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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산책] 동물의 얼굴로 비춰낸 현대인의 자화상
2022-05-09

송 영 학 (Song Younghak)/1984년생


-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동 대학원 미술학과 석사졸업

- 무형 문화재 21호 탱화장 문화재전수장학생 수료

한국화 동질성회복회, 우리민족 문화예술연구소 회원

- 광주교육대학교 출강,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출강

- 개인전, 단체전 다수 참여

▲ 위대한 탄생 12, 72.9cm * 91.0cm (30호), 실크양단 위에 수간채색, 2022​


나의 작업은 대상에 대한 관심, 즉 일상의 삶 속에서 여러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내면정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의인화된 동물들을 모티브로 표현한 작업에는 나 자신의 삶, 그리고 내적인 심리상태까지 고스란히 담아보려 하였다. 특히 동양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12지 방위신(方位神)의 형상을 차용해 인물로 의인화함으로써 해학적인 효과와 정서적 교감에 따른 작품의 이해도를 높이려고 노력하였다. - 작가 노트 중 -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60.6cm * 130.0cm, 광목에 수간채색, 2021 -


경운기를 모는 소, 신발 신은 부엉이, 익살스러운 호랑이 등 의인화된 동물들이 모였다.


YTN 아트스퀘어에 송영학 작가의 초대전이 열렸다.


송영학 작가는 탱화를 그리는 문화재 전수생으로서, 그의 할아버지 송복동, 아버지 송광무(광주시 무형문화재 제21호 탱화장)장인은 무형문화재로 알려져 있다.

‘가업’을 잇고자 오랫동안 익힌 불화의 전통적인 기법을 토대로 작가는 독창적인 채색화를 그려냈다. 한복 천 위에 그림을 그려 양단의 전통 문양과 조화를 살리기도 하고, 금가루나 석회가루 등 재료로 색다른 질감을 표현한다.


10년 가까이 동물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송 작가는 동물의 얼굴로 현대인들의 내면 정서를 비춰낸다.

어수룩한 호랑이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거나, 사슴의 고독한 눈망울은 어딘가 애잔함을 일으킨다.


동물들의 눈망울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따듯한 교감을 느껴보길 바란다.


▲ YTN 아트스퀘어 송영학 초대전 (5.1~5.31)


송영학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갤러리 홈페이지(https://ecorockgallery.com/author/view.htm?idx=1132)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에코캐피탈의 '무이자할부 금융서비스(최대 60개월)'을 통해 소장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송영학 작가와의 일문일답

- YTN과 인터뷰하는 송영학 작가 -


Q. 할아버지(송복동), 아버지(송광무)가 탱화를 그리는 무형 문화재이시다. 유년 시절부터 가족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이 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를 하셨고, 기도를 마치면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나도 할아버지 옆에 앉아 그림을 따라 그리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내 그림을 자연스럽게 봐주셨다.


중학생 때부터는 아버지가 탱화를 그리는 현장에 가서 작업을 돕기도 했는데, 아버지는 전국 사찰을 다니시며, 단청과 탱화 작업을 하셨기 때문에 자라면서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사춘기 때는 그런 아버지에게 서운함이 많이 쌓였다.


내가 가정을 꾸린다면, 자식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평범한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며 당시 공고에 진학했지만,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도장 공장으로 취업 체험을 하러 갔는데, 철저히 기계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일을 하며 문득 깨닫게 됐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나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고, 고3이 돼서야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뒤늦게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위대한 탄생 11, 72.9cm * 101.0cm (40호), 실크양단 위에 수간채색, 2022


Q. '십이간지'를 주제로 동물을 오랫동안 그려왔다. 동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은가.


9년 전부터 동물을 그려왔는데, 특히 당해 연도의 십이간지 동물을 주제로 매년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동물과 가까이한 건, 어린 시절에 시골에 살면서 개나 닭, 돼지 등 가축들을 많이 길렀기 때문에 동물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 영상과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다.


동물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처음 동물을 그린 건 웃픈(웃기면서 슬픈) 사연이 있다. 뒤늦게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실력이 부족한 채로 대학에 왔지만, 나의 집안 내력을 알고 있는 학우들과 교수님들은 내게 기대를 많이 했다. 나는 부족한 실력이 드러날까 봐 부담을 많이 느꼈다. 한 번은 인물화 수업 시간이었는데, 인물을 그리는 게 어려워서 그때 사람과 가장 닮은 원숭이를 그렸다. 동물은 털이나 표정 등 묘사할 수 있는 특징이 많아서 그림 그리기가 훨씬 수월했다. 동물을 그리면서 오히려 그림에 자신감을 찾아갔고, 재미를 느껴서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오게 됐다.


동물을 자세히 관찰하면 표정이 굉장히 풍부하다. 동물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고자 한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느라 본연의 나를 잃은 듯한 상실감,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 등을 담고 있다. 또한 스스로 깨달은 통찰, 감동, 즐거움 등 감정도 충분히 느끼며 표현한다. 작품은 내게 본연의 나를 찾아가는 그림 일기라고 생각한다. 보시는 분들도 이러한 감정들에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농부같은 근성이여 솟아라!, 130.0cm * 163.0cm (100호), 한지에 수간채색, 2014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작품에 담긴 스토리나 상상이 궁금하다.


