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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스토리] 원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
2021-02-17

오태인 창원지국 기자 / [취재후기] 2월 2일 방송 기사 "뼈대 부실 낚싯배 '뒷북' 전수 조사...구멍 뚫린 규정"

낚싯배를 운영하는 선주의 하소연에서 시작됐다.

사람으로 따지면 척추가, 건물로 따지면 철근이 자신의 배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배가 있을 수 있나?’라는 황당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선주를 도와주는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배의 뼈대인 ‘종강력 부재’라는 전문 용어가 등장했다. 배 설계도면을 확보했지만 볼 수가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선박에 관한 ‘습자지 같은 지식’ 탓에 취재보다는 학습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사람의 척추, 건물에서는 철근 같은 중요한 부분이 바로 '종강력 부재'라는 것이다. 다시 제보자와 긴 시간 통화했다. 첫 통화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귀에 들렸다. 종강력 부재의 중요성과 함께 비슷한 배가 여러 척 만들어졌다는 내용도 확인했다.

분명 문제는 있어 보였다.


하지만 문제의 배가 뭍으로 올려진 곳은 전북 군산, 배가 만들어진 곳은 경남 창원이었다. 차로 3시간 넘게 떨어진 곳이었다.
현장 확인을 위해 눈이 억수처럼 내리던 날 아침, 창원에서 출발해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을 지나 군산에 닿았다.


곧바로 취재를 시작했다.


조선소에 올려진 배를 확인했다. 선주는 배를 운항하던 중 교각을 들이받았다고 했다. 충격도 크지 않았지만 ‘종강력 부재’가 없어 배가 반 토막 나듯 부서졌다는 것이다. 함께 낚싯배를 본 배 설계 전문가도 사실을 확인해줬다고 했다. 어렵사리 만난 배 설계사, 문제의 배에는 ‘종각력 부재’가 없다는 인터뷰를 받았다.


이번엔 경남 창원에 있는 조선소를 찾아 '종강력 부재'없이 배를 만든 이유를 물었다. 설계도면과 다르게 건조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신공법을 썼다고 주장했다. 샌드위치 패널 사이에 특수 우레탄을 넣어 훨씬 뛰어난 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재료비와 공정기간도 비슷하다고 했다. 설계도면을 다시 승인받지 않은 것은 인정하면서도 좋은 배를 만든다는 자부심마저 드러내며 140척 정도 되는 낚싯배를 만들었다고 했다. 설계도면과 다른 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관리·감독 기관은 역할을 제대로 못 했을까?


낚싯배 설계도면을 승인하고 도면대로 배가 건조되는지 관리·감독을 하고 최종 사용 승인까지 내리는 곳이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본사가 있는 세종에서 공단 관계자들이 창원지사로 직접 내려왔다. 낚싯배를 건조하는 과정을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낚싯배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10척 정도 되는 낚싯배를 전수조사하겠다고 했다. 앞서 조선소 관계자에게 신공법으로 배를 140척 정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다. 세월호의 아픔이 여전히 선명한 탓일까? 이러다 정말 큰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일단 더 큰 사고는 막아야겠기에 취재 중이지만 비슷한 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렸다. 공단은 하루 뒤 정식 인터뷰에서 140척 모두를 조사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법과 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선주는 해경에 조선소 관계자와 공단 검사원을 고소했다. 수사에 들어간 해경은 검사원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조선소 관계자는 적용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다고 했다. 설계도와 다르게 배를 만들어도 이득을 취하지 않으면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소가 많은 거제 지역 변호사와 조선 대기업 사내 변호사를 지낸 변호사들은 법 조항에 빈틈이 있다고 했다.
조선소와 공단은 신공법으로 만든 배의 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으로 풀이된다. 아무리 신공법으로 좋은 낚싯배를 만들어도 설계도면대로 만들어야 하는 원칙은 중요하다. 원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또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쳐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