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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스토리] 코로나19 취재기...."레벨 D 방호복을 입고"
2020-04-07

코로나19 취재기 - 대구지국 이윤재 기자

- 4월 Y 스토리는 최근 대구의 한 병원에서 직접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을 취재한 이윤재 기자가 쓴 글입니다.

정문을 통과하고, 병원 입구에 내린다. 벌써 긴장이 시작된다.

◆ 대구 가톨릭대학교 병원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던 병원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입구에서 발열 체크부터 한다. 이름을 쓰고 사인도 남긴다. ‘이제부터 네 책임’이라는 서명. 병원은 코로나19에 걸려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다. 덜컥 겁이 난다. 하지만 병원 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이 넘쳐난다.

◆ 그린존

폐쇄 병동과 연결된 이중문이 있는 곳이다.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는 장소다. ‘녹색’이니 괜찮다는 뜻이다. 하지만 긴장감은 더 커진다. 심장도 조금 더 빠르게 뛴다. 병원에 넘쳐나던 사람도 자취를 감췄다. 이제 시작이다.

◆ 레벨 D

우주복처럼 생긴 레벨 D 방호복은 입기부터 쉽지 않다. 먼저 발을 밀어 넣고, 지퍼를 올린다. 발싸개를 입고 끈으로 묶는다. 다음은 얼굴. 의료용 N95 마스크로 입을 가리는 순간, 숨이 차오른다. 이어 고글까지 쓰면 한가지 깨달음이 생긴다. ‘이래서 간호사들이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는구나.’ 그사이 의사 한 명이 들어온다. 난 5분도 더 걸렸는데 순식간에 방호복을 갖췄다. 하루에 두세 번도 입고 벗으니 익숙할 만도 하다.

◆ 폐쇄 병동

‘천국의 문이 열린 것 같다.’ 함께 간 VJ 친구의 표현이다. 어두운 형광등 아래에서 더 밝은, 그래서 노출이 넘치는 공간으로 간 게 첫 번째 이유. 또 하나는 진짜 천국을 맞이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과장이 섞인 표현이다.


병동은 차분하다. 하나같이 우주복 차림. 표정을 알 수 없어 더 차분하게 느껴진다. 함께 온 의사는 환자를 만나기 시작한다. 별다를 건 없다. 그냥 병원이다. 단지 서로의 얼굴을 보기 힘든 게 차이일 뿐. 차오르는 습기로 몸이 축축하고, 앞이 뿌옇다는 것뿐. 그렇게 의료진은 하루 8시간 동안 병동을 지킨다.

레벨 D 방호복을 입은 YTN 취재진 모습...이윤재 기자, VJ 김형성, 오디오맨 이수민

◆ 음압 병동

음압 병동엔 증상이 더 심한 환자가 있다. 병실마다 음압 장비가 설치돼 있다. 의료진 복장은 더 무겁다. 허리춤에는 달린 전자식 호흡 장치까지. 8시간을 보내고 나면 허리까지 쑤신다고 한다.


정신이 없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데도 정신이 없다. 간호사들은 분주하다. 쉴 틈도 없다. 솔직히 말해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저 바빠 보일 뿐이다. 그 와중에 몸은 땀에 젖었고, 눈앞은 뿌옇다.


뛰던 가슴이 어느샌가 가라앉았다. 긴장도 사치다. 눈앞에 있는 그들에게 두려움 따위는 없다. 그저 똑같은 환자, 내가 치료해 줄 사람이 있을 뿐. 다만 복장이 조금 거추장스럽다. 다시 말하지만 의료진은 이렇게 8시간을 버틴다.

◆ 다시 그린존

방호복은 벗는 것도 고역이다. 방호복 겉면에 손이 닿으면 탈락. 조심스럽게 옷을 말아가면서 벗어야 한다. 손 소독제는 수시로 바른다. 방호복을 다 벗으면 장갑 두 겹 중 한 겹을 벗는다. 그리고 다시 손 소독. 고글을 폐기물 통에 넣고, N95 마스크도 쑤셔 넣는다. 상쾌한 공기. 살 것 같다.

방호복을 벗은 뒤 촬영 영상을 확인하는 취재진...얼굴에 고글 자국이 선명하다


◆ 집에는 가나요?

병동에서 의료진을 만날 때마다 물은 질문이다. 의료기관용 감염 예방관리 지침도 살피고, 병원 홍보팀에도 몇 번이나 물었으니 답은 뻔하다. 그래도 궁금하다. 나도 집에 가야 하니까. 다행히 돌아온 답은 ‘간다’였다. 일부는 나이 많은 부모가 걱정돼 방을 얻었다고 한다. 이해가 간다. 위험한 곳이다. 또 힘든 곳이다. 겨우 1시간 입었지만, 땀범벅이다. 녹초가 된다. 그것만으로도 힘들다. 거기에 더해 나도 감염될 수 있다는 걱정이 두세 배 긴장을 키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일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더 힘들고, 더 위험하다. ‘희생’이라는 단어 말고는 대신할 표현이 없다.

◆ 그리고 모텔

의료진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취재를 마치고, 기사도 썼다. 하지만 막상 대문에 들어서는 순간 걱정이 휘몰아쳤다. 아빠를 기다리다 거실서 잠든 두 아들을 보니 차마 집 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다. 괜찮은 거 안다. 아닌 거 다 안다. 하지만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걱정은 어느덧 폭풍이 된다. 아내에게 ‘짐을 싸달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이어진 모텔 생활. 출근은 하면서 집에는 못 가는 답답한 생활에 한숨이 나온다.

◆ 14일 뒤

다행이다. 아무 탈 없이 14일이 지났다. 멀쩡하다. ‘남편 놈을 들여도 될까?’ 긴장과 견제가 뒤섞인 눈빛을 쏘던 아내도 환하게 웃는다. 아빠를 찾던 아이들도 다시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다. 다시 일상인 거다. 이제야 불안을 털어낸다.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더 크다. 의료진 얘기를 좀 더 들어보지 못한 아쉬움. 그들의 희생을 좀 더 담지 못한 아쉬움. 다른 기자가 가지 않았던 그곳을 좀 더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 겨우 한 시간으로 이러는 내가 우습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