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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저널리즘의 펜 끝은 누구를 향하는가? -드라마 ‘작은 아씨들’ 리뷰
2022-10-06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저널리즘의 펜 끝은 누구를 향하는가?


드라마 '작은 아씨들'│2022

연출 : 김희원, 출연 :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등


▲ 드라마 '작은 아씨들' 포스터


친구와 최근 한창 방영 중인 드라마를 두고 이야기를 했다.


“요즘 ‘작은 아씨들’을 잘 보다가 이제 안 보게 됐어.”

“왜 무슨 일이 있어?”

“둘째 때문에 보기가 싫어졌어.”

“둘째 때문에 보지 않는다니 둘째라면 그 기자를 말하는 거야?”

“그래 잘 가고 있는데 왜 훼방을 놓는지 모르겠어.”

“기자니까 그런 캐릭터가 필요하지 않나?”

“비현실적이야. 그런 게 어디 있냐?”


아마도 그 친구는 700억 원을 손에 넣기 위한 우여곡절의 스토리만 기대한 듯싶다. 하지만, 둘째 오인경 역 (남지현)은 돈보다는 이면의 진실을 캐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친구에게는 기대 불일치 심리가 발생했는지 모른다. 이런 사람이 꽤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개인의 성향과 관계없이 오인경이라는 캐릭터는 자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 '작은 아씨들'의 세자매 중 둘째 오인경 역 (남지현)


처음에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볼 때 떠올린 것은 알프레드 아들러였다. 그의 주장에 따라 ‘작은 아씨들’의 세 명의 캐릭터가 눈에 선하게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드라마의 서사 전개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게 한다. 단순히 가족 안에서 개인적인 성향만이 아니라 사회적 행동까지도 짐작할 수 있게 하지만 이런 점은 잘 언급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일단 개인 심리학을 주창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9)는 자녀들의 심리학을 정립한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태어난 순서에 따라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성향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첫째는 일단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집중한다. 따라서 책임감이 강하여 가족들을 돌보려고 한다. ‘작은 아씨들’에서 오은주(김고은 役)는 첫째로 책임감이 강하고 두 동생을 건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가 부정부패와 손을 잡거나 떳떳하지 않은 돈조차 손에 넣으려고 하는 동기가 된다. 현실에 타협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 강화하려는 태도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을 드라마는 그리고 있다. 자신의 책임이 아닌 일까지도 과도하게 부담을 느끼고 다른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려 한다. 이 때문에 다른 가족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 돈으로 가족을 지키고 싶은 K-장녀 첫째 오인주 역 (김고은)


아들러에 따르면 둘째는 경쟁적이고 성취지향적이다. 첫째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첫째의 지위에 도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려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고 고난이 있어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대상에 매진하는 성향이 있다. 때로는 이미 만들어진 질서에 도전하고 그 도전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한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둘째 오인경은 비자금 700억 원에 손을 대는 언니를 가감없이 비판한다. 그리고 그 돈에 얽힌 부정부패를 파헤치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특히 대권 후보 박재상의 민낯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목숨이 위협당하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만류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취재 활동을 이어간다.


▲ 돈에 영혼을 팔고 싶지 않은 둘째 오인경 역 (남지현)


아들러에 따르면 막내는 자기중심적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모두가 자기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자기 밑으로 동생이 없으므로 책임질 일이 적다. 따라서 무책임한 경향이 생길 수 있다. 이미 질서가 구축되어 있기에 그것을 향해 도전하거나 성취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얽매이지 않는다.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에 예술 활동이나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도 있다. 형제자매들의 노하우를 전수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행착오를 피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 또 자기중심적으로 무책임하기 때문에 통제가 되지 않을 수 있고 가족을 벗어날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막내 오인혜(박지후 役)는 이런 막내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언니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마련한 수학 여행비를 거부한다. 그리고 미술에서 탁월한 자신의 예술적인 능력을 살려 독립을 꿈꾼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자신의 새로운 입지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 언니들의 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억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큰언니가 골치 아프게 엮여 있는 박재상(엄기준 役) 집에 스스럼없이 들어가 그들의 거래를 허용한다. 또한, 둘째 언니가 그의 비리를 파고 있는데도 오인혜는 그들과 어울려서 얻는 이익을 우선시한다.


▲ 언니들의 사랑이 버거운 셋째 오인혜 역 (박지후)


사람들이 오인경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알콜이다. 심지어 오인경은 심리적 위기 상황에서 알콜 중독 증상이 빌미가 되어 마침내 정직을 당한다. 오인경은 자신이 그렇게 술을 중독 수준으로 먹게 된 것은 가난한 자신과 같은 서민을 찾기 위해서라고 인식한다. 오인경이 기자가 된 것은 개인적인 심리에서 비롯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한 아이가 돋보일 수 있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었다. 성공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자본을 가진 부잣집 친구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기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기자는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인경에게서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점은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다. 오인경은 당당하다. 거대한 악, 박재상에게 똑바로 눈을 쳐다보고 질문을 할 수 있고 TV 카메라 앞에서 떳떳하게 폭로한다. 때로는 협상도 제안하고 거래도 성사시킨다. 자신의 소신대로 밀어붙이는 오인경의 바른 언론 행위야말로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오인경의 음주는 자신의 열정적 행위가 가로막힐 때 등장한다. 자신의 저널리즘 행위가 순탄할수록 음주는 사라진다. 알콜에 빠지지 않고 멀쩡하게 버틸 수 없는 현실이 있다.


▲ 오인경 역(남지현), 박재상 역 (엄기준)


반대로 음주에 빠지지 않는 기자도 있다. 그가 음주에 빠지지 않아서 좋을까. 드라마에서 오인경보다 정말 더 불편한 저널리스트가 있다. 오인경과 같은 OBN 기자 장마리(공민정 役)는 후배 오인경을 사사건건 문제 삼는다. 문제 삼은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박재상을 취재하는 오인경에게 그 취재한 내용을 보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가 하면 오인경에게 불리한 영상을 촬영한 후 인터넷에 유포하기도 한다. 원령학교 출신의 흙수저로 박재상 일가의 권력과 결탁한 부패한 저널리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현실에서 장마리 같은 저널리스트가 많다면 불행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라 할지라도 그 부작용의 여파는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만약 장마리는 덜 불편하고, 오히려 오인경에게 더 불편하다면, 현실에서는 장마리 같은 저널리스트가 많아질 것이다.


저널리스트들은 오인혜처럼 자기중심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오인주처럼 자기 입지의 원칙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캐릭터가 본질일 것이다. 조직과 제도의 틀 안에서 제한된 자율을 통해 일정한 변화적 성취를 원하는 이들이다. 다만 그 펜 끝이 제대로 핵심을 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오인경처럼 거대 악의 세력이 내세운 아바타에 펜 끝을 꽂아 기회를 놓치고 본인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 스틸컷