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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산책] 부조리에 맞서는 유쾌한 통찰 - 김서울 작가
2022-02-04

김 서 울 (Seoul KIM)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 졸업, 타마 미술대학 대학원 회화전공 판화연구 석사과정 졸업, 동대학원 미술전공 박사과정 졸업

·개인전, 단체전 다수 참여

·수상/선정

2021 노보시비스크 국제 현대 그래픽아트 트리엔날 전통판화부문 특별상 수상

2019,18 대구 청년예술가육성지원사업 선정 작가

2019,17 제10,11회 Trois-Rivières국제현대판화비엔날레 Duguay Prize(관객상) 수상 등

A box for me time, 50x40cm, Etching, Chine-colle,2020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수납하기 위해 우리가 사는 대도시는 규격화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게 나누어진 수많은 상자 안에서 우리는 모이고도 외로운 순간들을 보내기도 한다. 어떤 작은 상자 공간들은 번잡한 도시생활로부터 나를 분리시켜 스스로를 충만하게 하는 시간을 부여하기도 한다. 우리 삶의 아이러니를 그리고, 때때로 주어지는 '홀로 HOLLOW 상자'를 통해 내 안으로 깊숙이 침잠하게 하는 순간들을 그리고 공감하고자 한다.

- 작가 노트 중 -


- 동판화 제작하는 김서울 작가 -


김서울 작가는 대구에서 서울, 그리고 일본 도쿄의 생활을 거치며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관찰하고, 부조리한 면을 직시했다.


도시에서 마치 좁은 상자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통제 시스템에 길들여진 군중의 모습을 작가는 익살스럽게 묘사하는데 어쩐지 웃음기와 애잔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동판화를 주로 작업하는 김서울 작가는 흑백 색감의 한계를 넘어 색한지를 덧입힌 독특한 조합을 빚어냈다. 동판화의 섬세한 묘사를 살리면서도, 한지의 다채로운 색감과 포근한 질감이 더해져 작품에 부드러운 감성이 묻어난다. 작품 속 고단한 이들을 위로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함께 존재하는 듯하다.


작가는 일상의 아이러니한 장면에도 피식하고 웃을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내는데, '이 또한 우리의 삶'이라는 관조와 더불어 일상을 유쾌하게 견뎌내고자 한다.


작가의 위트와 함께 빡빡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YTN 아트스퀘어 김서울 초대전 (2.3 ~ 2.28)


김서울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 갤러리 홈페이지 에코락갤러리 (ecorockgallery.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에코캐피탈의 '무이자할부 금융서비스(최대 60개월)'을 통해 소장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김서울 작가와의 일문일답

Q. 본명 대신 작가명(김서울)으로 활동하시는데,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요즘 본캐(본래의 캐릭터)와 부캐(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 이런 식으로 진짜 자기와 작가로서의 자신을 분리해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많아서 저도 작가명을 고민해 봤는데요. 제게 어울리는 작가명을 찾아, 2년 전부터 김소희라는 본명 대신 작가명 '김서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대도시의 일상을 그려내는 작업을 합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어도 알 만한 한국의 대도시 '서울'을 이름으로 삼으면 제가 하고 있는 작품의 상징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저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작품에 그려내기에 보편성을 띠는 이름으로 설정하고자 했는데, 마침 제 성이 가장 흔한 김 씨이기도 해서 ‘김서울’로 정했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하기 힘든 제 이름으로 대도시 속의 인물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 Interruption, 60x80cm_etching, chine-colle, 2014


Q. 대도시의 일상을 주제로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고향인 대구에서 스무 살 때까지 살다 2002년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처음 왔습니다.

붐비는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안에서 대도시의 인상이 가장 강하게 느껴졌는데요. 학교나 일터에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는 달리,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군중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나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개별성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어떤 부품처럼 보였어요. 정해진 룰대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앉거나 서고, 내릴 때도 똑같이 교통카드를 태그하는 이런 모습들, 반복되는 패턴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8년 정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도 동일한 모습이 반복되더라고요. 나라가 바뀌고 도시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의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 양식을 보이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어요.


전시작 중 'Interruption' 그림은 일본에서 바라본 지하철 풍경이 영감이 됐습니다. 당시 도쿄 지하철 역사에서 사람들이 줄을 쫙 서 있었는데,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깨끗하게 줄을 서 있는 거예요. 사람이라면 조금 흐트러질 만도 하고 누구 한사람 끼어들 만도 한데, 그 기계적인 모습에 순간 소름이 끼쳤어요. 시스템과 룰 안에서 사람이 사물화되는 것 같았고, 저에게는 비인간적인 장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 줄에 끼어드는 나 자신을 그려 넣음으로써 기계화되는 일상이 정상적이지 않다,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찾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그렇게 서울과 도쿄의 대도시의 생활을 하면서 제가 느낀 아이러니, 부조리를 표현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 Elevator, 48x40cm, Etching, Chine-colle, 2009


