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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스토리] 정통 탐사보도의 진수를 보여준다!
2020-10-12

탐사보고서 [기록] 제작기 - 기획탐사팀 고한석 기자

 

탐사보고서 「기록」은 YTN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정통 탐사보도물입니다. 심층 취재를 통해 사건 뒤에 감춰진 구조적 부조리를 추적하고 기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첫 번째 기록이 5공화국의 강제수용소 3부작입니다. 형제복지원에서 출발해 80년대 5공화국에서 만들어진 민간인 강제수용소들의 실상과 현재의 의미를 기록했습니다. 부담이 컸습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기획탐사팀과 영상기획팀 팀원 모두가 석 달여에 걸쳐 온 힘을 다해 매달렸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기획 취지와 취재 과정을 YTN 가족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참혹한 인권유린’ 33년 만에 시작되는 진상규명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시 주례동에 있었던 부랑인 수용시설입니다. 거리 빈민에게 새 삶의 기회를 준다는 사회복지를 표방했지만, 그 안에서는 무차별적인 민간인 납치와 잔혹한 폭력, 굶주림과 강제노동, 살인과 암매장까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끔찍한 인권유린이 자행됐습니다. 지난 5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정부는 오는 12월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나섭니다. 1987년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폭로된 뒤 33년 만입니다.

 

2020년, 형제복지원은 어떤 의미일까?


형제복지원을 다룬 언론 보도는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 형제복지원이라는 ‘단일 사건’에 대한 평면적 보도에 그쳤습니다. “어떻게 저런 일이!”라는 정도의 ‘도시 괴담’으로 형제복지원은 소비되고 있습니다. 기획탐사팀은 인권유린이라는 극단적 이미지를 쫓았던 기존 언론 보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형제복지원 이면에 있는 정치·경제적 구조를 밝히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피해자 21명 심층 인터뷰…부산 출장만 7번


피해 생존자 21명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수용 경위와 현재의 삶까지, 형제복지원으로 인해 뒤틀린 그들의 삶을 듣고 기록하기 위해 부산 출장만 7번을 다녀왔습니다. 87년 형제복지원을 수사했던 김용원 변호사를 만나 당시 수사 기록을 확보했습니다. 부산시청과 관할 구청, 국가 기록원을 찾아다니며 관련 기록들을 구했고, 협조를 거부하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형제복지원의 배경이 된 ‘사회정화운동’과 관련한 전두환의 육성 파일과 미국 대사관 문서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야산 묘지 누비고 다닌 이정미 기자


부산만이 아닙니다. 형제복지원과 유사했던 양지마을 취재를 위해 이정미 기자는 세종시 야산묘지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80년대 양지마을에서 죽임을 당했던 수용자들이 묻혀 있는 곳이었습니다. 양지마을은 천성원이라는 법인 아래에 있는 부랑인 수용시설로, 5공화국에서 탄생한 대규모 민간인 강제수용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지금도 건재합니다. 기획탐사팀은 대전시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한 천성원 회계 자료를 분석해 ‘창업주 일가’의 족벌경영과 세습, 그리고 행정당국과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경찰·공무원 추적…통영·진주 등 어디든 간다!


피해 생존자뿐만 아니라 과거 5공화국에서 부랑인 수용 업무를 한 경찰과 공무원도 추적했습니다. 한동오 기자와 김대겸 기자는 통영, 한산도, 진주 등 취재원이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랑인 수용 업무를 담당했던 퇴직 공무원들도 만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두환의 막내 동생인 전경환 씨와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이 유착됐다는 증언을 최초로 확보했습니다. 또 형제복지원이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른바 시국사범들을 가두는 비밀 수용소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담당 공무원과 피해 생존자 증언을 통해 밝혀냈습니다. 

3부작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1부 감금의 시대 

전두환은 독재자가 아닌 복지 국가의 지도자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부랑인 집단 수용도 그렇게 기획됐습니다. 명목은 이른바 사회정화였습니다. 당시 사회정화 사업에는 경찰과 군, 행정당국, 안기부 등이 총동원됐습니다. 기록을 보면 지역 유지들로 구성된 정화위원만 113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5공화국의 출범과 5월 광주 민주화운동, 그리고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대규모 민간인 강제수용소가 만들어진 배경을 추적했습니다.

 

2부 수용소 비즈니스 

대전 천성원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형제복지원의 형제’들을 취재했습니다. 폭력과 굶주림은 극단적인 이윤 추구 행위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권력의 필요와 시설 운영자의 경제적 욕망이 만나면서 형제복지원과 그 형제들은 점점 덩치를 불려갔습니다. 인권유린을 통한 수용소 비즈니스의 실체를 형제복지원 재무 구조 등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분석했습니다.

 

3부 생존자들 

형제복지원에서 자살을 병사로 둔갑시킨 사례를 최초로 확인했습니다. 살아남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원장 박인근 일가의 현재, 그리고 대전 지역 최대 복지법인 천성원의 족벌 경영과 세습 문제를 취재했습니다. 회계사와 사회복지 전문가 등의 자문을 받아, 비영리 사회복지법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족벌경영과 세습 문제를 파헤쳤습니다. 대규모 수용 시설을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하는 대한민국 사회복지의 구조적인 문제도 짚었습니다.

 (왼쪽부터) 기획탐사팀 이수현(서울대 팩트체크센터 인턴 기자), 김웅래 기자, 한동오 기자, 이정미 기자, 김대겸 기자, 김미화 리서처, 고한석 기자

 

3부작이 완성되는 데는 무엇보다 영상기획팀 촬영 기자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상엽 기자는 타고난 영상 감각으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탐사보도물을 흥미롭고 매끈하게 뽑아냈습니다. 김현미 기자는 헌신적인 현장 취재와 순간 포착 능력으로 영상에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장승대 씨와 박지민 씨는 깔끔하면서도 인상적인 그래픽으로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음악 감독 장석문 선배는 마치 뮤즈처럼 5공화국의 강제수용소 3부작에 숨을 불어 넣어 생기를 줬습니다. 이 밖에도 종합편집실 김형도 감독님과 CG 담당 이승아 씨를 비롯해 정말 많은 분들이 탐사보고서 기록의 첫 탄생을 도와주셨습니다. 앞으로 쌓아갈 새로운 기록들을 통해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