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Y스토리] 국가 1급 보안시설 침투기 (feat. 종이 한 장)
2021-09-03

■ 박희재 사회부 기자

2021년 2분기 '자랑스러운 YTN인상' 특종상 부문 <은상> 수상 - 사회부 박희재, 영상취재1부 김광현


[취재후기] <종이 한 장에 구멍 뚫린 주차 보안 시스템> 기획 연속 보도


스파이 영화에서 봤던 보안시설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들, 얼굴을 자동·분석하는 CCTV, 생체 인식기 정도는 필수로 있었다. 하물며 국가 보안시설이라면, 그중에 최고 등급인 '가급(1급)'이라면 그런 기대도 할만하지 않을까. 구글 이미지에 '정부서울청사 정문'을 검색해보면 일반인 키 높이를 훌쩍 넘어가는 쇠창살 이미지가 수두룩하다. 그곳을 들어가 보기로 했다. 종이 한 장으로. 첫 번째 청사 방문이었다.


시작은 한 사건 취재를 하면서부터다. 아파트 주차장을 몰래 이용하다 발각된 사건이었다. 사건팀 김우준 선배가 연결해 준 제보자 덕에 CCTV 자료도 받았다. 주차장 CCTV를 돌려보다 보니, 한 남성이 차량 번호판에서, 무언가를 떼어내는 장면이 포착됐다. 종이에 인쇄한 가짜 번호판이었다. 무인주차 시스템이 가짜 번호판과 진짜 번호판을 구분하지 못하는 틈을 이용한 범행이었다. 경찰 수사 상황도 파악이 됐고, 사건 기사는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신선한 수법이라 그런지… 그냥 끝내기엔 뭔가 취재가 끝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의문이 들었다. 기계 허점을 악용한 범인도 문제지만, 허술하게 설계한 무인주차 회사도 문제 아닌가? 업체에 전화했다. 그들의 해명은 두 가지였다. "그 오류는 업계에선 상식이다. 다른 곳들도 다 똑같다.". 다른 곳도 똑같다고? 그러고 보니, 아파트 주차장에서 본 번호판 인식기를 자주 오가던 경찰서나, 법원, 시청에서도 본 기억이 났다. 업체에 다시 전화해 슬쩍 물었다. 경찰서에도 납품하는지. 혹시 국방부, 청와대도 비슷한 시스템을 쓰는지. 업체 직원은 자기들 기술이 들어가고 있다고 해명하듯 털어놨다. 그런 통화를 하면서 도착한 회사 주차장 입구 앞. 그곳엔 무인주차 기계가 눈앞에 서 있었다. 전화하던 바로 그 업체 제품이었다.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검증을 해봐야 했다. 빠르게 해 볼 수 있는 곳은 회사 주차장이었다. 그다음 필요한 건 '프리패스'였다. 가짜 번호판. 회사 차량 번호판을 촬영해 DDMC 지하 알파문구에서 같은 크기로 인쇄한 뒤, 코팅했다. 그다음, 지하주차장에 있던 차량 앞에 쪼그려 앉아 몇십 분을 붙였다. 등 뒤로 지나가는 사원분들이 수상한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제 발에 저려 사원증을 잘 보이게 메고 있을까 고민도 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시험해봤다. 결과는 무사통과였다. 자신감이 붙어 A4용지에 매직으로 그린 뒤 코팅한 버전, 코팅도 안 한 버전까지 시도했고, 주차장 차단기는 하염없이 위·아래로 춤을 췄다.



그다음은 1급 보안시설, 정부서울청사였다. 김도원 선배 도움으로 정부서울청사에 등록된 차량 번호판 사진을 구해 가짜로 만들었다. YTN 로고가 없는 흰색 소나타를 타고 가기로 했다. 청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골목에 차를 대고 가짜 번호판을 걸면서 후배 김광현 촬영기자와 계획을 짰다. 청사 앞에서 외경을 촬영하며 분위기를 보고, 전화로 내게 신호를 주면 차로 진입하기로 했다.

진입 전에 확실히 해야 할 점이 있었다. 우리 입장에선 1급 시설의 보안 실태를 '취재'하는 일이었지만 법의 관점에선 범법을, 방호 요원 관점에서는 사명감으로 지키는 보안이 뚫리는 일이었다. 당시 캡이었던 김지선 선배, 법무팀과 충분히 상의를 거쳐 숙지한 현장에서 주의할 점, 지켜야 할 점들을 되뇌었다.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속마음에 서서히 긴장감이 피어오르는 순간, 신호가 왔다. 천천히 차량이 움직였고, 어느새 청사를 가린 으리으리한 쇠창살 철문 앞으로 다가갔다. 정문을 지키던 경찰이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문 주변에 달린 전광판같이 생긴 모니터 하나를 쳐다봤다. (속으로 꿀꺽) 회사에서 수십 번이고 본 바로 그 무인주차 기기였다. 이내 눈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철문이 좌우로 열렸다. 국가 ‘1급’ 보안시설의 보안 실태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중요한 순간이 남았다. 청사에 불편한 사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차량에서 내려 방호 직원 앞에서 가짜 번호판을 떼어냈다. 그제야 심각함을 인지한 직원이 급하게 무전을 치더니 어딘가에서 방호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YTN 취재진임을 밝히고 책임자와 취재 경위를 설명했다. 그리고 보안 매뉴얼을 비롯해 질의 과정을 거치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다행히 우려했던 현행범 체포는 당하지 않았다.

이후 행정안전부와 대법원에선 출입 시스템을 개선하겠단 입장을 냈다. 문제 주차업체도 가짜 번호판을 방지하기 위해 기술 개발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취재로 종로경찰서에서 내사도 받았다. 번호판을 위조한 혐의 수사가 필요할지 확인 차원이었다. 다행히 취재 공익성이 참작돼 문제없이 마무리됐다.

이번 보도는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범죄 수법을 알렸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었다. 그만큼 개선을 약속한 기관들이 잘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책임은 필요하지 않을까.

제보를 받았던 첫 단추부터 검증 과정, 마무리까지 선후배들의 조력이 있었기에 취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또 예상보다 길어진 취재 과정에 몰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신 것에도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