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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토리] 영화 '페이퍼'
2020-02-04

영화 '페이퍼' (1994년작, 감독: 론 하워드, 주연: 마이클 키튼, 로버트 듀발, 글렌 클로스, 랜디 퀘이드) 

론 하워드의 영화 <페이퍼, The paper>는 이제 기억하는 사람이 별반, 아니 거의 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1994년 영화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신문사 내부의 이야기를 그린 내용이고, 그것도 신문과 언론, 저널리즘의 희망이 그나마 남아 있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과 같은 언론 환경 곧, 가짜 뉴스가 횡행하고, 언론사마다 자신들의 입맛에만 맞는 기사들만을 쏟아 내는 시대에 이런 영화는 차라리 공상과학 판타지 장르처럼 느껴진다. 젊은 세대들은 (이런 영화를 찾아서 볼 리가 없겠으나) 저런 때가 있었어? 라거나, 저게 말이 돼?라고 물을 가능성이 높다.


뉴욕에 있는 한 로컬 신문사가 배경이다. 뉴욕에는 뉴욕 타임스나 월 스트리트 저널 같은 유력지 외에도 200여 개의 신문과 350개 이상의 잡지가 범람하는 곳이다. 신문사에 다닌다고 해서 우리처럼 비교적 고액의 연봉을 보장받거나 사회적인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턱도 없는 소리다. 이들 모두 하루하루 기사를 써서 먹고 살아가는 박봉의 인생 그 자체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기자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비루하고 찌들어 있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들에게 있어서도 ‘한 방’ 인생은 역시나 특종이다. 그러나 특종은 무슨 특종. 특종 같은 소리 하고 있다. 남들 하는 거 제대로 따라 쓰기만 해도 다행인 처지이다.


이 신문사의 사회부장 헨리(마이클 키튼)은 그래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역할을 다 한다. 우리 식으로나 사회부장이지 온갖 뉴스, 기사를 혼자서 쓰거나 데스킹 한다. 밑으로 몇몇 기자가 있긴 하고 그중 고참 기자 중 한 명(랜디 퀘이드)은 시청에 출입하면서 그나마 주요 기사를 가져오는 원천이지만 그건 희망 사항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취재 차량에 툭하면 주정차 스티커가 발급된다며 시청의 해당 주차과를 ‘조지는’ 기사만 내기에 급급하다. 그 밖에는 편집국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서 허구한 날 술에 취해 잠이 들어 있기 일쑤이다. 마감이 지켜진다는 게 기적인 이 편집국에서 국장(로버트 듀발)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국장실 밖으로 뛰쳐 나와 두툼한 백과사전을 들고서는 ‘마감(Dead line)’의 정의를 소리 높여 읽는 게 하루 일과다. 이 와중에 부장 헨리는 아내(마리사 토 메이)의 임신으로 쥐꼬리만 한 월급과 태어날 애를 키울 만한 집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라 목하 고민인 상태다. 마침 그럴 때 규모가 탄탄한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 헨리는 여차하면 그곳으로 ‘튈’ 준비를 마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별 볼일 없는 신문사 데스크에 벼락처럼 큰일이 떨어진다. 명망 있는 백인 사업가 둘이 총격으로 사망한 채 발견되고 그 용의자는 흑인 소년 둘로 좁혀진다. 헨리의 신문사, 수습 사진기자는 흑인 소년 둘이 이송되는 과정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다가 셔터가 눌러지는 바람에 이들 두 소년의 모습을 잡는 행운 아닌 행운, 특종 아닌 특종을 하게 된다. 헨리의 신문이 낸 특종 사진으로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흑인 비행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는 등등, 급기야 인종 문제로까지 번지게 된다. 여론은 이제 완전히 흑인의 범행으로 사건을 몰아가기 시작한다.


그럴 때 다른 증거들이 하나둘씩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부장 헨리는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다시 쓰려고 한다. 그러나 부사장(글렌 클로즈)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낸 특종을 오보라고 인정하는 꼴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신문사는 과연 어떤 결론을 만들어 내게 될까.


26년 전의, 고리 골짝 영화를 새삼 들고 나오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지 않다. 영화 <페이퍼>는 신문과 언론들이 오보(誤報)를 오보라고 인정하던 시대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오보가 있을 때, 자신들의 낸 기사에 약간이라도 허점이 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언론사만이 소위 ‘진실 보도’의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론 하워드의 <페이퍼>는 바로 그 점을 보여 주고, 또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1996년은 빌 클린턴 1기의 시대다. 일명 미국식 자유주의자들(리버태리안, libertarian)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직하고 소박한 언론인들이 역할이 중요한 때였고 또 그렇다고 믿던 때였다. 영화 속 사회부장 헨리처럼. 영화를 보고 있으면 다소 궁핍하고 우당탕거리긴 해도 헨리가 일하는 신문사는 재미가 있다. 소확행이 있다. 저런 데서라면 일하는 맛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문사는 어쩌면, 저래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한다. 지금 시대의 언론상(象)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셈이다. 기자들이라면 종종 이런 영화를 봐야 한다는 얘기는 그래서 하는 것이다. 기자 필독서 영화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2019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 2019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