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아틀리에 산책] 팝 아티스트 지미 한
2020-05-18

머지않아 개발을 앞둔 은평구의 허름한 이층집.

오래된 나무 냄새, 삐거덕 거리는 마룻바닥 소리가 낯설기보다 왠지 정겹게 느껴집니다.


"여긴 제가 태어나던 해 이사 와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형제들까지 북적북적 다 같이 살던 집이었어요."


대가족의 추억이 서려있는, 반백살이 된 집에 작업실을 차리고 현대 미술인 '팝 아트'를 그리고 있는 지미 한 작가.


과거와 현재의 콜라보는 그의 작품 속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룹 퀸과 비틀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존재와 물건들이 별도의 스케치 작업 없이 커다란 붓과 마커, 스프레이가 동원돼 즉흥적으로 캔버스 위에 하나하나 새겨집니다.


형태와 글자로 빼곡한 그림과는 달리 작품 제목이 참 단순합니다.


Oldies But Goodies 1, 2, 3, 4....


그러기에 천천히 작품을 들여다보며 보물찾기 하듯 작가가 숨겨놓은 단서를 찾아 작품을 해석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합니다.

다음은 지미 한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색감이 강렬하다.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등 원색 위주인데?


- 원색을 원래 좋아했어요. 흰색 바탕보다는 바탕색이 채워져 있는 게 개인적으로 완성도가 더 있게 느껴졌어요. 아시다시피 제 그림이 참 복잡하잖아요. 많은 것이 들어가 있죠. 안이 복잡하기 때문에 바탕이 채워지면 비로소 꽉 찬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 작품 속에는 달이 들어간 그림이 많은데요. 그렇다 보니 노란색과 대비되는 검은색으로 자연스럽게 바탕에 채워지게 됐죠.


Q. 작품을 보면 왠지 록 스피릿이 느껴진다. 작품을 선호하는 관객층은?


- 남성들이 더 좋아하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여성들도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해봤는데요. 최근에 'Time to Jazz 2'라고 검은색 바탕에 달이 그려져 있고, 스누피가 들어간 작품이 몇몇 여성분들에게 공통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그래서 이런 느낌의 작품을 계속 그려가며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중이에요.

Time To Jazz 02, 90.0×72.7cm, acrylic, acrylic marker, oil pastel on canvas, 2019


Q. 관객들의 반응은 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파악하는지?


- 아내를 보여주기 보다 인스타그램에 가장 먼저 작품을 올립니다. 하하하~ 전시회가 아니더라도 SNS 댓글을 통해 관객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으니 요즘 작가들에게 인스타그램은 필수인 것 같아요.


Q. 작품마다 기타가 참 많이 등장한다. 혹시 '지미 한'이란 작가명은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에서 차용한 건지?


- 그 얘기 많이 들었어요. 지미 핸드릭스에서 따온 건 아니고요. 군대 제대해 인턴을 할 때 처음 만든 아이디가 지미(JYMMI)였어요. 흔치 않은 스펠링이잖아요. 당시 뭔가를 조합을 해서 만든 건데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 쓰다 보니 작가명도 지미 한이 된 거예요. 기타는 제가 그저 좋아하는 악기고요.

Q. 작품을 보면 한 작가만의 취향이 녹아있다. 이런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나?


- 제가 그림을 그린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요. 소재를 찾을 때 제일 먼저 2018년 개봉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모티브가 됐어요. 사람들이 다시 퀸의 음악을 듣게 되고, 당시 영상을 찾아보고 했잖아요. 추억이 공유되면서 소통이 일어나게 된 거라 보는데요. 작품을 통해서 저와 관객이 소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 더불어 작품을 본 관객들끼리 스토리텔링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옛 것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 또한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소통하면 좋을 것 같고요. 요즘은 비단 제가 몰랐던 사람이나 사실들도 인터넷을 통해 찾아가면서 작품의 소재로 발굴하고 담기도 합니다.

Q. 지난해 4월부터 전업 작가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 국민대 도자학과 졸업 후 회사에 취업해 케이블 방송사의 채널 아이디나 디자인 등을 만드는 모션 그래픽 작업을 했고, 이후 개인 화실을 운영하다 1년 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함)

-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아크릴 작품을 그리다 보니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또 바스키아 느낌의 작품이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 장 미쉘 바스키아: 미국의 낙서화가, 팝아트 계열의 천재적인 자유구상화가로 불림) 그래서 나도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한번 그려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뛰어들게 됐죠. 그러다 보니 점점 사용하는 재료도 마카나 스프레이 등이 추가되면서 팝 아트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겁니다.

Q. 지금까지 완성작은 몇 점?

- 40여 작품 됩니다. 사실은 더 많이 작업해야지요. 일 년에 한 60여 작품을 만들려고 해요. 한 작품당 제작 기간을 명확히 말하기가 어려워요. 60~70% 정도 그리다 막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다른 작품을 그리다가 막혔던 작품을 보면 그제야 방향이 보여 다시 그리는 경우가 많지요.


Q. 아트스퀘어 관객들에게 말하고픈 관전 포인트는?


- 한 고객이 머리가 굉장히 복잡하고 힘들 때 제가 드렸던 드로잉 작품이 큰 위로가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떤 그림들은 작품 안에 삶과 죽음 등이 담겨 있고 해석이 복잡한 경우가 있는데 제 그림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냥 제 작품을 보면서 재미있다, 예쁘다 그런 식으로 편안하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보이는 대로 말이죠. 사람들이 예쁜 옷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