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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기자들의 암약(暗躍)이 봉쇄된 시대
2021-09-10

넷플릭스 드라마 ‘D.P.’ (연출 : 한준희, 각본 : 김보통, 한준희)

▲ 넷플릭스 드라마 <D.P.> 포스터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인기다. 그 바쁘다는 대통령 경선 후보들조차 앞다퉈 이 드라마를 보고 논평을 하고 있다. 다소 식상해진 징병제, 모병제 논쟁이 잠깐 고개를 처들기도 한다. 이른바 ‘여초’ 사이트라고 하는 곳에서는 남자들이 왜 국방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지 않느냐고 조롱댄다. 여기에 또 이른바 과도한 ‘이대남(20대 남성)’들이 여자들도 군대를 가라며 소리를 지른다. 정상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정체성 정치’가 시작되면서 사안에 따라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말싸움이 난무한다. 정치가 조정 역할을 못해서이고 언론이 모더레이터(사회자 또는 중재자)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서이다. 이 드라마의 인기를 목도한 국방부는 언제 때 군대 얘기를 지금 와서 하고 있느냐며 둘러치기 바쁘다. 군 당국은 자정(自淨)과 자성(自省) 능력을 상실한, 그래서 종종 괴(怪)집단으로 비춰진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이 모두가 정상이 아니다.


▲ 넷플릭스 드라마 <D.P.> 스틸컷


어떤 사람들은 <D.P.>가 군 내부, 병영 일부에서 벌어지는 극히 드문 사건을 과장해서 극화시켰다고 한다. 특히 고참이 ‘쫄따구(하급 병사를 일컫는 방언)’에게 바지를 내리게 하고 눈앞에서 유사 성행위를 시키는 장면 등을 꼭 보여줘야 했냐고 비판한다. 일종의 ‘강간의 스펙터클’과 같은 것으로 성폭행의 문제를 드러내다 못해 일부러 관음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뭐, 영상 미학적으로 그런 논쟁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군대 내에서의 유사 성행위, 성추행과 성폭행은 실제로 있는 일이며 비교적 적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다. 오히려 드라마는 수위를 다소 낮췄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어쨌든 드라마의 그런 장면이 걱정스러운 것은, 위에서 언급한 비판자들의 논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남자든 여자든, 요즘은 여군도 많다) 어머니들이 끔찍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장면을 보면 이 땅의 어머니들은 잠을 못 잘 것이다. 솔직히 그런 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 넷플릭스 드라마 <D.P.> 스틸컷


<D.P.>가 미디어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 드라마에 기자가 어디 나오느냐고 일갈하면 할 말이 없다. 언론의 문제와는 언뜻 상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소 견강부회(牽强附會)처럼 억지로 붙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군대는 흔히들 인권의 사각지대라고들 한다. 감시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각 단위 부대(사단, 연대, 대대, 중대, 소대)마다 무소불위 권력이 행사되기 때문이다. 변변한 견제 기구도 없다. 군 인권센터라는 것이 만들어진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보통 인권의 사각지대는 미디어의 사각지대다. 잘못된 권력이 행사되고 유지되는 곳, 그런 악행이 오래된 곳은 보통 기자들이 ‘침투하기’ 어렵다. 오히려 기자들은 ‘관리’된다. 이런 집단은 통상 기자실을 운영하고 정례적인 브리핑을 하며 간간이 선택적으로 기자 개개인을 접촉해서는 역시 기사를 선택해서 제공한다. 그럴 때 제공되는 기삿거리는 대체로 조각(組閣)되거나 변형된 것이다. 심하면 조작된 경우도 있다. 기자들의 올바른 암약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쉬운 구조가 생길 수 있다. 군대가 그렇고 검찰이 그렇다. 폐쇄된 기득권 집단은 대개 기자들을 길들인다. 자기네 입맛대로 요리하려고 한다.


▲ 넷플릭스 드라마 <D.P.> 스틸컷


드라마 <D.P.>의 속살을 음미하다 보면 우리의 언론이 이른바 탐사 보도의 줄기를 더 강하게 쳐 나가야 한다는 점이 느껴진다. 도대체 저 갇힌 공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끊임없이, 그리고 꾸준히, 관찰하고 감시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탐사보도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자들, 언론사들 스스로가 먼저 열려야 한다. 레거시 미디어와 1인 미디어, 조직에서 훈련된 기자들과 프리랜서들이 종과 횡으로 시시각각 연대하고 연합해야 한다. 내 미디어가 최고의 언론사라는 판타지는 깨진 지 이미 오래다. 언론사가 삼성이나 현대가 아닌 것이다. 그 와중에 메이저 언론사와 마이너 언론사를 차별하는 발언이 한 대권 후보에 의해 터져 나왔다. 시대가 거꾸로 간다. 이러니 <D.P.>가 인기인 것이다. 지금 어디서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고? 다 옛날 일이라고? 그걸 믿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메이저니 마이너니 따지는 대권 후보가 있는 마당에.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 라이브 더빙쇼 <이국정원>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