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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처럼 비우고 채우는 소박한 인생”, 서양화가 최영욱
2016-09-05

'배가 불룩하고 하얀 것이 보름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까? 빛깔이 참 은은하고 곱다'


‘달항아리’ 그림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느새 최영욱 작가가 다가왔다.


검은 머리칼이 약간 섞인 은발에 서글서글한 인상의 작가와 마주하면서 달항아리가 연상됐다.


‘카르마(인연)’를 주제로 한 최영욱 작가 초대전이 24시간 개장하는 서울 YTN 아트스퀘어(ARTSQUARE)에서 오는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작품은 지난 2010년에 열린 미국 아트페어에서 빌 게이츠 재단이 사들여 화제가 됐다.

달항아리는 그 자체로 넉넉한 미감을 갖고 있다. 모양이 반듯하지 않고 한가운데 불룩한 부분이 어긋나 있어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불균형이 특징이다.


수화 김환기 화백도 찬탄해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켰던 달항아리는 조선 백자의 정수로 꼽힌다.


작가는 “항아리 겉에 자글자글한 잔금들은 각기 다른 것 같으면서도 이내 하나가 되어 만나는 인생길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최 작가와의 일문일답.


Q. 많은 항아리 중에 ‘달항아리’를 그리게 된 계기는?

한 10년 전쯤에는 반추상적인 느낌의 풍경을 주로 그렸다. 하지만 우연히 들른 미국과 영국의 박물관에서 누군가의 ‘달항아리’ 작품을 발견한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 항아리들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보면 볼수록 순백의 미가 느껴져 묘하게 끌렸다. 마치 그 달항아리가 “먼 데서 찾지 말고 이제 나를 한 번 그려봐”하며 말을 거는 듯 했다.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후덕한데 그 속에 사연을 품고 있는 것처럼 신비롭게 보였다. 바로 이런 점들이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고 봤다.

Q. 달항아리 표면에 있는 선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제가 일일이 선을 다 그은 것인데 우리가 만났다가 헤어지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길’을 의미한다.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지면서 유리에 균열이간 것 같은 느낌을 살렸다. 삶의 기쁨과 애환, 웃음과 울음, 그리고 그것을 결국엔 다 아우르는 어떤 기운이라고 생각한다. 일기를 쓰듯이 하루 종일 조금씩 선을 그리다 보면 대략 한 달 후에 큰 달항아리 하나가 완성된다.


Q. 작품들의 제목이 모두 ‘카르마(Karma)’인 것이 인상적이다.

사람은 자신이 의도한 곳으로만 가지 않고 정해진 운명을 따른다는 뜻이 담겼다. 업, 연(緣)의 의미 중에 ‘인연’에 더 가까운 카르마이다. 항아리 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분명 있지만 작품에 불어넣은 의도, 즉 제가 관람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이다.


Q. 만져보기 전에는 입체감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어떤 기법을 썼는가?

미술 기초재료인 젯소와 빻은 돌가루 등을 사용해 밑 작업을 한다. 이후 채색물감을 덧발라 켜켜이 쌓으면서 얼룩, 즉 세월의 흔적 같은 느낌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작은 선들을 그려나가면 달항아리가 완성된다. 자세히 보면 각 항아리 그림 마다 얼룩의 정도, 색의 농도, 항아리 크기 등이 모두 다르다.

Q. 짧은 선들로 달항아리를 채우려면 인내가 필요할 것 같은데, 힘든 점은?

다른 작업보다도 선을 그을 때 마음을 완전히 가라앉혀야 하는데 그게 안 될 때 가장 힘들었다. 제한된 크기의 항아리 밑바탕 위에 자잘한 선을 계속 그어야 하는데 기분에 따라 확 길게 그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작업을 하다 보니 비로소 손에 익어서 많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선을 이어나가는 지루하고 긴 시간이 저의 연과 업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Q. 앞으로 활동 계획은?

관람객들로부터 달항아리를 보면서 ‘편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또 강렬한 색이 있는 그림보다 질리지 않는다고 좋아하시는 분도 있다. 벽에 걸어도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런 작품인가 보다.


이러한 제 그림만의 특징을 바탕으로 해외 아트페어 등에 더 적극적으로 나아갈 계획이다. 외국인에게 우리나라 백자, 달항아리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란 말도 있지 않은가? 한국적 전통 소재지만 세계적으로 현대화하는 것이 목표다.

[YTN PLUS] 취재 공영주 기자, 사진 최재용 YTN커뮤니케이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