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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언론의 선택적 정의? 허쉬 허쉬!
2021-04-14


영화 'LA컨피덴셜' (감독 : 커티스 핸슨, 출연 : 케빈 스페이시, 러셀크로우, 가이피어스)


1997년에 나온 커티스 핸슨 감독의 걸작 ‘LA컨피덴셜(L.A. Confidential)’은 마피아와 LA 경찰 내부의 부패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한 황색지 기자와 수사기관이 ‘짬짜미로 해 먹는’ 과정을 보여주고 검찰은 이를 수사 조직의 앞날(?)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담고 있어 언론의 측면에서도 음미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영화 속 기자는 데니 드 비토가 맡은 ‘시드 허진스’다. 그는 주간지의 발행인이기도 한데 그 잡지 이름이 ‘허쉬 허쉬(Hush Hush)’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쉿!’ 정도로,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뭔가 항상 음모를 꾸미고 거짓을 진짜처럼 둔갑시키는 일이 주특기인 언론처럼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른바 ‘네트워크’가 중요하고 또 그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갈 것이다. 시드 허진스가 딱 그렇다. 그는 경찰 내부에 자신의 끄나풀을 여기저기 두고 사는데 그중 최고의 대어가 바로 마약반 형사 잭 빈센스(케빈 스페이시)다.

그는 영화 초반에 나오는 경찰 폭력 사태로 징계를 받고 풍기단속반으로 소위 물을 먹고 발령이 난 상태다. 잭 빈센스는 TV 수사드라마의 기술고문을 맡고 있을 만큼 나름 명성도 쌓았다. 그런 그도 품위유지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보다 정확하게는 언론 쪽에 있는 정보원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소문과 얘기, 이른바 ‘찌라시 뉴스’를 전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시드 허진스나 잭 빈센스나 그것을 자신들 입맛대로만 활용할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종종 그냥 단순하게 돈벌이로 남의 뒤를 캔다. 상원의원의 자식이 성매매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시드는 잭에게 그것을 알려 풍기단속에 나서게 하고 잭은 시드에게 언제 어떻게 체포할지 알려줌으로써 특종을 제공한다. 시드는 그 특종 사진으로 잡지 매출을 늘리거나 아니면 그걸 협박용으로 활용해 뒷돈을 챙긴다. 그리고 그 돈의 일부는 잭에게로 돌아간다. 잭은 수사 성과도 올리고 뒷돈도 챙긴다. 매사가 그런 식이다. 언론은 언론이 아니고 공권력은 공권력이 아니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일 뿐이다. 그런데 그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종종 상황에 따라 뒤바뀌기도 한다.

시드는 결국 마피아와도 손을 잡는다. 당연히 부패한 경찰 권력의 상층부와도 손을 잡는다. 본인은 양손에 떡을 쥐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권력의 위로 올라가 있는 인물일수록 자신(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놈이 가장 거추장스럽다. 제거 대상 1호가 된다. 시드 허진스는 그렇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한다. 자업자득이다. 잭 빈센스는 사실 꽤나 괜찮은 경찰이고 너무 영리한 사람이지만 그 영악함이 자신의 뒷덜미를 잡는다. 그는 자신만의 ‘감’으로 서서히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지만 설마 자신들 안에 제5열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다. 자신이 부패하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썩어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잭 빈센스는 그렇게 헛다리를 짚는다.

‘LA컨피덴셜’은 희대의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급 콜걸인 린(킴 배이싱어)이 주인공 에드(가이 피어스)에게 말하는 장면이 한동안 회자됐었다.


“어떤 사람은 세계를 갖고 어떤 사람은 퇴직한 창녀와 길을 떠나는군요.”

소설에 따라서는 영상으로 옮기기가 쉬운 것이 있다. 한국 내에서 인기가 많다는 히가시노 게이고 류의 스릴러 소설이 그렇다. 이런 소설은 챕터 하나가 영화의 한 시퀀스처럼 짜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영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소설은 재미있는 작품일 수는 있지만 뛰어난 문학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제임스 엘로이 류의 하드 보일드 소설은 플롯이 워낙 복잡하고 정교해서 영화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내면과 본성에 치중한 진짜 문학이기 때문이다.

커티스 핸슨 감독은 이 영화 한 편에 자신의 모든 예술혼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뛰어난 걸작을 만들었지만 이후 'LA컨피덴셜'을 뛰어넘는 후속작을 내놓지 못한 채 2016년 사망했다. 영화감독은 일생동안 걸작을 단 한 편 만드는 법이다. 커티스 핸슨에게는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소설과 영화의 시대 배경은 1950년대 초반의 미국 LA다. 50년대에도 언론과 부패 경찰, 혹은 검찰이 이런 식이었다는 게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 양측의 관계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는 점이 실로 놀랍다. 부패 고리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계속 이어져 온다는 것이 놀랍다.

언론, 경찰, 검찰은 늘 정의로운 척을 한다. 그런데 그건 자신들의 입에서나 나오는 소리일 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걸 알아챌 때도 있지만 상당 부분 잊고 산다. 언론과 경찰, 검찰이 선택적으로만 정의롭다고? 쉿! 허쉬 허쉬! 살고 싶으면 떠들지 말아야 한다. 실로 요지경 세상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