Q. 작품 소재, 아이디어를 주로 어떻게 발견하시나요?


대부분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합니다.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문득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일본 사람들은 밀폐된 공간에 뭔가 꽉 차 있는 모습을 ‘칸즈메(かんづめ)' 즉 통조림 신세라고 부르거든요. 붐비는 엘리베이터에서 친구와 "완전 통조림 신세다"라고 이야기를 하다 문득 그런 표현에서 힌트를 얻기도 했죠. 만석인 엘리베이터의 모습을 햄 통조림 캔에 비유한 작품이 'Elevator' 그림입니다. 이런 식으로 지인들과 사소한 대화에서도 아이디어를 얻고, 일상을 관찰하면서 유머나 통찰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 A morning subway ~pusher, 48x40cm, Etching, Chine-colle, 2008


Q. 판화 작품을 시작한 계기, 주로 작업하는 동판화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입시를 준비하면서 저를 가르쳐줬던 선생님이 판화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판화 작품을 처음 보게 됐는데, 페인팅 작품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습니다. 저는 중학생 때부터 유화와 아크릴을 그려왔었는데, 판화 작품이 가지는 독특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사람이 손으로 나타낼 수 없는 특유의 질감을 작품에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판화과에 진학해 지금까지 동판화, 목판화, 석판화 작업 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판화 중에서도 동판화 에칭 작업에 가장 매력을 느낍니다.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늘고 섬세한 선을 부식을 통해 단단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있는 기법인데요. 연필이나 펜으로 선을 그릴 때보다 훨씬 더 메마르면서 날카로운 느낌을 내서, 작품에 서늘한 느낌이나 냉정한 시각을 담아내는 데 유용합니다.


유명한 판화라고 하면 프란시스 고야의 동판화 작품집 '전쟁의 참화'를 들 수 있는데요.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시대 상황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를 비판하는 내용이 판화의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저 또한 제가 살고 있는 시대를 좀 객관적으로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제가 그리는 내용과 판화의 형식이 잘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판화는 저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인연인 것 같습니다.


▲ Wayhome, 60x80cm, etching,chine-colle, 2015


Q. 동판화 작품은 주로 흑백으로 표현되는데, 밝고 다채로운 색상을 담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제 작품에서 제가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히 현실 비판이 아니라, 힘든 현실이라도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연대'의 감성입니다.


차가운 현실이라도 희망적인 부분을 담아내고 싶어서 새로운 기법을 시도했습니다. 동판화에 전통 한지를 덧입힌 건데요. 제 작품에서 색이 들어간 부분이 물감을 칠하거나 찍은 것이 아니라 한지를 그대로 오려 붙인 겁니다. 한국은 전통 색한지 공예가 굉장히 발달돼 있고, 유독 다채로운 색감이 많습니다.


그래서 동판의 서늘한 느낌 안에서도 한지의 색감과 포근한 질감을 활용하여 따뜻한 감성을 함께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 A box for refreshing time, 50x40cm, Etching, Chine-colle, 2020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지 소개해 주세요.


전시 작품 중 ‘a box’ 시리즈 3점이 최근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앞서 소개한 'Interruption' 작품과 같이 예전에는 제가 붐비는 사회의 모습을 많이 그렸지만, 최근에는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텅 빈 공간에서 모티브를 얻고 있습니다. 특히 2020년에는 제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코로나가 심각했던지라 마치 좀비물의 한 장면처럼 거리가 텅 비고, 오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러한 상황에서 ‘a box’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팬데믹 시기에 빈 공간에 홀로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진짜 내가 누구인지 나의 존재에 몰두하는 시간을 조금씩 경험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러한 시간을 겪으면서 개인의 '존재'에 집중하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중 화장실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 있는데요. 변기에 앉아 있거나, 샤워를 하거나 욕조에 몸을 담근 세 인물이 있습니다. 세 명의 인물이 한 공간에 있는 게 아니라 욕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러 가지 시간을 동시에 보여준 장면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고,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화장실에 있을 때더라고요.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게 되는 순간들을 나타냈고, 그 그림을 시작으로 'a box' 시리즈를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 A box for rest time, 50x40cm, Etching, Chine-colle, 2020


Q. 관객들에게 작품을 감상하는 팁을 준다면?


제 작품에서 마주하는 일상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겪고 있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작품 속의 등장인물을 나라고 생각하면서 그림을 보시면 관객분들의 일상이 스쳐 지나가면서 좀 더 공감이 될 것 같아요.


각박한 도시 환경일지라도, 어쨌든 우리가 선택한 삶이잖아요. 그래서 서로가 힘들 수 있는 부분을 작품을 통해서 바라보고, 쓴웃음이라 할지라도 잠시나마 웃을 수 있으면 그 상처가 조금 날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으로 승화가 된다고 해야 되나, 그렇게 고단함을 잠시 털어버리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My Pet Vlll, 25x20cm, Etching, Chine-colle, 2016


Q.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나 목표, 꿈이 있다면요?


재작년부터 판화를 액자 안이 아닌 공간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예정된 전시도 판화 기법을 활용한 설치 작품을 주로 발표하려고 준비 중인데요. 입체 공간으로 확장된 판화가 어떤 식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스스로 실험도 많이 해볼 계획입니다.


제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동화책의 삽화를 너무 좋아해서였어요. 어린 시절 삽화를 따라 그리면서 그림을 배웠는데요. 제가 좋아한 동화 속 이미지처럼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작품을 그리고 싶고요.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꾸준한 속도로, 끝까지 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커뮤니케이션팀 김양혜 ㄹㄹ 사진│커뮤니케이션팀 이한빈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