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흙으로 빚어내는 과거와 현대의 창”, 도예가 이지숙
2016-07-05

“우리도 저 작품 한번 보고 가요. 그런데 원래 여기서 전시회도 했었나요?”

삼삼오오 모인 직장인들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어제(4일) 개장한 ‘YTN 아트스퀘어(ARTSQUARE)’ 전시장은 24시간 문을 열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상암동 YTN뉴스퀘어 1층 로비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 매달 새로운 주제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첫 번째 초대 작가인 이지숙(46) 씨는 ‘책가도’ 다섯 점을 오는 31일까지 선보인다.

이 씨의 작품은 모두 강렬한 색채와 뚜렷한 입체감을 지녔다. 언뜻 보면 ‘민화’지만 커피 잔, 화장품, 소설책 등 현대적인 물건들이 눈에 띈다. 구운흙을 소재로 한 테라코타 기법에 서양소재인 아크릴로 색을 입히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다.

이 씨는 “전통과 창작의 조화이자, 서민들과 나의 생각이 오롯이 담긴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이지숙 작가와 일문일답이다.

Q. 첫 번째 초대 작가로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어떤 계기로 YTN에서 개인전을 열게 됐나?

YTN과의 첫 인연은 사보에서부터 시작됐다. 제 작품 ‘부귀영화’가 작년 9월 YTN 사보 표지에 실리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들었다. 작가에게 기회와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 미술관 뿐 아니라 방송국일 수도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고 감사한 일이다.

24시간 뉴스채널로 유명한 YTN이 이번 달부터 24시간 오픈하는 ‘아트스퀘어’에 처음으로 제 작품을 공개하게 돼 기쁘다. 일반 시민들이 부담 없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직장인들도 점심 식사 이후 지나가다 한번 들를 수도 있고, 퇴근 후 여유롭게 관람해도 좋을 것이다. 어제 새벽 4시까지 전시회 준비를 하며 오프닝까지 YTN에서 밤을 샜지만, 피로감 보다는 다소 들뜬 마음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매만졌다.

Q. 전시된 작품들이 모두 강렬한 인상을 준다.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

이번 전시회의 주제이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일상’과 ‘소통’이다. 민화 등 전통미술 분야를 어렵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많은 분들이 함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재탄생 시켰다. 우리 민화의 정신을 받아들이면서 현대적인 느낌으로 해석 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제가 모란이나 화초 등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면, 주변에서 ‘도식적’이란 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민화란 밑그림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가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대미술 작가들이 이제는 ‘창조’란 개념을 새롭게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전통적인 ‘책가도’ 속에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물건을 배치한 이유는?

‘책가도’란 원래 남성들만의 공간에 걸렸던 조선 후기 그림이다. 단어 그대로 서가에 있는 책이나 화분, 필통, 붓, 공예품 등을 배열한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책가도에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불어 넣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작업을 할 당시에 제게 주어진 상황이나 감정 등을 현대적인 요소들로 재창출 하고자 했다. 작가의 소통방식으로 봐 주길 바란다.

예를 들면 이번 전시회의 주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부귀영화’에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책 ‘불멸’이 들어있다. 당시에 제가 가졌던 삶에 대한 궁금증과 이에 대한 해답이 투영됐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한편으론 대중적이라고 생각한다.

Q. 민화 작가로서는 특이한 기법을 사용한 것 같다.

그렇다. 의도치 않게 새롭게 만들어진 기법으로, 완성되기까지 섬세한 과정을 갖는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까지 평균 한 달 정도 걸렸다. 테라코타 위에 점토를 구워 부조를 만들고 그 위에 채색을 하면서 다양한 기법으로 입체감을 조절한다.

오래 전, 작업을 할 때 작품을 흙으로 만들어서 구운 후 채색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모두 터져 파편으로 나온 적이 있다. 마감 시간에 맞추다 보니 그냥 급하게 접착제를 이용해 개별적으로 이어 붙여 마무리 지었는데, 그때 우연히 터득하게 된 기법이다.

일반적으로는 가마의 크기에 따라 작품 규모가 결정되는데 제 작품은 하나하나 따로 가마에서 구워져 나와 나중에 합치는 방식이다. 따라서 작품의 크기가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Q. 밤을 샜는데도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체력 관리법이 따로 있는가?

체력도 중요하지만 예술가로서는 마인드컨트롤을 잘 하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지난해 말, 위암 수술을 받았다. 조기 발견해 지금은 완쾌했지만 확실히 수술 전후로 체력적인 차이가 느껴진다. 사람들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위암 판정을 받고 놀라진 않았는지 묻지만, 저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 같아 오히려 평온했다.

특히 예술가들은 수직적인 상승을 위해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저 역시 그랬다. 하지만 위절제술 후 병원을 나서면서 부터는 보다 수평적인 마음자세를 갖고 작품을 만들게 됐다. 평정심의 중요성을 몸소 깨달았다.

수술 이후 3개월 정도 쉬고 다시 각종 전시 준비에 전념했다. 체력 고갈을 느끼는 것은 예전보다 빠를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더 안정된 것 같다.

Q. 자신을 ‘회사원 예술가’로 표현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흔히 ‘예술가’라고 하면 시간이나 일정을 뛰어 넘어 이른바 ‘필(Feel)’ 받을 때 작업에 몰입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상상한다. 하지만 제 작업은 대체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이루어진다. 즉, 규칙적인 시간에 작업실에 나가 계획된 시간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예술가라고 해서 느낌이나 컨디션이 좋아야만 작업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 녹아든 감성이나 느낌을 작품에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해야 오히려 다양한 작품과 주제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Q. 앞으로 활동 계획은?

‘일상 속 작가’가 되고 싶다. 관객들과 작품을 통해 소통하는 공감 능력을 갖춘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또 작품 속에 그런 정신이 투영될 수 있도록 전력투구 하고 있다. 제 작품 속에서 사람들이 "어? 저건 내가 어제 마신 음료수인데?" 혹은 "내가 읽고 싶어 하던 책이 저기 있네" 하는 감정 이입으로 흥미를 느끼게 하고, 또 그러한 맥락에서 작가와 관람객들이 일상의 즐거움을 찾길 바란다.

▶ 이지숙 작가
-서울대 미대 공예과 도예전공 및 동대학원 공예과 도예전공
-2016 ‘개관10주년 기념전І’ 건축도자- Earth,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김해
-2015 찬란한 일상에 대하여- 이지숙전,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부귀영화- 이지숙전, 영은미술관, 광주(경기도) 외 다수 개인전 및 단체전 개최

[YTN PLUS] 취재 공영주 기자, 사진 최재용 YTN커뮤니케이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