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M스토리] “보도 해봤자 변화가 없다고요?” - 영화 ‘그녀가 말했다’ 리뷰
2023-01-04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보도 해봤자 변화가 없다고요?”


영화 그녀가 말했다(She Said)│2022

감독 : 마리아 슈라더, 주연 : 캐리 멀리건, 조 카잔

▲ 영화 '그녀가 말했다' 포스터


저널리즘을 다룬 영화 가운데 이 작품은 독특한 점이 있다. 두 기자의 아이들이 긴박한 상황에 매번 등장한다는 점. 영화를 좀 보다 보니 자주 아이를 등장시키는 이유가 짐작되었다. 사실 이 영화의 서사 얼개는 매우 간단하다. 간단하다 못해 평범해 보인다. 사실 평범함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평범함이 세상을 다르게 한다.


영화의 주 내용은 성범죄를 자행해온 거물 영화 제작자에게 피해당한 사례자들을 취재해서 세상에 알리는 과정이다. 이 때문에 어려움도 당연히 예상된다. 거의 모두 취재기자들에게 비협조였다. 피해자들은 상처를 떠올리는 거조차 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들은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범죄 혐의자는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온갖 협박과 위협을 일삼는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쉽지 않은 과정 그 장애를 이겨내고 특종을 할 것이다.


▲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컷


실제 사실에 바탕을 뒀기 때문에 그 결과도 우리는 알고 있다. 전 세계에 걸쳐 미투 운동을 촉발한 보도였기 때문이다. 퓰리처상도 받았다. 기네스 팰트로부터 앤젤리나 졸리, 레아 세이두, 카라 델레바인까지 피해자였고, 애슐리 쥬드는 이 영화에 직접 출연도 했다. 애슐리 쥬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도록 허락하는 장면은 짜릿한 고통을 주었다. 거물 영화 제작자는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으로 그는 법정에서 2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주인공들은 불타는 저널리즘으로 무장한 기자들도 아니었다. 특출난 열혈 특종 기자 캐릭터를 확인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자괴감과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현실은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다. 메건 투히 기자(캐리 멀리건 분)는 이미 권력자의 성범죄를 보도한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 방향을 잃었다. 자신의 보도에도 거물 정치인은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얼핏 육성 등이 실제로 등장하지만, 바로 도널드 트럼프였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는 게 없다, 보도 기사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회의적인 상태가 되었다. 때마침 임신으로 휴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도피였을까? 하지만 그곳은 도피처가 될 수 없었고 또 다른 분투 현장이었다. 회의주의에 빠진 휴직 기자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후배 기자 조디 캔터(조 카잔 분).


▲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컷


조디 캔터의 호소에도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이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고소를 당할 경우, <뉴욕타임스>가 보호해 주길 바랐지만, 조디 캔터 기자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기자의 그 말을 듣는 순간 피해자들은 숨어 버렸다. 이렇게 해서는 도대체 취재할 수가 없었다. 이때 조디 캔터는 도널드 트럼프의 성범죄를 먼저 보도한 메건 투히 기자를 떠올렸을 법하다. ‘도대체 그 선배는 어떻게 취재한 거야?.’ 메건 투히 기자에게 조디 캔터 기자가 전화를 걸었을 때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정신이 없을 때다. 도대체 트럼프에게 당한 사람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데 응한 거냐고, 기사를 쓰자고 어떻게 설득한 거냐고. 절박하게 묻는 후배에게 선배는 무심히 말한다. “변할 수 있다고 설득해야지.” 정작 이 말을 뱉고 난 선배 기자는 홀연히 육아 휴직을 그친다. 다시 신문 기자로 복직한다. 산후 우울증에 빠져 있던 그가 무기력에서 탈출했다. 왜 그는 취재 보도에 회의적인데 기자로 돌아올 생각을 했을까? ‘보도해서 뭐 하나?’ 라고 했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후배 기자가 자신을 찾고 있었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컷


하지만, 둘 사이에는 벽이 있었다. 사안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차이일 수 있었다. “이미 유명한 배우들을 큰 스피커를 갖고 있는데 진짜 약자가 아니잖아?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야 해.” “그들은 유명하기 때문에 쉽게 나설 수 없어. 그렇게 유명한 이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이들은 더 나설 수가 없게 돼.” 선배의 말에 받아친 후배의 말은 귀에 담을 만했고, 주효했다. 유명인들이 나서면 화제가 될 것이고, 그럴 때 가해자의 위협이 덜할 수 있으니 다른 스텝 피해자들도 나설 수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었다. 더구나 애슐리 쥬드처럼 유명 배우가 협조한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유명하다고 배제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된다. 두 사람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확장 시켜 가면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하나하나 모아가기 시작한다. 다른 특종을 하는 기자들 이야기를 다룬 작품과 다른 점은 충분하다. 이전 영화에서 등장하는 술집 장면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컷


두 사람은 모두 아이 엄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집에 있을 때면 중요한 번화가 꼭 아이를 돌보고 있을 때 온다. 온종일 육아에 지쳐 잠깐 졸고 있는 틈에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육아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취재를 계속 이어간다. 아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여성이 어쨌든 육아를 도맡고 있다는 점, 기자들 역시 생활인이라는 점을 드러내 준다. 정의의 실현에 불타는 독불장군이 아니라 감정을 지닌 가해자의 협박을 우려하는 소시민이기도 했다. 피해자의 남편이 화를 낼 때는 뒷걸음질 쳐야 해야 했다. 그들의 상황은 불안하다. 가해자는 권력자이고, 어떤 짓을 할지 알 수가 없다. 기자는 자신의 직장과 집이 노출되어 있다. 아이들이 잘못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뒤따라오는 승용차도 의심스럽다. 두 사람은 말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 취재를 하는 거지.”


▲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컷


영화의 상당 부분은 피해자를 찾아 취재하고 조율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부분은 가해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반론권을 보장하는 과정이다. 특종 보도 영화들을 사실관계 추적과 취재원의 확보 그리고 편집국을 중심으로 의사 결정자들의 갈등을 다루는 내용과 확연히 다르다. 부당하게 보도를 막는 내부 의사결정자는 없다. 흔히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정치권의 외압 따위는 기미도 없다. 기자들을 괴롭히는 공방 속에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이어진다. 와인스타인이 자신의 범법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피해자들과 합의 서명을 한 사실을 들어 보도를 무력화하려 한다. 더구나 당대 최고의 변호사들을 통해 두 취재기자를 대상으로 법리적 다툼을 벌이고 끝까지 피해자들을 오히려 괴물로 만들었다. 기사가 나오기도 전에 이 모든 과정을 다 조율해야 했다. 와인스타인은 보도 기사의 마지막에 들어갈 입장문 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컷


영화는 마침내 기사 송고를 끝으로 자막이 덧붙여진다. 보도 이후 82명이 소송을 냈고 미투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특히 기업의 직장 문화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얼마나 많이 그리고 실제로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중요한 점은 두 취재기자가 그런 변화까지도 예측하거나 목표로 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 큰 변화를 목표로 했다면 무력감과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을 법하다. 그들은 강자와 약자 가운데 강자에 맞서 약자를 대변해야 하는 기자의 본분을 언급하지 않아도 피해자와 가해자 가운데 적어도 피해자의 이야기를 보도에 담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극 중 영화사 재무 담당관의 말처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 그의 옛날 것만 다루는 거예요? 최근의 것들도 많은데….” 즉, 많은 피해자가 침묵 속에서 계속 생겨날 것이다.

▲ 영화 '그녀가 말했다'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