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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토리] 알고리즘은 돌았저를 꿈꾸는가?
2021-07-26

YTN 보도제작국 제작1팀 양일혁


“[돌발영상] 유튜브 채널에 [뉴있저]와 [알고리줌]을 합친다면?”

처음 이 제안을 들었을 때 말 그대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것이 그때의 솔직한 심경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유튜브에 대한 모든 지식을, 알고리즘에 대한 모든 공식을, 소셜 미디어에 대한 모든 상식을

뒤집는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잘 알려져 있듯이 유튜브 생태계의 어느 채널에서 성공하는 콘텐츠가 솟아오르면

별도의 채널로 독립시켜 유니버스를 확장하는 것이 지극히 일반적인 문법이었습니다.

‘문명특급’이 그랬고, ‘스포츠머그’가 그랬고, ‘소비더머니’가 그랬고, 그리고 또... 돌발영상이 그랬습니다.

한마디로, 성공하면 독립한다.


그런데 독립 채널로 떼어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돌발영상 채널에 다른 콘텐츠들이 뭉친다?

<시사토크 알고리줌>

무언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에서 이탈하려 할 때 머릿속에 경보음이 울리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입니다.

게다가 돌발이 아닌 다른 콘텐츠들이 한 채널에 섞임으로써 혹시라도 그동안 축적된 돌발영상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희석되어 버린다면? 이 말을 돌발영상이 잘났다는 말로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하루하루 채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한 번쯤 가져볼 수밖에 없는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민으로 밤잠을 뒤척이던 그 시기, 뇌리에 크게 박혀있던 비유는 가령 이런 것이었습니다.

푸드코트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중국집이 별도로 가게를 차렸는데, 그래서 (비록 엄청난 대박집은 아니어도) 조금씩

손님 늘려가는 재미로 가게를 꾸리고 있는데, 이 자리에 곰탕집도 들어오겠다, 돈가스집도 들어오겠다,

더군다나 간판까지 바꿔 달아야 할 판이라면... 이 가게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렇듯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이성은 ‘합쳐선 안 된다’는 쪽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가능성. 이것이 지금까지의 성공의 문법을 거스른다고 해서 반드시 실패의 길로 귀결될 것인가?

말하자면 귀납법을 놓고 벌이는 주사위 놀이. 어제도 하얀 백조가 날아왔다. 오늘도 하얀 백조가 날아왔다.

그렇다고 내일 날아올 백조도 반드시 하얀 깃털일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내일 눈을 떴는데 나를 맞이하는 게 검은 백조라면?


유일하게 남은 이 가능성이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모험의 행렬에 올라타기로 한 것입니다.

일단 실행하기로 하자 일은 단박에 진행됐습니다.

<뉴스가 있는 저녁>

프로젝트의 백미는 채널명에 있습니다. 이름하여 ‘돌았저’. ‘돌발영상 X 알고리줌 X 뉴있저’의줄임말.

나중에 어느 시청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돌알저가 아닌 돌았저로 지은 사람 상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지만, 모든 모험의 시작이 그렇듯 처음엔 절망적이었습니다. 형편없이 곤두박질친 조회수.

​우수수 이탈하는 구독자. 그렇구나. 역시 안 되는구나. 빨리 원상복구 시켜야겠구나.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갑자기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조회수가 마구 솟구치고 구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겁니다. 하늘에서 동아줄이라도 내려온 걸까요?

허락해주신다면 이것을 기적이라 불러도 좋겠습니다. ‘돌았저’ 리브랜딩 채널을 오픈한 5월 3일을 기점으로

전후 50여 일을 간단히 비교해 봤더니 조회수 3.9배, 시청시간 4.9배, 추정수익 3.6배가 증가했습니다.


구독자는 12만 4천 명에서 15만 명으로 불어나더니,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안 된 7월 19일 20만을 돌파했습니다.

​이쪽 업계 표현을 빌리자면 유튜브 알고리즘 신의 간택을 받은 겁니다.

(새로운 도전의 발판을 마련해주신 김선중 보도제작국장과 윤현숙 당시 제작2팀장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가능했는가. 정확한 이유를 안다면 신의 간택이라는 표현 자체가 등장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채널을 독립해서 돌발영상 콘텐츠만 업로드하는 것만이 유일한 성공 방식은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돌발영상뿐 만이 아니라 뉴있저와 알고리줌 같은 정치, 시사 콘텐츠들이 때로는 가까이,

때로는 느슨하게 연결될 때 어떤 점에선 시청자들에게 더 잘 다가갈 수 있다고, 수치들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어서 언제 이 지표들이 또 다른 언어로 춤을 출지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때는 아마 또 다른 모험을 실행할 채비를 해야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글을 마치기 전, 이것만은 묻고 싶습니다. 앞서 언급한 데이터가 과연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걸까요?


이 숫자들은 알고리즘과의 조우라는 측면에서는 얼마만큼 성공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저널리즘이라는 가치의 측면에서는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물론 유튜브의 몫이 아닙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각자의 뇌 속에, 그리고 서로의 심장 속에,

저마다의 수식으로 짜 놓은 저널리즘에 대한 코딩으로 판단 내릴 수 있을 뿐입니다. 약간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알고리즘에 좋은 콘텐츠는 저널리즘에도 좋은 콘텐츠일까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는 결국 YTN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