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M스토리] 뉴스는 가십이다. 영화 <크루엘라>의 언론학
2021-06-08


영화 ‘크루엘라'(감독 : 크레이그 질레스피, 출연 : 엠마 스톤, 엠마 톰슨, 마크 스트롱 등)


코로나19 탓에, 아니 넷플릭스 같은 OTT 탓에, 극장에 가서 안 봐서 그렇지 보기만 하면 모두들 비교적 흠뻑 빠지는 영화 <크루엘라>에서도 기자 역할이 나온다. 아니 나름 매우 중요하게 나온다. 이때의 언론은 이른바 가십 언론이다. 패션계나 연예계의 이야기, 그 주변 사람들의 ‘근거 없는’ 입소문을 마치 팩트인 양 가공해서 더욱더 퍼뜨리는 언론을 말하는 것이다.

주인공 크루엘라(원래 이름은 에스텔라, 엠마 스톤)에게는 어릴 때 유일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아니타 달링(커비 하웰 밥티스트)이다. 그녀 역시 학창 시절의 에스텔라 마냥 학교 부적응자였다. 에스텔라는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에게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지만 아니타만은 늘 그녀 편이었다. 에스텔라의 야성적이고 이중적인 매력을 아니타만큼은 알아봤기 때문이다.

아니타의 그런 ‘기자적 혜안’은 결국 성인이 된 후에도 발휘된다. 아니타 달링은 에스텔라가 크루엘라로 변신, 변장하고 혜성처럼 나타나 패션계를 독점, 독재하고 있는 바로니스 남작 부인(엠마 톰슨)을 향해 이른바 패션 배틀을 벌이기 시작하자 단박에 그녀가 에스텔라의 얼터 에고(alter-ego, 분신)임을 알아챈다. 아니타는 어린 시절 마냥 크루엘라 편을 든다. 바로니스의 측근 기자에서 크루엘라 쪽으로 ‘말을 갈아탄다’. 크루엘라와 크루엘라의 패션 감각을 이단아의 그것이자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으로 포장해 내기 시작하는데 당연히 그 이전에 크루엘라와의 밀당이 있었다.

아니타 달링은 과거 바로니스와도 거래를 통해 충견이 됐다. 그녀의 파티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독점 취재할 수 있다는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야말로 바로니스에 대한 충성 서약의 제1조건이 됐다. 그러나 스물스물 바로니스의 독단적이고 안하무인적인, 비인격적이고 모멸적인 행동에 분이 차오르던 참이었다. 크루엘라가 나타나면서 아니타 달링은 새삼 기자다운 기자가 되려고 애쓰는 척한다. 그 노력이 가상하고 눈물겹다. 새삼 처량하게 느껴진다.

가십 기사, 연예 기사는 늘 홀대받는다. 일본어 한자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간지(間紙) 부서라는 말이 있다. 문화부나 연예부를 일컬었던 말이다. 설날 명절이나 추석 같은 대목 시즌에는 광고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지면을 확충할 필요가 있을 때 본지에 끼워 넣을 수 있는 특별판, 섹션 지면을 제작해야 한다. 이럴 때 동원되는 기사들이 대개 가십 뉴스들이다. 그런데 지면 제작이 평상시로 돌아가면 이 간지 부서의 역할은 대폭 줄어든다. 그래서 문화부나 연예부는 평상시 지면에서 살아남기 위해, ‘귀퉁이’에라도 자신들의 기사를 실어 생존하기 위해, 더욱더 특종 경쟁에 나선다. 자극적인 기사의 사냥에 나선다는 얘기다. 영화 속 아니타 달링처럼.

물론 이런 것도 다 옛날 얘기다. 요즘은 가십이 뉴스의 중심에 서고 뉴스 자체가 가십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정치 뉴스의 상당 부분이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누구의 말처럼, ‘소설 쓰시네’의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라고 오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과거마냥 문화부와 연예부의 기사나 뉴스는 더더욱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그보다 더 자극적인 정치 가십 기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를 받는 사람이 짜장면을 시켜 먹었는지 볶음밥을 시켜 먹었는지 우르르 떼거지로 몰려가 녹음기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시대니까. 그 중국음식 배달원은 얼굴 노출이 되는 걸 얼마나 걱정했을까. 조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오찬은 그것 자체 때문이 아니라 메뉴 하나하나를 상세히 보도한 언론 덕에 사람들은 크랩 케이크가 뭔지를 알게 되는 세상이 됐다. 자칭 정치평론가라는 전직 교수의 SNS 글을 무조건 갖다 인용하는 건 아예 언론이기를 포기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요즘 언론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대다수는 도가 지나치다고들 생각한다. 본말이 전도됐다고 보는 것이다.

아니타가 크루엘라-바로니스 전쟁에 대해 쓰는 가십 기사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갈수록 선악의 편에 설 줄 알게 되고 그러면서 ‘무엇이 중한지’를 깨달아 간다. 아무리 특종이 중요해도 그게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를 구분하려 한다. 영화 <크루엘라>가 <101마리 달마시안>의 스핀 오프였듯이 아니타 달링의 얘기도 <크루엘라>의 스핀 오프로 나올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그건 소수의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가십 수준의 뉴스가 정통 뉴스로 복원되길 바라는 것이 다수의 생각이다. 영화 <크루엘라>가 주는 엉뚱한 생각이다. 믿거나 말거나.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 라이브 더빙쇼 <이국정원>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