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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토리] 영화 '더 컴퍼니 유 킵'
2020-01-02

영화 ‘더 컴퍼니 유 킵’ (제작·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 주연: 로버트 레드포드, 샤이아 라보프)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은 기자의 공명심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놈의 진실 찾기. 대중들의 알 권리. 쯧쯧. 늘 명분으로 내세우는 그것. 그보다는 특종 욕심이면서. 올버니 선 타임즈의 정치부 기자 벤 쉐퍼드(샤이아 라보프)도 30년 전 미시간에서 벌어진 은행강도의 진범을 자신이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그가 진범을 찾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진범이 꼭 진범만은 아니다.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꼭 진실만이 아닌 것처럼. 진실이 여러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벤 쉐퍼드와 같은 정치부 기자나 사회부 기자는 잘 믿지 않는다. 아니 믿으려고 하지 않거나. 아니 아니, 애초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지 않거나.


벤의 정보를 통제하려는 FBI 요원 코넬리어스(테렌스 하워드)도 그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무조건 우리가 정의야! (네가 아니라! 언론 따위가 아니라!)” 한때 벤의 대학 여자친구였다가 신참 FBI요원이 된 다이아나(안나 켄드릭) 역시 벤이 취재랍시고 여기저기 날뛰고 다니는 것이 꼴사납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그가 그냥 자신들이 주는 정보를 ‘받아먹기나’ 하라며 쏘아붙인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검찰이나 FBI나, 올버니 선 타임즈나 한국의 언론들이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얘기가 많이 돌아갔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영화 '더 컴퍼니 유 킵'에 나오는 일부의 장면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에 있어서 극히 지엽말단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검찰이든 한국 언론이든, 그 누구든 이 영화의 신문기자-수사 권력기관 간 모습에 그다지 신경 쓸 거 없다. 우리 얘기가 아니라고 치부하면 그뿐이다.


영화 '더 컴퍼니 유 킵'은 기자가 주인공의 한 축이지만 꼭 저널 얘기는 아니다. 그래도 과거의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기자 얘기가 나온다는 점에서 저널리스트용 작품이기는 하다. 주인공 격인 벤 쉐퍼드도 허구한 날 편집국장한테 시달린다. 국장인 레이(스탠리 투지)도 맨날 이렇게 얘기한다. “새로운 걸 좀 가져오라고.” “이거 봐. 이거 물먹은 거 아냐?” 한국의 기자들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특종 좀 해 와!” 기자들 모두 그놈의 특종 강박증에 시달리며 산다. 심지어 연예부 기자들조차. 하긴 요즘은 연예부가 오히려 더 할 것이다. 오죽하면 파파라치 매체까지 생겼겠는가.

어쨌든 '더 컴퍼니 유 킵'은 저널 ‘정도’의 한가한 얘기만을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올곧이 이해하려면 1960년대에서 70년대의 미국사, 유럽사, 아시아사를 웬만큼은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근데 그럴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많지가 않다. 당연히 이 영화가 개봉됐을 당시 철저하게 외면받았던 이유다. 한국 역사는 그나마 억지로 가르치는 척이라도 하지만 세계사는 우리의 공교육 과정에서 일찌감치 사라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더 컴퍼니 유 킵'은 60년대에 태동해 70년대에 극성을 부렸던 급진주의자들의 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바더마인호프,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 일본의 적군파 등등. 당시 미국의 젊은 급진 학생운동가들이 만든 그룹 중에는 웨더 언더그라운드가 있었으며(블랙 판다 당 말고) 이들은 혁명 자금을 모으고 자본주의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는 명분으로 미시간 은행 강도 사건을 일으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서 경비원이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과격한 사건으로 미국의 급진주의 운동은 찬물을 뒤집어썼으며 거의 모든 조직이 와해 되기에 이른다. 미시간 은행강도 사건의 주역들은 모두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30년이 지난다.


그런데 그 주역 중의 한 명인 샤롯(수잔 서랜든)이 수십 년간 간직해 온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자수에 이르는 길을 선택한다. 가명이 아닌 본명으로 금융 결제 시스템에 의도적으로 접근해 FBI 지명수배망에 의해 체포되기에 이른다. 샤롯은 30년간 신분을 감춘 채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왔으며 그 아이들이 다 성장한 지금이야말로 속죄에 다가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의 신념은 여전하다. 그건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자신을 찾아온 기자 벤 쉐퍼드에게 샤롯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당신 세대는 결코 이해할 수가 없을 거야. 그때 상황이 반복된다 해도 난 같은 일을 할 수밖에 없어.”


샤롯의 자수 아닌 자수로 미시간 사건의 주범, 리더는 모두 짐 그랜트라는 변호사에게로 화살표가 몰리게 된다. 그는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 온 지역의 저명인사지만 본명은 닉 슬론(로버트 레드포드)이다. 그는 미시간 사건 직후 신분을 세탁했으며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가 됐다. 정체가 드러나자 짐은, 아니 닉은 뒤늦게 얻은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도주 행각에 나선다. 그 역시 여전히 밝히지 못한, 그래서 밝혀야 하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짐=닉은 자신이 체포되기 전에 그때의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도피 여정의 목표는 30년 전 학생운동 당시 연인이었으며 지금은 플로리다 마약 조직의 두목 격인 남자와 살고 있는 미미(줄리 크리스티)를 만나는 것이다. 30년 전 이들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국 역시 한국 못지않게 상처가 많은 사회이다. 더 똑같은 점은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종종 덧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감독하고 주연까지 맡은 로버트 레드포드는 자신의 지성의 힘으로, 그리고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미국 사회의 묵은 상흔, 그 이념의 덫, 그리고 진영의 갈등을 풀어 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심신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상처가 언제 어디서 생긴 것인지,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법이다. 레드포드가 30년 전 웨더 언더그라운드 그룹 얘기를 하려 한 이유다.


자 그렇다면 올버니 선 타임즈의 기자 벤 쉐퍼드는 미국 사회가 30년간 고통스럽게 지녀 왔고, 혹은 지켜왔던 진실을 올바로 밝혀낼 수 있을까. 그 역시 ‘누구들처럼’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FBI와 주고받는 거래에 이용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닐까. 결국 그 역시 진실은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진실은 진실이 아니며 또 그래서 진실이라는 역설은 인식하게 된다. 진실의 양가성(兩價性), 그 중층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만큼 인생의 쓴맛도 없다. 벤 쉐퍼드도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선다. 벤처럼 세상의 모든 기자는 괴롭다. 선택을 요구받을 때가 많다.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그렇다. 근데 그건 스스로 선택하는 참된 삶의 길이기도 하다. 두 더 롸잇 씽!(Do the right thing!). 영화 속 벤 쉐퍼드처럼 기자들이라면 모두가 늘 마음속에 새기고 살아가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