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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토리] 영화 '마지막 게임'
2020-03-04

영화 '마지막 게임' (2020년 1월 개봉(넷플릭스), 감독: 디 리시, 원작자: 조앤 디디온,  주연: 앤 해서웨이, 벤 애플렉, 윌렘 대포우)

 미국의 흑인 여성 감독 디 리시의 넷플릭스 영화 <마지막 게임>은 사실 해독이 쉬운 영화는 아니다. 몇 가지 키워드는 있다. 1984년. 레이건 행정부 2기를 위한 대선 레이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그리고 무엇보다 니카라과다.


 <마지막 게임>을 보고 있으면 다소 고난도의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을 갖게 만든다. 사실은 앞서 얘기한 키워드로 단박 그 당시의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지적(知的) 자산이 보는 사람들에게 좀 있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영화를 보다가 ‘신경질이 나면’ 이게 뭔 얘기인가 싶어 포털 백과사전을 찾아보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역사적 사실, 세상의 또 다른 추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그래서 새로운 깨달음과 성찰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종종 역사를 알아야 볼 수 있게 만들지만 거꾸로 영화 때문에 역사를 배우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2,30대들에게 심지어 40대들에게 <마지막 게임>은 ‘배우게 하는’ 역사 영화가 될 것이다.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면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있는 한 신문사의 여기자가 미국의 콘트라 반군 스캔들에 엮여서 겪게 되는 사건이다. 여기자의 이름은 엘레나 맥맨(맥마흔)이다. 앤 해서웨이가 이 역을 맡았는데 그녀는 중남미 탐사 전문기자 역인 만큼 얼굴을 항상 붉게 그을리게 하고 나온다. 의도적으로 살도 찌웠으며 유방암 수술을 받은 여인 역이어서 한쪽 가슴을 없애고도 나온다. 진짜 종군 기자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맥맨은 원래 엘살바도르가 전문인 국제 기자다. 엘살바도르는 당시 오스카 로메로 주교가 살해당한 이후 짐승 같은 군부 독재에 신음하던 때였다. 맥맨은 엘살바도르에서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미국의 무능하고 부패한 중남미 외교정책에 대해 예리한 기사를 써대려 노력하지만 신문사의 방침에 따라…가 아니라 국무부의 외압에 의해 편집국장은 그녀를 레이건 유세 현장의 팔로워로 대체, 파견한다. 그렇게 레이건 유세장을 따라다니며 전국을 돌던 그녀에게 어느 날 오랫동안 헤어져 살았던 아버지 리처드 맥맨이 찾아오고 엘레나는 곧 그가 위험한 무기 밀매에 연루돼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시 레이건 정부 2기의 외교정책에 있어 두 가지의 커다란 혹이 있었는데(그들의 입장에서) 하나는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혁명 정권인 산디니스타 정부였고,  하나는 호메이니가 이끄는 중동의 이란이었다. 결국 이 두 문제는 이란-콘트라 반군 사건으로 비화되지만 이 영화는 그 두 가지가 엮이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되 니카라과 쪽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미국은 산디니스타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1960년대 쿠바 카스트로 정부를 제거하려 했던 것처럼) 니카라과 내의 자생적 반군 세력인 콘트라 반군을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었고 여기에 CIA가 깊숙하게 개입돼 있었던 상황이다. 또 이 과정에서 (영화에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콘트라 반군에게 무기를 팔고, 이 대금을 코카인 같은 마약으로 받아 막대한 자금을 만드는 등의 불법, 탈법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자금은 또 레바논 민병대가 억류하고 있던 미국인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비밀리에 쓰이기도 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꼬이게 된다. 그리고 이 추문은 결국 언론에 의해 폭로된다. 올리버 노스 중령 등의 청문회 사태를 기억하면 된다. 결국 이런 등등의 군사 외교적 파문은 레이건 2기 정부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화 <마지막 게임>은 그 전체 사건 중에서 일부분을 ‘픽업’하고 그걸 기자의 시선으로 엮은 것이다.


 영화는 매우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영화는 콘트라 반군 스캔들이 영화 속 엘레나 맥맨 같은 열혈 기자에 의해 추적되고 폭로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애쓴다. 코스타리카에서 잠행 중인(코스타리카는 미국 플로리다와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 사이에서 무기와 마약이 밀매되는 루트로 사용됐다.) 엘레나를 산디니스타 비밀 요원이 돕는다. 엘레나는 그가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오해한다. 그리고 그 착각이 결국 어마어마한 비극을 만들어 낸다. 그녀가 믿지 말아야 했던 사람은 바로 자신과 같은 미국 사람이다. 니카라과 비밀 요원은 이렇게 외친다. ”미국 사람이 미국인을 속인 거라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레나는 CIA 요원인 남자(벤 에플렉)가 자신을 이 지옥에서 빼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산디니스타 비밀 요원의 말은 이 영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결정적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기록되지 않은 희생자들이 누군지 아시오? 바로 기자들이오. 종군기자. 당신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사람들.


 이 말만큼 기자에 대한 정의를 올바르게 해 내는 언사도 없을 것이다. (세상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들. 한국의 기자들은 혹시 지금 그냥 지나치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마지막 게임>은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기자라면, 적어도 이쯤의 현대사를 아는 기자들이라면, 그냥 쉽게 지나칠 수도, 지나쳐서도 안 되는 영화다.


 미국의 문필가로 당대 명성을 떨쳤던 작가 조앤 디디온의 소설 <그가 원했던 마지막 일, The last thing he wanted>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건 영화보다 소설이 더 뛰어날 것이다. 그것도 훨씬. 누가 이 소설을 번역 출판했으면 좋겠다. 기자들 중에 그런 사람은 없을까.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2019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 2019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