산책을 하면서 자연에서 주로 소재이자 영감을 얻습니다.

여름이 되니까 논의 초록색 벼가 너무 예뻐서 그림에 많이 담고 있어요. 자연의 변화와 함께 내면의 변화도 그림에 녹여냅니다.


풍경을 그리지만, 사실은 외부에서 오는 갈등과 내면의 갈등, 유년의 기억들이 같이 엉켜서 그림으로 표현되는데요.

특히 과거에 시골에 살았던 기억들을 자꾸 끄집어서 현재 시점으로 표현하고 있더라고요.

현재 풍경 속에 과거의 엄마 모습도 그려 넣고, 엄마를 날아다니는 새로 형상화해 그리기도 합니다.

기다림, 60.6×60.6(20호), oil on canvas, 2018

Q. 어린 시절 회상을 다룰 때, 주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나요?

서울에서 살다 11살 때 어머니의 고향인 전라도로 이사를 갔어요.

그곳에서 5년 정도 살았는데 그때 기억이 마치 20년을 산 것처럼 강하게 남아있어요.

환경이 많이 달라졌고, 전라도 사투리도 낯설었죠. 이사를 자주 다녔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웠고 많이 외로웠어요.

할 수 있는 건 그림 그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엄마를 닮아 동생과 둘이서 그림을 자주 그렸거든요.

동생과 서로 많이 의지했는데 지금도 그림 속에 동생과 둘이 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어머니에게도 당시 고난의 시작이었죠. 처음 아버지를 떠나 살면서 어머니 혼자서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장사를 하셨습니다.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과일, 무화과 같은 것을 팔아서 3남매를 키웠습니다.

당시에 흉가 같은 무서운 집, 소문이 좋지 못한 집에서 살았어요. 그 집이 여전히 제 그림에 자꾸 나와요.


불쑥 외로웠던 '어린 나'의 모습도 많이 떠올라요. 어쩌면 그 시절 고생은 많이 했지만 저한테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어려움이 없었으면 그림을 그릴 소재가 없었을 지도 몰라요.

봄밤 아래, 60.6×60.6(20호), oil on canvas, 2018


Q. 사물이나 풍경을 아기자기하게 표현해서 마치 동화책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머니께서 그림을 동화처럼 그렸습니다. 제 기억 속 어머니는 늘 그림을 그리셨어요. 외갓집의 모습이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화폭에 풀어놓으시며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보다 훌륭한 동화책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저도 모르는 새 닮아간 것 같아요. 특히 제가 전원생활을 하면서 어린 시절 기억이 많이 나는데요.

옛 기억을 그림으로 그릴 때면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동화처럼

표현이 되는 것도 있어요. 저 또한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겠죠.

스머프의 울타리, 162.2×130.3(100호), oil on canvas, 2018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을까요.

<스머프의 울타리>라는 그림인데요. 이 그림에는 제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담겨 있어요.

제 그림에는 제가 ‘가가멜’로 칭하는 악당이 자주 등장합니다.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의 스머프를 괴롭히는 악당, '가가멜'처럼 과거에 저를 그렇게 괴롭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7년 전 제가 산동네에 살던 시절, 소위 산지기였던 사람이 저에게 심술을 많이 부렸는데요.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당시에 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월세를 얻어 살았는데, 산지기가 텃세를 부린 거죠. 집 마당에 뱀을 던져놓고,

개를 투견시키기도 했어요. 창고에 둔 제 그림을 쓰러뜨리고 물에 빠뜨려 훼손도 많이 됐죠. 정말 악당 같았어요.

제가 그 집을 떠나 농장에 자리를 잡았을 때, 저는 굉장히 큰 해방감과 자유를 느꼈습니다.

농장에 정착한 첫 해 저는 해바라기 씨앗과 접시꽃 씨앗 한 줌을 농장 둘레에 뿌렸는데, 그 해 꽃들이 엄청 잘 자랐어요. 그림처럼요.

이 곳이 마치 낙원이고, 저는 부자가 된 것 같았어요. 꽃동산이 된 농장을 맨발로 뛰어다닐 정도로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스머프의 울타리> 그림에는 그 시절 감정이 잘 드러나 있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감옥, 116.8×91.0(50호), oil on canvas, 2021


Q. 관람객과 나누고 싶은 감상이 있으신가요.


저는 사실 슬프고 우울할 때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정화하곤 합니다. 보시는 분들은 슬픔을 함께 공감해 주시기도 하고,

반대로 따뜻함과 위로를 얻는다는 감상도 들었습니다. 제 그림이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고요.

마음의 힘든 분들에게 치유가 되고 위로가 되다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장일순 선생님의 책을 읽고 ‘인생이 예술이 되게 하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삶을 소중하게 돌보고, 캔버스에서 위로와 자유를 느끼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제 삶을 예술로 풀어서 들려드리고, 예술로 풍요롭게 채워가고 싶습니다.

마이웨이, 116.8×91.0(50호), oil on canvas, 2019


인터뷰│커뮤니케이션팀 김양혜 ㄹㄹ 사진│커뮤니케이션팀 이한빈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