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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토리] 영화 '라우더 댄 밤즈'
2019-09-19

기자의 삶, 그 불행한 송가(頌歌)를 위하여

 ‘위대한’이란 수식어까지 붙지는 않더라도 꽤 괜찮은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가족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아내나 남편에게는 자신의 부재(不在)가 일상화돼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부모로서의 양육을 기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 모두 스스로 커 나가는 것을 터득하게 해야 한다. 유명 기자일수록 주변의 희생이 담보돼야 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유럽 어디나 다 같은 얘기다. 기자는 바쁘고 더 큰 대의(스스로 ‘사회정의’라 부르는 것)를 위해 가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퓰리처상이든, 한국기자상이든 그런 영광을 차지하는 기자 본인이야 좋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러기까지 주변 사람들은 그만큼 ‘잃은 게 많다는 것’을, ‘상실의 폭이 크다는 것’을, 그 엄연한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인생을 고민하는 자, 혹은 그 깊이를 알려고 노력하는 자야 말로 진정한 기자가 되는 것인 바 기이하게도 언론사는 세계 그 어느 곳이든 특종만을 가르치거나 강요하기 일쑤다. 기자의 인성이 잘못되고, 그럼으로써 기자 스스로 후회하는 인생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프랑스의 현존하는, 최고의 여배우로 꼽히는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 <라우더 댄 밤즈, Louder than Bombs>는 기자의 존재가 얼마나 양면적인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이 영화의 기본 주조는 이사벨이란 이름을 가진 한 종군 여기자의 삶을 추적하는 얘기다. 그녀는 3년 전에 죽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3주기 출판기념회를 준비하면서 원하지 않음에도, 불행하게도, 그녀의 숨겨진 비밀들을 알게 된다.

종군기자였던 만큼 여자는 전쟁터에서 죽었을까. 그녀는 중동 지역 전문 프리랜서 기자였다. 하지만 그런 예상과 달리 그녀의 죽음은 교통사고 때문이었는데 남겨진 남편과 아들 둘은 진작부터 그녀가 자살을 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런데 그게 그들에게는 엄청난 상처다. 아내와 엄마의 사회적 삶, 공인으로서의 삶을 위해 자신들이 그토록 이해하고 희생했는데 그녀가 왜 그런 길을 택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과 같은 직업의 또 다른 프리랜서 기자와 혼외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는 것이 드러난다. 남은 사람들은 심각한 배신감으로 삶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사벨의 진짜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기자는 어쩌면 선을 위해 악의 축에 더 가깝게 다가서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생(生)보다는 죽음을 더 가까이하며 웃음보다는 울음을, 희극보다는 비극을, 빛보다는 어둠을 더 가까이하며 살아간다. 이사벨 역시 종군기자로서 매일매일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이 삶의 어두운 면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이 죽고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인종학살과 가족 간 명예 살인이 횡행하는 것을 눈앞에서 어쩌지 못한다. 그저 기록만 해낼 뿐이다.

 이사벨 역시 죽음의 순간을 수차례 겪곤 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은 어쩌면 그렇게 부상을 당해야 하는 경우에 불과하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할 거야, 하면서도 몸이 다 나으면 또 현장을 향해 짐을 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쳐서든 그렇지 않아서든 그녀가 행복한 공간인 가정으로 돌아온다 한들, 이미 상처받은 영혼은 안식을 찾지 못한다. 죽음을 곁에 두며 살았던 사람은 결국 죽음으로의 길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도통 행복해지지가 않는다. 이사벨이 다른 남자를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상대 역시 자기와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죽음을 많이 본 사람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건 바람이 아니다. 자신의 공허한 내면을 조금이라도 이해받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한 일일 수 있다.


 ‘폭탄음보다 더 시끄러운’이란 뜻의 영화 <라우더 댄 밤즈>는 기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외면의 화려함 혹은 요란스러움보다 내면의 치열한 고통과 고민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 인생이 결코 평탄치 않은 것임을 새삼 목도하게 만든다. 요즘엔 기자가 되는 것이, 고액 연봉과 정해진 시간 내에서의 얄팍한 근무 조건, 사회적 신분 상승과의 교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라우더 댄 밤즈>는 반대로 그 내적인 측면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저널리스트들이라면 곰곰이 사유(思惟) 하게 할 무엇을 제공하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기자로서 당신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또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세상의 평화와 정의는 어떤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가. <라우더 댄 밤즈>는 작은 (예산의) 영화이다. 그러나 동시에 큰 질문을 던지는 (작가) 영화이기도 하다. 그 소리가 폭탄보다 더 큰 작품이다. 그 소리가 들리면 당신은 비교적 기자 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2019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 2019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