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M 스토리] 세상은, 기자를 바꾼다!
2019-11-20

세상은, 기자를 바꾼다! - 영화 <살바도르>(1986) 

 장훈 감독의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독일 방송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는 특파원으로 도쿄에 있으면서 심드렁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어느 날 밤 동료 기자들과 바(bar)에서 한잔하던 그는 불쑥 이렇게 얘기한다. “광주에 가야겠어.” 그가 광주를 가려고 했던 이유는 역사적이거나 시대적인 사명감 ‘따위’가 아니었다. 순전히 저널리스트들이 갖는 특유의 지루함이다. 그리고 ‘한 건’을 터뜨려야 한다는 매명 의식 같은 것? 기자들은 지루하면 못 산다. 일상이 망가진다. 술을 많이 마시고 흥청망청 지내기 일쑤다. 그런데다가 돈은 궁하다. 그러니 이 사람 저 사람 괴롭히며 사고를 치기 쉽다. 기자들은 취재를 할 때가 아니면 사람 구실을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기자들은 삶과 인간의 이면을 보게 되는 사람들이다. 진실과 거짓, 순수와 위선, 선과 악을 동시에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만났지만 알고 보면 형편없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기자들은(만)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편의에 맞춰 그를 똑같이 좋은 사람이라 기록하게 된다. ‘삶의 이면을 많이 보게 되는 자 혹은 거짓과 위선과 악마를 자주 접하는 자=기자’는 정상적이기가 쉽지 않다.

 

 올리버 스톤이 1986년에 만든 역작 <살바도르>는 기자의 그러한 측면을 드라마틱 하게 표현한 작품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영화로 꼽힌다. 주인공 리처드(제임스 우즈)는 현재 망나니 중에서도 상 망나니로 살아가는 중이다. 베테랑 사진기자인 그는 얼마 전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종군기자가 전문인 셈인데 리처드 역시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순전히 돈을 많이 주기 때문에 위험 지역을 다닌다. 생명 수당이 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살육을 봤다. 정치의 부패와 인간 이기(利己)와 탐욕, 폭력의 극한을 봤다. 그래서 영혼에 상처를 입었다. 그렇게 정신이 다친 자는 사는 게 불편하다. 그는 매일 술을 마시고 이 여자 저 여자의 품을 전전하며 산다. 그러다 당연히, 돈이 떨어진다. 이제 돈을 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럴 때 엘살바도르가 제 격이다. 웬만한 사진 한 장만 건져 오면 또 몇 달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아니 몇 달을 더, 술을 마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위치한 당시의 엘살바도르는 미국의 군사 경제 원조를 받는 독재 정부에 의해 인권이 철저하게 탄압받던 시기였다. 군사 정부는 1979년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암살한 이후 그 악랄함이 더욱더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이에 따라 반정부 게릴라들의 활동도 확대됐다. 나라는 거의 내전 수준으로 치달았다.  

 

 주인공 리처드가 엘살바도르에 들어간 것은 바로 이 즈음이다. 그는 군부가 자행하는 무차별 학살과 고문의 현장을 담는다. 이른바 중남미의 좌파 공산 벨트를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이 저지르는 인권 유린의 참상을 기록한다. (니카라과는 오르테가가 이끄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에 의해 미국이 지원했던 소모사 정권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쿠바의 카스트로는 미국의 ‘코밑’에서 강고한 사회주의 정부를 유지하고 있던 때이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부로서는 엘살바도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 지역이었다.)

 

 영화는 술이나 퍼마시고 여자 뒤꽁무니나 찾아 헤매며 살던 주인공이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 가는 과정을 그린다. ‘사람=기자’는, 종종 거대 담론의 구체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정치와 인권에 눈을 뜨게 되면서 자신의 선한 본능을 다시 일깨우게 된다. 자신의 착한 심성을 다시 찾게 되면서 세상의 진실 앞에 용감하게 마주하게 된다. 세상은 기자를 변하게 하고 기자는 세상을 변하게 한다. 변증법이다. 영화 <살바도르>가 얘기하는 대목이다.

 

 요즘 국내 정치 현안을 두고 기자들의 행태에 대해 말이 많다. 홍콩 정부의 극악한 시위 탄압 상황을 목격하면서(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적어도 30년간은 자신의 삶이 불안하고 불편해질 것이다. 우리의 광주항쟁의 가해자들처럼.) 오늘날의 기자들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많아지고 있다. 그 답이 잘 안 나오는가. 영화 한 편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살바도르>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새 영화인 양, 이 영화 <살바도르>를 VOD에서 찾아 한번 시청하시기를 권하는 바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2019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 2019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