<농부같은 근성이여 솟아라!> 그림은 십이간지를 주제로 그린 시리즈 중 맨 처음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성세대와 지금 젊은 세대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기성세대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열심히 일하기만 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을 많이 하지 않나. 그래서 젊은 세대가 꼼수를 부린다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들을 상징적으로 표현을 했다. ‘소’는 우리 아버지 기성세대들이고, 십이지간의 일화처럼 소 머리 위에 올라탄 '쥐'나, 행글라이더를 타고 몰래 내려온 '쥐'의 모습으로 젊은 세대를 표현했다. 십이지간 이야기나 동물의 상징성을 활용해 현재의 나의 모습을 잘 나타낸 것 같기도 해서,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또한 올해 흑호해에 완성한 <위대한 탄생>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올해 태어난 호랑이띠, 둘째 딸을 생각하며 그렸다. 민화에서 보이는 호랑이 이미지와 십장생의 상징을 담아 그렸다. 민화에서 호랑이는 용맹한 모습이나 무서운 모습이 아닌 우스꽝스럽고 해학적인 이미지로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호랑이 이미지에 초보 아빠로 어수룩한 내 모습을 투영했다. 거북(장수를 상징), 소나무(의지), 사슴(착함) 등의 십장생을 그려 넣어 아이에게 바라는 염원을 담은 작품이다.

▲ 위대한 탄생 5, 45.0cm * 54.0cm 실크양단위에 수간채색, 금박기법(금-순도 99.9%), 2022


Q. 문화재 전수생으로서, 불화 작업도 하면서 한국화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나.


불화는 한국의 전통과 불교 교리를 담는 그림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형식과 기법들이 있다. 어렸을 때, 불화를 그리면서 아버지한테 혼도 많이 났는데 지금도 무의식중에 불화는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있다. 개인적으로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고, 반복되는 작업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벽이 너무 높아, 불화를 그릴수록 나의 한계가 자꾸만 보였다. 다른 영역으로 아버지의 업적을 넘어 봐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국화는 내게 탈출구가 됐다. 나의 영감과 상상을 마음껏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채울 수 있었고,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연구하며 에너지를 얻게 됐다. 또한 불교 미술의 전통 기법을 새롭게 적용해 보면서 작업하는 데 서로 시너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 사찰에서 탱화 작업하는 송영학 작가 -


Q. 불교 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화법들을 소개한다면?


불교 미술의 기법들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불화에 많이 쓰이는 화법인 금니화에서 영감을 받아 금가루를 현대 미술 소재와 결합해 작업하거나, 물감을 켜켜이 쌓아서 오목하게 만드는 돋음 채색, 석회 성분의 호분을 여러 번 쌓아 양감과 입체감을 주는 등 다양한 연출을 시도했다.


대상을 세밀하게 그리는 것도 불화의 영향이다. 면상필이라는 세필을 활용해 동물의 털이나 디테일한 특징을 세밀하게 작업한다. 작업에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나'라는 주체는 나의 경험과 기억, 감정들이 쌓여서 형성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처럼 동물의 털을 한 올 한 올 그려내고 켜켜이 쌓으며 작품에도 혼을 불어 넣을 때,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형태가 된다고 생각한다. 묘사하는 대상에 정성을 들여야 나 자신의 만족감도 높아진다.


팔랑귀 선비, 65.0cm * 105.0cm (40호), 양단에 수간채색, 2018


Q. 한복의 양단 위에 그림을 그려 독창적인 느낌을 냈다. 어떻게 시도하게 됐나.


아트 페어 전시에서는, 장르 구분 없이 여러 작품이 같이 전시된다. 서양화와 함께 전시됐을 때, 내 작품이 서양화의 화려한 발색에 묻히는 것 같아 작가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그때부터 한국화의 발색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일단 먼저 그림을 그리는 바탕 면인 ‘화지’의 재료를 고민했다. 처음 시도한 것이 천인데, 천 바탕에 아크릴을 칠하고 위에 분채로 채색했을 때, 분채 발색이 훨씬 살아나는 효과를 얻었다. 그러다 한복 천을 우연히 접했다. 한복 천은 색감도 다채롭고, 천 위에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어, 이를 그대로 살리면 좋을 것 같았다. 양단 위에 그림을 그려 색다른 조화와 한국적인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었다.


▲ 익숙함의 모순, 90.0cm * 140.0cm (80호), 실크양단 위에 수간채색, 2022


Q.앞으로 꿈이 있다면?


인간문화재가 되어 가업을 잇고자 하는 꿈과 개인 작가로서의 꿈이 공존한다. 한국화 작품을 하는 것에 대해서 지금은 아버지가 응원을 많이 해주시지만, 예전에는 사실 반대를 많이 했다. 불화를 하든지, 한국화를 하든지 하나를 택해라, 둘 다 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셔서, 아버지와 갈등도 많았고, 아버지를 피해 다니기도 했다.


평생을 공들여 문화재가 되신 아버지를 보며, 문화재가 되는 길이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불교 교리에 관한 공부와, 미술 작업에도 갈고닦아야 할 것들이 정말 많다. 그렇지만 꿈을 잃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두 가지를 모두 성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화와 한국화의 두 작업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꾸준히, 오랫동안 작업하고 싶다.


▲ 주루륵 흘러내리다, 190cm * 122cm, 광목에 수간채색, 2017



인터뷰│커뮤니케이션팀 김양혜 ㄹㄹ 사진│커뮤니케이션팀 이한빈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