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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스토리] ‘소리가 없어도 더욱 깊이 다가가는 생생한 뉴스’
2021-03-12

박지연 / 편성운영팀 수어 통역사

수어를 만나다

 

 1997년 IMF. 그 해는 저에게도 차가운 한 해였습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거듭된 실패와 좌절 속에 힘들어하던 중에 친한 선배가 ‘장애인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나본 ‘청각장애인’들은 저보다도 훨씬 더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듣지 못하는 것은 그저 불편함일 뿐, 오히려 그분들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과 마음에 장애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왕복 4시간 거리를 매일 오가며 수어를 배웠습니다. 농인분들은 저를 가족으로 대해 주셨고, 어설픈 제 수어를 웃음으로 감내하며 기꺼이 가르쳐 줬습니다. 그렇게 수어 통역사가 됐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농인 엄마와 농인 동생이 생겼습니다. 가끔 제가 수어 하는 것을 보고 가족 중에 농인이 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종종 저는 “네, 제가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에요.”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농인 가족들과 20여 년 동안 함께 나눈 한솥밥이 제 수어를 더 농인답게, 농인의 언어로 보여드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수어가 이어준 인연들

 

 처음 수화를 배울 때의 감사한 마음을 나누고 싶어 예비 통역사들을 위한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매주 무료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친한 농인 선생님들도 특별 강사로 초빙하곤 합니다. 그러다 2년 전, 함께 공부하던 후배가 농인 선생님과 친해지게 되었고 결국 두 분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남편이 사회를 보고, 제가 예식 수화통역을 했는데, 정말 보람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면 두 분의 결실로, 사랑스러운 쌍둥이 조카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복이와 또복이’ 남녀 쌍둥이 조카들이 한 번에 생긴다네요. 따스한 봄날 살랑이는 바람처럼 수어가 맺어준 인연들이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스타벅스와 농인들

 

 혹시 YTN 본사 1층에도 들어와 있는 ‘스타벅스’가 장애인 바리스타 고용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2016년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청각장애인이 근무하는 매장을 열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다수의 매장에서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해 세계 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을 맞아 특별한 스타벅스 매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전 세계 최초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강화한 포괄적 디자인을 선보인 ‘서울대 치과병원점’인데요. 그곳의 파트너 12명 가운데 장애인 파트너 6명이 다양한 직급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25년동안 제가 수어 통역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지해준 농인 동생 ‘아놀드’가 바로 그 스타벅스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YTN 1층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수어를 사용하는 두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처음 본 농인들에게는 수어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면 곧바로 반갑게 자신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렇게 저는 한 시간 동안 농인 두 분과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이제 매일 와이티엔 수어방송을 시청하는 고정 팬이 되었습니다. 

YTN 수어방송은 고정 시청층이 있다.

 

 위의 경우 외에도 다양한 인연으로 만난 농인 분들이 YTN 뉴스N이슈의 고정 시청자가 되었습니다. 한국농아인협회 이하 시도협회 및 수어 통역센터에서는 매일 점심시간에 YTN 뉴스를 보며 식사를 하신다고 합니다. 노원구의 농아인협회 회원분들은 방송에서 저를 보고, 뉴스의 뒷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며 강사로 초빙하기도 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3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농인 어르신들에게 시사 뉴스를 수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워싱턴 DC 갈로뎃(Gallaudet) 대학에서 일하는 농인 한승헌 선생님은 멀리 미국에서 YTN 방송을 잠자리에 들기 전 매일 보시고, 뉴스 내용을 요약해 전해 주십니다. 그 내용을 보면서 ‘아~ 오늘도 오역 없이 통역을 잘 해냈구나’ 안도하며, 저 자신을 매일 평가하고, 다시 다음날 통역을 준비합니다. YTN 수어 뉴스는 이렇게 국내외 농인들과 매일 매시간 살아있는 수어로 피드백하며 소통하고 발전하고 있답니다.

재난방송에서도 수어가 필수

 

 지난해 재난에 취약한 농인들을 위해 방송통신위원회 시청자미디어재단과 수어통역사협회가  재난방송 수어통역 교육을 펼쳤습니다. YTN에서 주말 통역을 하시는 KASLI 수어통역사협회 안석준 협회장님을 주 강사로 하는 교육이었는데, 저는 교육도 받고 일부 시간 강의를 직접 하기도 했습니다. 40시간의 교육 후 평가의 시간을 가졌는데, 상위 수준의 교육생들은 명단을 각 방송국으로 알리고, 우선적으로 재난방송에 투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뿌듯하게도 현재 YTN에서 통역하고 있는 5명의 통역사가 모두 이 우수 명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YTN에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직원이자 수어 강사로 활동을 했습니다. 이후 국회방송, JTBC, MBN, 채널A, 홈쇼핑 채널 등에서 방송통역사로 활동하다가 5년 전부터 YTN 편성운영팀 소속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장 핵심 시간대 수어 통역을 하게 배려해주신 YTN은 이제는 제게 매일매일 만나는 대가족 같은 느낌입니다. 365일 저희 통역팀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이곳에 오며, 하루에 8시간 이상 매일 뉴스를 듣고 모니터한답니다. YTN 앵커, 기자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맞출 정도면, YTN 모두가 저에게 수어 가족인 거 맞지요?

 

 소속이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합니다. 수어 통역을 위한 여러 가지 배려로, 보다 높은 수준의 통역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신 YTN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요. YTN 뉴스가 농인들에게 1등 뉴스가 되는 희망을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