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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을 막기 위한 저널리즘 -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
2022-02-04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딱 한 번을 막기 위한 저널리즘>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 (감독 : 아담 맥케이,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롭 모건 등)


만약 지구가 파멸할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당장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게 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알릴까? 뭔가 당장 대응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아마겟돈(Armageddon)’이나 ‘딥 임팩트(Deep Impact)’처럼 영웅들이 나서줬으면 싶다. 이외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은 즉각 사실을 인지하고 어떻게 잘 대처할지 그 방법과 전략에 대해서 다루거나 영웅의 감동 스토리를 강조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그런 영화적 여러 설정을 모두 뒤집는다.

▲ 영화 <돈 룩 업> 포스터


이 영화는 의문을 품는 데서 출발한다. 사실을 보고받은 사람들은 당장에 실행할까. 미시간 주립대의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役)와 담당 교수인 랜들 민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役) 박사는 놀라운 관측을 하게 된다. 즉 혜성이 지구에 6개월 안에 충돌하는 것. 그 충돌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관측 결과는 다른 권위 있는 기관이나 연구자들에게서 인정까지 받는다. 그들은 나사(NASA)에 알리게 되고, 지구방위합동본부장 테디 오글소프와 면담하게 된다. 지구방위합동본부장은 그들과 함께 백악관을 찾는다. 이쯤 되면 뭔가 일이 이뤄질 듯싶다. 하지만 대통령과 참모진은 이들을 기다리게 하고 만나주지 않는다.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다음날도 기다리다가 가까스로 만났지만 대통령과 참모진은 시큰둥하다. 나중에 보니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정치적 지지도를 높일 생각 밖에 없다. 당연히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생각하는 전문가들의 분석으로 확인받고도 별 반응이 없다. 지구방위를 책임지는 리더도 결국 정치적 이익을 생각하는 대통령과 참모진에게 지구의 운명을 내맡겨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된다. 다만 그가 제안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였다. 정치인 대통령과 참모진이 신경 쓰는 것은 지지도이므로 이를 움직일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바로 언론이었다.

▲ 영화 <돈 룩 업> 스틸컷


언론이 제대로만 보도한다면 대통령과 참모들도 정신이 번쩍 들 수 있는 여론이 형성될 법했다. 고전적인 순서, 그들은 바로 신문사를 찾아간다. 뉴욕 헤럴드(New York Herald). 이 신문사는 뉴욕에 1835년 5월 6일부터 1924년까지만 존재했는데 21세기까지 버티고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만약 존립했다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 비결도 알 수 있다. 바로 방송에 의존이나 종속일 것이다. 뉴욕 헤럴드 데스크는 두 사람이 가져간 천문과학적 사실에 흥분한다. 그런데 곧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먼저 보도하기 전에 토크쇼 ‘더 데일리 립’에 케이트 디비아스키와 랜들 민디 교수를 출연시키기로 결정한다. 신문사와 방송사는 경쟁상대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뉴욕 헤럴드와 토크쇼 ‘더 데일리 립’이 밀접하게 유착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신문사가 이렇게 출연시키는 속내는 방송을 통해 내보내 소위 간을 보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토크쇼는 올바른 저널리즘을 보여줄까?

▲ 영화 <돈 룩 업> 스틸컷


그들은 지구 멸망보다는 연예인 스타의 스캔들에 더 관심을 보일 뿐이다. 아무리 심각한 뉴스라도 가벼운 흥밋거리로 만들어버리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디비아스키와 랜들 민디 교수는 얼뜨기가 되어버린다. 이는 방송 토크쇼가 뉴스매체보다 더 영향력을 미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더 데일리 립’의 진행자 브리 에반티(케이트 블란쳇)와 틸러 페리(잭 브레머)는 각각 MSNBC ‘모닝 조’의 여성 진행자 미카 브레진스키, ABC ‘굿모닝 아메리카’의 조 스카버러를 패러디한 듯싶다. 결국, 신변잡기 수다가 난무하는 광경을 참다못해 케이트 디비아스키는 분노와 함께 “우리 모두 100% 죽고 말 거다.” 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케이트 디비아스키조차 성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오히려 평소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랜들 민디 교수는 약물로 분노를 비정상적으로 억제하고 있던 바람에 훈남 인기 스타가 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SNS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방송조차 SNS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렇게 아예 관심이 없거나 엉뚱한 이슈에 치우치자 뉴욕 헤럴드는 ‘혜성 충돌 예정’ 사실을 보도하지 않기로 한다. 결국 SNS의 반응이 없는 현실에서 진실조차 보도하지 않는다.

▲ 영화 <돈 룩 업> 스틸컷


분명한 사실, 팩트는 혜성이 지구에 충돌 예정이고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는 것. 진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다들 숨기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은 피터 이셔웰(마크 라이런스 役)이다. 초대형 IT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인 그는 스마트폰을 만들 뿐만 아니라 SNS 플랫폼도 운영한다. 이를 통해 번 막대한 돈을 대통령의 후원금으로 지원한다. 놀랍고 황당하게도 대통령은 최고 안보 전략회의에도 후원자라는 이름으로 그를 출입시킬 뿐만 아니라 그가 다가오는 혜성을 막을 계획도 이용할 전략도 결정한다. 전문가 위에 전문가로 군림하는 그는 랜들 민디 교수가 혜성 파괴 계획의 위험성을 경고하자 오히려 면박을 준다. 심지어 데이터 분석을 통해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며 전문 과학자를 협박한다. 혜성을 막지 못했는데도 그의 영향력은 지구에 혜성이 부딪히고서도 계속된다, 그가 우주선을 만들어 선택된 사람들만 이주시킨다. 물론 지구를 탈출한 그들은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지만 기쁨도 잠시 곧 외계 생명체에게 잡아 먹힌다. 이는 단지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로 자본을 축적한 비전문가가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할 때 자칫 파국적인 종말을 맞을 수 있는 현실을 풍자한 설정이었다.

▲ 영화 <돈 룩 업> 스틸컷


요컨대, 이런 파국적인 결말은 사실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근원에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혜성 충돌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알고 있는데, 미온적이거나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은 ‘설마 지구가 망하겠어?’ 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구에 위기가 많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모두 넘겼지 않았는가. 지구에 닥친 문제들에 관해 무감각해지는 이유가 될 것이다. 케이트 디비아스키가 10대 환경운동가 크레타 툰베리를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할 때, 탄소 감축을 둘러싼 각국과 기업, 산업 자본 그리고 이들의 대변하는 언론들의 행태를 견주어 볼 수 있다. 지구의 멸망은 전례가 필요 없다. 딱 한 번이라도 일어나면 끝이다. 아직 일어나 본 적이 없다고 사실과 진실을 저널리즘조차 외면한다면 파국은 막을 수가 없다.

▲ 영화 <돈 룩 업> 스틸컷


영화는 단지 언론과 권력만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유사 언론매체는 물론 진실과 사실을 보도하는 매체에 대해 외면하는 대중적 쏠림 현상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풍자하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모든 언론 행위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플랫폼 블랙홀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도 필요하고, 현명하게 깨어 있는 시민의 역할이 저널리즘을 올바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간과할 수 없다. 적어도 언론이 방치하고 비즈니스에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