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M 스토리] 주전장 vs. 애나벨 집으로
2019-08-05

<주전장>에서 <애나벨 집으로>까지그 주요 쟁점에 대하여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가 만든 다큐멘터리 <주전장,主戰場>은 어쩜 그렇게 요즘같은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적기(適期)에 개봉돼, 시사하는 바를 크게 만든다. 우리가 일본과 새로운 전쟁을 벌여야 한다면 일종의 정신 무장이 필요하고, 적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두 가지가 다 된다.


일본 우파들, 꼭 극우파가 아니어도, 이들이 얼마나 극악한 역사 의식을 지니고 있고 또 그로 말미암아 다시금 동북아 평화에 가장 위험한 인간 쓰레기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 <주전장>은 주요 전장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요 쟁점이라는 뜻이다. 미키 데자키가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살펴 보다가 일본 우파들이 내세우는 주요 쟁점(예컨대 일본군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따위의 주장)을 들고 그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벌인 내용이다.


어쨌든 난 이 영화를 조금 일찍 보게 됐는데(7월초에 했던 <2019 레지스탕스 영화제> 주요 상영작이기도 했다.) 영화사에서 보내준 비메오 링크를 이용해 PC로 영화를 보면서 두 번인가 세 번인가를 중간에 끄고 말았다. 도저히 화가 나고 분통이 터져서 영화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라라고 한들, 오즈 야스지로와 오시마 나기사의 나라라 한들, 이마무라 쇼헤이의 삶과 영화가 존재했던 나라였다 한들, 이제 더 이상 일본이라는 나라를 가까이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영화 속에 나오는 스키타 미호(자유민주당 국회의원)나 카세 히데야키(일본의원연맹 도쿄 본부장)는 이름을 꼭 기억해 놨다가 언젠가 만나면 일부러 만나서라도 치도곤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람들이 바뀌어야 하고(인간 개조), 사람이 바뀌려면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데(사상 개조) 일본 우파들을 그렇게 변모시키기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들은 툭하면 다시 기어 나와 준동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아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바쿠닌주의자라도 돼야 하는 것일까. 그들 마냥 폭탄을 안고 뛰어 들어야 하는 것일까. 영화는 이런 때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가.

공포영화 <애나벨 집으로>는 "순전히 <주전장>을 보면서 느꼈던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 본 것이다"라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말레이지아계 미국인인 제임스 완이 프로듀서를 맡았다고 해서 본 영화다. 제임스 완은 <쏘우>시리즈, <애나벨>시리즈, <컨저링> 시리즈의 연출·각본·제작을 오가며 할리우드 B급 공포의 새로운 장을 쓰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영화는 무섭고 재밌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는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이번 영화는 퇴마사 워렌 부부가 결계(結界, 일종의 방어막)를 통해 가둬 놓은 애나벨의 악령이 부부의 딸 주디와 베이비시터와 그의 친구 탓에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그래 봐야 집안이지만) 벌어지는 공포를 그린다. 공포라기 보다는 공포 이벤트에 가까운 영화다. 그러니 별반 무서울 이유가 없다.


지금 일본 아베에게 나라를 뺏기느니 마느니 하는 때이고, 일본 극우 언론이 한국의 대통령을 하야시킨다느니 바꾼다느니 망언을 하는 시국인데 무엇이 더 공포스러운 일이겠는가. 차라리 애나벨의 악령이 일본 우익들을 싸그리 잡아 먹어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들 정도로 친근하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도 <애나벨 집으로>를 이용해 담을 키워 두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진짜 무서운 싸움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역사는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일이다. 적폐들을 쌓아 놓으면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다시 도돌이표로 반복되는 것이다. 지금 세상의 공포는 어쩌면 순전히 친일청산을 올바로 해 내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주전장><애나벨 집으로>. 같이 보기에 안 어울리는 듯 사실은 아주 어울리는 한 쌍의 영화이다. 어려운 세상에 영화들이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유약한 영화평론가의 소박한 바람일 뿐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